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직업을 떼고 남은 나(4)
내 달력에는 매달 챙겨 보는 중요한 일정들이 표시되어 있다. 대형 은행들의 실적 발표가 이어지고, 내가 오래 지켜본 기업의 주주총회가 있다. 숫자 몇 줄과 발표 한 번으로 끝나는 날들이 아니다. 내가 어떤 투자자가 되어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준점에 가깝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 날짜들은 긴장의 시작이었을 것다. 발표 전날부터 차트를 들여다보며 의미 없는 신호를 찾아냈고, 나오지도 않은 결과를 미리 단정하고 머릿속에서 수십 번 매매를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달력은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 일정은 분명히 중요한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조급함이라는 감정에 투자하고 있었다. 시장을 분석한다고 믿었지만 실은 시장보다 내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르면 뒤처질까 불안했고, 떨어지면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서둘러 움직였다. 그 조급함은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었지만 현명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조급함은 교묘하다. 불안의 얼굴로 다가와서는 스스로를 열심히 사는 태도로 포장한다. 가만히 기다리는 일을 게으름으로 착각하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위험하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사거나, 팔거나, 후회하거나. 그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늘 뒤로 밀렸다. 지금 이 판단은 충분히 익었는가.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실패가 쌓이고 나서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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