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를 지웠다

아이들을 그저 지켜볼 수 있다면

by나온우

첫째를 키울 때 나는 자칭 '육아도사' 였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와이프가 재울 때 1시간 동안 보채며 잠들지 않던 아이를 들어가서 단 10분 만에 꿈나라로 쉽게 보냈다. 왜 우는지 어느 가족도 알지 못할 때 '이 울음소리는 기저귀 교체 사인이야.', '배가 고프네.', '졸린가본데?' 하며 족집게 솔루션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솔루션은 대부분 정답에 가까웠다.


기가 막히게 첫째의 마음을 헤아리는 나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가 육아에 있어서는 마스터라며, 당연히 믿었다. 와이프에게는 첫째가 돌이 되기도 전에 자유시간을 주면서 큰소리를 치곤 했다. “어디 가서 당신처럼 아이 집에 두고 편히 바람 쐬러 갈 수 있는 사람 있는지 봐. 나니까 되는 거야!”라며.


첫째가 4살이 되던 해, 둘째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첫째 때는 돌 너머까지는 휴직을 하며 아이를 봤던 와이프도, 둘째 때는 육아만렙이라고 자신만만한 나를 믿고 출산 후 6개월 만에 복직을 했다. 나 또한 전업 선언을 하며 본격적으로 갓난아기 전담 육아를 시작했다. 그것이 집안의 평화가 무너지는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몇 년이 지나긴 했지만, 첫째를 전담해서 키우며 생겼던 나의 노하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둘째가 울 때 첫째에게 썼던 방법들을 썼다. 큰 소리로 자지러지게 울 때면 '뭔가 불편하구나' 싶어 안아서 토닥토닥 해줬다. 졸려서 칭얼댈 때면 첫째에게 썼던 '잠재우기 매뉴얼'을 활용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집에서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첫째와 둘째는 울음소리 시작점부터 달랐다. 한두 번 원하는 대로 자신의 불편함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둘째는 혼을 쏙 빼놓는 강성울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되면 안아서 바운서처럼 흔들거리는 필살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자신의 화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둘째는 울고 울었고, 나의 영혼이 모두 쪼그라들 때쯤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내가 생각했던 육아의 시간이 아니었다. 첫째에게 얻은 지식을 총동원해서 둘째의 어려운 순간을 슈퍼맨처럼 척척 받아내고, 남는 시간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둘째가 낮잠이 들면, 기진맥진해서 집 청소는 커녕 밥 챙겨 먹을 기운도 없이 같이 옆에 쓰러져서 낮잠을 자야만 했다. 안 그러면 에너지를 충전한 둘째와 시간을 보내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와이프에게 전화해서 애원했다. "둘째는 첫째랑 너무 달라....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좀 살려줘...." 자기만 믿으라는 남편의 큰소리에, 돌도 안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복직한 와이프는 그럴 때마다 많이 힘들어했다. 둘째까지 낳고서 예전과 같지 않은 몸의 변화를 추스르지도 못한 채 와이프도 회사에서 고군분투했는데, 내게는 그걸 감내할 여유가 없었다.


서로가 지쳐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낸다는 표현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둘째가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어느 정도 자신의 의사 표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첫째와 둘째의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는 같은 자매라고 하기에도 너무도 다른 성향을 지녔다. 육아커뮤니티에서 주로 아이들을 애완동물에 빗대어 설명하는 글을 봤다. 그 기준으로 보면 첫째는 모든 것에 조심스럽고 차분한 '고양이'고, 둘째는 언제나 활달하고 잘 웃고 발발거리며 다니는 '강아지'이다. 고양이랑 강아지랑 만나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듯, 두 딸도 참 다른 모습이다.


처음 어린이집을 갔을 때, 첫째는 적응 기간 일주일을 거의 다 채웠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와도 놀지 않고 내 다리 위에 앉아서 구석에서 조용히 교실을 관찰했다. 둘째는 적응 기간 자체가 없었다. 친구들이 있는 반에 추가로 들어갔는데도 원래 알던 친구들처럼 잘 놀고, 둘째 날부터는 낮잠을 자고 왔다. 놀라운 적응력을 가졌다.


밥 먹을 때도 둘은 참 다르다. 첫째는 한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꼼꼼히 밥을 먹는다. 다른 친구들이 다 돌아다녀도 혼자서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정도로 차분하다. 둘째는 한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지를 못한다. 시시때때로 의자 위에 올라가서 엄마아빠의 호통을 듣고, 거실에 갔다가 자리에 앉았다가... 여기저기 흘리며 열심히 밥을 먹는다.


잘못한 상황이 오면, 첫째는 지레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느끼면 먼저 엉엉 운다. 내 언성이 높아지기도 전에 이미 풀이 죽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심스럽게 타이르곤 한다. 둘째는 초대형 실수를 해도 하하호호 웃으며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내가 화를 못 참고 버럭 소리를 질러도 씩~ 웃고 앞에서 엉덩이춤을 춘다. 방으로 데리고 가야 그제야 잘못을 인정하고 엉엉 운다.


이 외에도 둘은 참 다른 구석이 많다. 정반대에 가까운 성향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첫째를 키우던 때 내가 너무 내 육아를 과찬했구나, 하고 자랑했던 내 자신을 돌이켜봤다. 그럼에도 속으로는 '그래도.. 어딘가엔 만능 정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육퇴를 하고선 소파에 늘어져 누워, 인스타에 올라오는 육아 피드들을 많이도 봤다.


누워서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면서 여러 인플루언서의 육아 정보를 보며 지금의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돌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7살, 학교 가기 전에 이 바카라 꼭 읽어줘요!', '4살 때 하지 않으면 안되는 놀이 찾아보세요', '내가 영어 유치원에 보낸 이유', '내가 영어 유치원을 끊은 이유'..... 각자 내가 하는 방식만이 맞다고 주장하는 소음들로 가득했다.


그 글에서 묘하게 피곤한 감정들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의 육아를 보고 내가 하고 있는 게 부족하지는 않은지 계속 되묻는 과정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얘기를 하는 건데, 왜 나는 그 피드들을 놓지 못하고, 비교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손은 자연스레 쉴 때마다 인스타 아이콘을 찾았다. 고민 끝에 인스타 계정을 삭제하고 세상과 멀어지기로 했다.


친구들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건 아쉬웠고, 요즘 인스타는 단순한 SNS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정보들을 모두 끌어다 주는 알고리즘 보물창고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닉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콘서트 정보도 놓쳤을 때는, 다시 인스타를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닌가 후회가 되기도 했다. 최신의 정보들은 모두 인스타에 있었다.


세상과 멀어지는 듯했지만, 그래도 내가 관심 있는 정보들을 스스로 더 깊이 있게 선택했다. 육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답과 같은 육아법을 찾고,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는지를 보며 나의 육아 방식을 계속 비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둘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순간, 폰으로 '소리 지르는 아이 잘 훈육하는 법'을 찾아보지 않았다. 폰을 내려놓고, 자세를 낮추고, 그저 안아줬다. 버둥버둥 화가 덜 풀린 듯한 둘째는 어느새 마음이 풀렸는지 내게 머리를 폭 기댔다.


아이들은 모두 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집의 친구들이 그렇고, 한 배에서 나온 두 딸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이 매일 다른 이유로 두 딸은 투닥투닥거렸다가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서로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바라보고,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표현한다. 오늘도 작은 사탕 하나를 나눠 먹는 걸로 싸우는 7살, 4살을, 그저 지켜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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