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라져도 손은 사라지지 않았다

티에리 에르메스

by은파랑

1837년, 파리의 어느 작업장. 문을 열면 가죽 냄새가 먼저 났다. 두꺼운 가죽 조각들이 작업대 위에 겹쳐 있었고, 금속 장식과 버클이 작은 상자 안에서 서로 부딪혔다. 바늘은 굵었고 실은 질겼다. 한 남자가 가죽 위에 손을 올렸다.


티에리 에르메스. 아직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명품 가방과 연결하지 않았다. 그가 만들던 것은 말을 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구와 안장이었다.

밖에서는 마차가 지나갔다. 19세기의 거리는 말의 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이 움직이려면 말이 필요했다. 물건을 옮길 때도 말이 필요했고, 도시와 도시를 오갈 때도 그랬다. 그래서 티에리의 손은 말을 위해 움직였다.

가죽을 자른다. 구멍을 낸다. 실을 당긴다. 바느질한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언젠가 거리에서 말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뒤에도 이 남자의 손에서 시작된 이름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을. 시대는 말을 버렸지만, 솜씨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티에리 에르메스는 1801년 독일 크레펠트에서 태어났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갔고, 1837년 파리에서 마구와 안장을 만드는 작업장을 열었다. 당시 좋은 마구는 장식품이 아니었다. 말의 몸에 잘 맞아야 했다. 쉽게 끊어져서는 안 됐다. 사람이 안전하게 말을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가죽의 상태도 중요했다. 너무 뻣뻣해서도 안 되고 너무 약해서도 안 됐다.

손끝으로 만져본다. 눌러본다. 당겨본다. 재료의 성질을 읽는다. 좋은 장인은 재료와 싸우지 않는다. 재료가 어디까지 휘어지는지, 어느 방향으로 힘을 받는지, 어디에서 약해지는지를 먼저 알아낸다. 그리고 성질과 함께 형태를 만든다.

솜씨란 손이 빠른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차이를 알아보는 능력이다. 차이는 하루 만에 생기지 않는다.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실을 당긴다. 가죽을 자른다. 모서리를 다듬는다. 잘못하면 다시 한다.

사람들은 완성된 물건을 본다. 장인은 그 안에 들어간 수천 번의 손동작을 안다.

티에리의 작업장은 점차 명성을 얻었다. 좋은 가죽. 튼튼한 제작. 세밀한 마감. 당시 말을 소유하고 마차를 이용하던 부유한 고객들에게 품질은 중요했다. 티에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가족은 사업을 이어갔다.

아들 샤를에밀 에르메스는 사업의 중심을 파리의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로 옮겼고, 다음 세대 역시 가업을 확장했다. 한 세대가 바늘을 내려놓으면 다음 세대가 집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19세기말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거리의 소리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말발굽 사이로 낯선 기계음이 들어왔다. 자동차였다. 처음에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곧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도시는 변했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말이 담당하던 자리를 자동차가 가져가기 시작했다. 마구를 만들던 회사에게 이것은 유행의 변화가 아니었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흔드는 변화였다. 말이 사라지면 말의 장비를 만들던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기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말안장을 만드는 회사다. 혹은, 우리는 이동하는 사람을 위해 뛰어난 가죽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미래는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문장에서 말이 사라지면 회사의 이유도 사라진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말이 사라져도 다른 가능성이 남는다.

여행가방. 핸드백. 지갑. 벨트. 그리고 사람이 움직이며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

에르메스가 수십 년 동안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 말이 아니었다. 가죽을 다루는 손이었다. 말은 시대가 준 시장이었다. 손은 오랜 시간이 만든 능력이었다.

에르메스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여행과 생활을 위한 가죽 제품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동했다. 다만 이동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마차 대신 자동차를 탔다. 기차를 탔다. 배를 탔다. 훗날 비행기를 탔다.

이동수단이 바뀌면 가지고 다니는 물건도 바뀐다. 안장이 필요 없어진 자리에서 여행용 가방이 필요해졌다.

마구를 만들던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태를 바꾸었다. 가죽을 고르는 눈. 자르는 손. 바느질. 금속 장식을 다루는 기술. 튼튼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드는 감각. 새로운 제품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의 전이’와도 닮아 있다. 한 상황에서 익힌 지식이나 기술이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되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일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일 안에 숨어 있는 더 깊은 능력을 발견하는 것이다.

요리사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맛과 재료를 조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 기자는 기사를 쓰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질문하고 정보를 검증해 이야기로 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 영업사원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필요를 읽고 관계를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

직업의 이름은 사라져도 그 안에서 익힌 능력은 다른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직업은 시대가 붙여주는 이름이지만, 솜씨는 시간이 몸에 새기는 능력이다.

에르메스의 가방들 역시 그렇게 등장했다. 오늘날 ‘켈리 백’으로 알려진 가방은 처음부터 그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에르메스의 가방 디자인이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와 연결되며 널리 알려졌고, 훗날 공식적으로 켈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버킨 백’의 탄생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80년대 초 비행기 안에서 당시 에르메스 경영자 장루이 뒤마가 배우이자 가수였던 제인 버킨을 우연히 만났고, 실용적이면서 넉넉한 가방에 관한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두 가방 비싼 물건이라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의 생활에서 출발했다. 움직인다. 물건을 넣는다. 꺼낸다. 들고 다닌다. 마차가 다니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움직일 때 무엇이 필요한가. 시대는 달라졌다. 질문은 남았다.

오늘 우리의 세상에도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컴퓨터가 켜진다. 인공지능이 글을 쓴다. 기계가 계산한다. 자동화 시스템이 일을 대신한다. 어제까지 사람이 하던 일을 오늘은 프로그램이 한다.

그래서 불안해진다. 내 직업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배운 것이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몇 년 동안 익힌 기술이 한순간에 낡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19세기 마구 장인의 후손들도 비슷한 질문을 마주했을 것이다. 거리에서 말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이 말만 바라봤다면 미래는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손을 바라보면 다른 질문이 생긴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직업의 이름 아래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 내가 다른 곳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회계 프로그램이 계산을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남는다. 인공지능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질문하고 어떤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지 선택하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기술은 도구를 바꾼다. 그래서 사람은 도구보다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야 한다. 사라지는 것은 종종 일이 아니라 일의 방식이다.

물론 에르메스의 역사를 “솜씨만 좋으면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로 만들면 현실과 멀어진다. 좋은 기술을 가진 수많은 장인과 기업이 산업 변화 속에서 사라졌다. 솜씨만으로 모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필요하다. 경영 판단이 필요하다. 유통과 브랜드가 필요하다. 시장의 변화도 읽어야 한다. 좋은 동료와 후계자도 필요하다. 에르메스 역시 여러 세대의 가족과 수많은 장인, 직원들이 함께 만들어온 회사다. 또 명품 산업에는 희소성과 높은 가격, 소비와 계층의 상징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올 것은 브랜드를 숭배하는 태도가 아니다.

한 가지 질문이다. 환경이 바뀌었을 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끝까지 가져갈 것인가. 모든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은 전통이 아니다. 모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혁신은 아니다.

겉모습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잘하는 깊은 능력은 더 오래 가져갈 수 있다.

우리도 살면서 말이 사라지는 순간을 만난다. 평생 다닌 회사가 문을 닫는다. 배운 전공의 인기가 떨어진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오랫동안 하던 일이 자동화된다. 한때 안정적이던 직업이 흔들린다. 그때 사람은 자신이 쓸모없어진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직업이 사라지는 것과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교사에게는 설명하는 능력이 남는다. 요리사에게는 맛을 구별하는 감각이 남는다. 서비스업 종사자에게는 사람의 표정과 필요를 읽는 경험이 남는다. 운동선수에게는 반복과 자기 관리의 습관이 남는다. 오래 일한 사람에게는 바카라에서 배우기 어려운 판단력이 남는다.

우리는 자신의 직업을 너무 크게 보고, 그 안에서 쌓인 능력을 너무 작게 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변화가 찾아왔을 때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말이 사라졌는가. 아니면 손까지 사라졌는가. 대부분의 경우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시대가 바뀌면 내가 배운 모든 것이 낡아버릴까 두려워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고 익숙했던 일이 사라지면 나까지 쓸모없어진 것처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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