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이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내가 우울증이냐고 묻는다면
모른다.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우울감을 느껴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자주.
그건 내가 느끼는 거니까 알 수 있다.
우울감은 슬픔이 아니다. 실망과 좌절 괴로움 고통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무언가 흔적 같다.
심지어 기쁨과 환희가 지나간 자리에도 우울이 남아있다.
낙차가 있으면 낮음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 고통 이런 연유로 인한 것보다 더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 찾아오는 우울감이다.
감기도 아니고 연중 달고 사는 비염과 같다.
매일 숨쉬기가 답답하고 막혀있는 코처럼 말이다.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상을 지키게 해주는 여러 가지 일들은 실제로 크고 작은 동기들로 움직여진다기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베여있는 삶의 습관
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이 있으면 그쪽으로 계속 굴러가듯이
적은 힘으로도 적은 의지로도 할 수 있는 작고 소소한 일들이 자전거 바퀴 체인이 돌아가듯이 돌아가진다.
그러나 우울감이 오면 정도의 따라 다르지만
다 때려치우고 안 하게 되거나 겨우겨우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되거나
우울이 습관이 되어 관성처럼 적당히 어느 선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건드리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지금 다행인 건지 나는 우울감을 가지고도 일상을 하는데 무리 없이 관성이라는 것 가지고 하루가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빵을 먹어도 밥을 먹어도 김치를 먹어도 맛이 잘 느껴지는 것 같지 않다.
미각에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감각도 뭔가 자극이 되거나 즐거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칠 방법이 있냐고 글쎄 유명하거나 좋은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면 좋아질 수도 있겠지.
정신과 상담을 받고자 하는 순간 그 병식으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굳이 무엇하러 하는 생각을 가진 지금
고요하고 단단한 우울을 깨뜨리기 쉽지 않다.
처절하게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는 그걸 헤쳐나가려 발버둥 치다가 움직이기에 오히려 감사와 기쁨이 느껴지는데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할 때는 둥둥 떠다니는 배 위에 가만히 앉아서 이 호수밑에 어떤 괴물이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난 뒤 하루 버틸 만큼 집에 있는 뭔가를 좀 먹고 나서 아이들이 오기까지 고요한 집에서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아이들이 오면 움직이고 우당탕 정신없이 챙기다 보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러면 다시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얼른 자자 하지만 잠자기 전 또 가만히 멍하니 있다 잠자리 드는 시간에 늦어지고 아이들에게 얼른 자라고 고함을 지른다.
바위가 된 것 같다.
무엇인가 나를 산산조각 내서 부숴버리지 않으면
이끼가 낀 바위처럼 마지막까지 영원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차라리 조각조각 부서져 알갱이들이 물에 녹아 다른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