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가스라이팅
일시 불명 4년 전. 문뜩 의문을 가진다. 오른쪽은 언제나 한산하네. 금년 그저께. 동일한 의문을 가진다. 가만히 있을 때나. 적당히 달릴 때나. 질주할 때나. 훅 들어온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예사. ‘하이패스’라는 비유가 이리도 적절할 수 있을까. 두뇌라는 요금소에 머문 시간은 정말 찰나. 이 녀석은 단말기도 없어 추적을 못 한다. 물음표를 떠올리고 바로 이어 온점을 찍는다. 어? 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지 참.
여기에 호기심을 품었던 기억이 몇 차례 존재한다. 관심은 꾸준했다. 그 사실을 인지한 경우가 손에 꼽아서 그렇지. 이번에는 한 계단 넘어 수첩을 열어본다. 22년도 목록. 기록된 흔적이 나온다. 미루고 미루었다는 의미지. 대신 그동안 물증을 착실히 쌓았다. 나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특성. 여기서 빛을 낼 줄 누가 알았겠나. 시각적 물증인 셈이다. 꾸준한 의문이었으니 비교적 수월하게 적지 않을까. 풀어낼 때가 왔다.
자동차를 소유한 지 어느덧 4년. 자의든 타의든 여러 곳을 누볐다. 용인, 대전, 군산, 전주, 광주, 나주. 당장 기억나는 이 지역들을 회상한다. 도로 구조나 넓이, 운전자 여유, 대중교통 기사의 성격. 하나로 단정하기 힘들어도 경향은 짐작이 간다. 고장마다 다른 이 특성들은 곧 도로 위에서 개성을 만든다. 느긋하거나, 지루하거나, 전투적이거나, 사무적이거나. 동포인데 갈래가 이리 다채롭다.
그래도 같은 민족이라고 하나는 유사, 아니 공통이다. 여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 문장까지. 텅텅 빈 끝차로는 뭔가 뭔가다. 운전자가 이리도 기피하는 원인은 뭘까. 물론 북적이는 경우도 있다. 토요일 코스트코 입구나 강남터미널 나들목. 무언가 큼지막한 시설로 입장할 때. 그곳으로 향하는 경로가 그뿐일 때.
이걸 배제한 나머지. 예컨대 교차로, 대로, 고속도로. 이들은 뭘까. 서울과 인천은 고의로 기술하지 않았다. 워낙 바빠서 그런지 물불 안 가리더라고. 필자는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두려워 끄트머리를 비워둘까. 실리적인 이유는 대충 알겠다. 교차로부터 말해보자. 시꺼먼 바닥 위에는 순백의 화살표가 있다. 앞과 우를 가리키는 그것. 직진이나 우회전 모두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규칙은 그러한데 현실은 다르다. 눈치. 그래, 살면서 등한시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빨간빛 신호등. 같은 줄에 각기 다른 목적을 품은 사람들. 맨 앞은 직진을 기다리는 그가 있다. 뒤이은 나머지는 모두 우회전을 고대한다. 선두가 이상하냐고.
아니다. 우연의 일치다. 몇몇이 그 자신을 악당으로 세뇌하게끔 유도한다. 경적은 콧방귀도 사치요. 뭐 하고 있냐, 창문 너머로 이런 호의를 기대하게 된다. 오죽 계속되어 권리인 줄 당연시하게 여기며. 가슴이 조여온 그는 동조에 휩쓸려 버린다. 수줍게 건널목을 야금야금 삼키는 그 모습. 애석하다.
순수 창작 문학이면 좋을 텐데. 체험담이라니. 3년 전 어느 날 20시를 넘긴 시점이었을까. 이런 실화는 어째 곧바로 튀어나온다. 동물의 숲도 아니고. 친구와 저녁을 마친 뒤 그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편도 2차선을 적당히 달리는 와중 교차로에 멈춰 섰다. 곧이어 탑차가 내 뒤에 붙었지.
30초는 지났을까. 일단 60초는 아니다. 기사는 경음기를 꺼내 들었다. 물론 빨간불 도중에. 그의 전완근은 지치지 않는다. 밤이라 망정이지 그래도 어린이 보호 구역인데. 로켓배송이 사람을 이렇게 망쳐 놓는다. 물론 그 인간이 쿠팡인지는 기억에 없다. 칼퇴근은 명목일지. 실은 암암리에 시간 초과 벌금을 부과할지. 알 방도가 없다.
옆거울을 보니 그는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내밀기까지 한다. 아 뭐 하는 거야. 대사도 내뱉어 주신다. 동시에 색깔도 바뀌었다. 덕택에 그가 말하자마자 출발하게 되는 짧은 희극을 연출했고, 정지선을 넘는 일이 없었다. 위 소설과의 유일한 차이다.
선두는 잘못이 없다. 분위기가 없던 잘못을 만들지. 구급차가 달려야 하는 긴급 상황도 아닌데. 정지선 넘다 누가 ‘검정상자'로 고자질하면 누가 보상해 주나. 고백을 하나 꺼내면, 나는 방향지시등에 눈치를 보곤 했다. 본인의 이동을 예고하기 위한 당연한 장치인데. 괜히 찔렸다. 경적을 울리지 않아도 찜찜했다. 자신에 의해 시간이 지체되는지. 괜히 사서 생각했다.
이래서 수도권에 다가갈수록 직진 금지가 많이 보이나. 공공기관의 숨겨진 배려일지 모르겠다. 경적의 공포와 괜한 눈치. 교차로의 까닭은 대강 이렇다. 빨간불 교차로에 끝차로가 비어도 주저하지 말자. 우회전 통행이 잦다면 배려 차원에서 비워둘 수는 있다. 뒤집어서 내가 뒤에 붙은 입장이어도 생각 없이 바라보자. 그걸 강요하는 실태가 이상하니까.
이걸로 신호등 경기 1등을 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