가브리엘 샤넬
1920년대 파리. 저녁이 내려앉은 거리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갔다. 당시 검정은 지금과 조금 다른 색이었다. 죽음과 애도, 하인의 제복과 엄숙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한 여자는 검은 천을 작업대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 사람들은 훗날 그녀를 코코 샤넬이라 불렀다.
천 위로 가위가 지나갔다. 장식은 많지 않았다. 색도 화려하지 않았다. 선은 단순했다. 검은색. 그녀는 사람들이 슬픔을 떠올리던 색에서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단정함. 자유. 그리고 오래 남는 아름다움.
어떤 사람은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대신 그 상처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을 바꾼다.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넉넉하지 않았다. 어머니 잔 드볼이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가브리엘과 자매들을 오바진의 수도원 부속 보육시설에 맡겼다. 열두 살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사라졌다. 아버지도 곁을 떠났다. 남겨진 아이에게 세상은 설명을 충분히 해주지 않았다.
긴 복도. 정돈된 침대. 절제된 생활. 수도복의 검정과 흰색.
그곳에서 샤넬이 실제로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훗날 그녀 자신도 어린 시절을 여러 방식으로 꾸며 이야기했기 때문에 전기의 세부에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결핍을 경험했다. 그리고 바느질을 배웠다. 바늘이 천을 통과했다. 훗날 세계가 기억하게 될 손이 아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천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성인이 된 샤넬은 재봉 일을 했고 한동안 카페와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코코’라는 별명 역시 이 시기의 노래와 관련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는 유명 가수가 되지 않았다.
대신 모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상류층 여성들의 모자는 화려했다.
깃털. 리본. 꽃. 장식.
옷도 마찬가지였다. 코르셋은 몸을 조였다. 긴치마와 복잡한 장식은 여성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샤넬은 다른 방향을 보았다. 조금 가볍게. 조금 단순하게. 조금 편하게.
그녀가 만든 모자는 장식을 덜어냈다. 옷에서도 불필요한 것을 줄였다. 여성들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했다. 그녀가 아름다움에 더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에서 덜어낸 것이었다.
샤넬의 디자인에는 남성복에서 가져온 요소도 들어갔다.
편안한 재킷. 단순한 선. 저지 소재.
당시 저지는 오늘날처럼 고급 여성복의 대표적인 천이 아니었다. 실용적인 의복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샤넬은 그것을 여성복으로 가져왔다.
부드러웠다. 몸이 움직였다.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옷은 사람을 가두는 틀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했다.
이것은 유행의 문제가 아니었다. 20세기 초 여성의 삶도 변화하고 있었다. 도시가 달라졌다. 전쟁이 있었다. 여성의 슬롯활동이 확대됐다. 생활이 움직이는데 옷만 과거에 머물 수는 없었다.
샤넬은 변화를 읽었다. 옷이 사람에게 요구하던 것을 줄이고, 사람이 옷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늘렸다.
편안함. 움직임. 실용성. 그리고 아름다움.
자유는 때때로 거창한 선언보다 몸을 조이던 끈 하나를 푸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검은색이 있었다. 1926년 미국 '보그'는 샤넬의 검은 드레스를 소개했다. 오늘날 ‘리틀 블랙 드레스’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순간으로 꼽히는 디자인이다.
검은색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샤넬이 검은 옷을 처음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검정에 새로운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애도의 색. 엄숙한 색.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사람의 색. 검정을 단순하고 세련된 옷으로 만들었다.
검은 천이 잘려나갔다. 장식은 줄었다. 형태가 남았다. 색을 더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사람이 보였다.
샤넬의 삶에는 실제 슬픔도 있었다.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었던 영국인 아서 ‘보이’ 카펠은 1919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샤넬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샤넬의 검은색과 그의 죽음을 연결한다.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가 슬픔의 검정을 세련된 옷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샤넬의 검정은 한 사람의 죽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당시의 슬롯적 변화와 디자인 철학, 수도원 시절의 미학적 환경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상처 하나가 곧바로 예술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슬픔이 있다고 모두 창조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슬픔을 어떻게 살아냈는가. 경험을 무엇으로 바꾸었는가. 샤넬은 검정을 슬픔에만 남겨두지 않았다. 자신의 언어로 다시 사용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가 앞으로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달라질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고통스러운 경험 이후 어떤 사람이 삶의 의미나 관계, 자기 이해에서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는 현상을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상처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사람을 오래 아프게 한다. 회복되지 않는 부분도 남는다. 고통받은 사람에게 경험 덕분에 강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성장은 상처의 의무가 아니다. 샤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난했기 때문에 위대한 디자이너가 된 것이 아니다. 버려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결핍을 삶의 최종 형태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바꿀 수 없는 과거와 함께 살면서도 자신이 만들 수 있는 형태를 계속 찾아갔다.
천을 잘랐다. 상처를 아름다움으로 바꾼다는 것은 상처가 아름다웠다는 뜻이 아니다. 그 상처에게 내 삶의 마지막 말을 맡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샤넬은 향수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1921년 등장한 샤넬 N°5.
꽃 한 송이를 그대로 재현하는 향보다 여러 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현대적인 향수였다. 병 역시 지나친 장식을 줄인 단순한 형태를 택했다.
옷에서도. 향수에서도. 그녀는 덜어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부족하면 더 많이 채우려고 한다. 더 화려하게. 더 크게. 더 비싸게. 더 눈에 띄게.
하지만 샤넬은 때때로 반대로 움직였다. 없앴다. 줄였다. 남겨야 할 것만 남겼다. 어쩌면 결핍을 오래 경험한 사람에게 ‘없음’은 다른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빈 공간이 반드시 가난한 것은 아니다. 잘 비워진 공간은 형태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코코 샤넬을 자유와 성공의 아이콘으로만 그리는 것도 위험하다. 그녀의 삶에는 불편한 역사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프랑스 점령기, 샤넬은 독일 외교관이자 정보기관과 관련된 인물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와 관계를 맺었다. 전쟁 중 그녀의 행적과 독일 정보기관과의 연관성은 이후 역사 연구와 전기에서 심각한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한 사람의 미적 혁신이 그 사람의 모든 선택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다. 좋은 디자인을 만들었다고 좋은 인간이었다고 자동으로 결론 내릴 수도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배울 때 그 사람 전체를 숭배할 필요가 없다. 빛을 보되 그림자를 지우지 않는 것. 그것도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아름다움을 만든 사람의 삶까지 아름답게 편집해서는 안 된다.
1954년, 일흔이 넘은 샤넬은 파리 패션계로 돌아왔다. 오랜 공백 뒤였다. 프랑스에서는 처음부터 좋은 반응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옷을 만들었다.
트위드 슈트. 편안한 재킷. 움직이기 쉬운 실루엣. 체인 스트랩을 사용한 가방.
젊은 시절부터 이어온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성이 옷 때문에 불편해서는 안 된다.
세월이 흘렀다. 몸도 변했다. 패션도 변했다. 그러나 자신의 미적 언어를 다시 꺼냈다.
샤넬은 197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을 계속했다.
우리에게도 검은색 같은 기억이 있다.
떠난 사람. 가난했던 시간.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 실패한 시험. 끝난 관계. 무시당했던 말. 그것들은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는다.
처음에는 기억이 우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버려진 사람이야. 나는 실패한 사람이야.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은 기억에 다른 문장을 붙일 수도 있다.
나는 혼자 견디는 법을 배운 사람이야. 나는 다시 시작해 본 사람이야. 나는 부족함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알아보는 사람이야.
물론 모든 아픔에 좋은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은 그냥 아팠다고 말해도 된다. 다만 기억이 앞으로의 나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도 없다.
검은색이 언제나 애도의 색으로만 남을 필요가 없듯이.
상처를 없애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코코 샤넬의 삶을 바라보며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상처를 미화하는 법이 아니라, 상처가 내 삶의 마지막 디자인이 되지 않게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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