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수

500자로 턱도 없는 머리말

by엉금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낚아채서 적은 단문이다. 5년간 전화기와 노트북에 차곡차곡 쌓아왔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조심스러웠다. 스스로 보기에 완성도가 미약하다. 어딘가에 풀고 싶다는 욕심은 차곡차곡 누적되는데. 일부에게만 공개할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거쳐 비공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여기까지 23년도의 본인 기록이다. 숫자 5가 8로 변했구나. 지금도 창고에 꾸준히 저장하고 있구나. 다만 25년부터 그 양은 다소 줄었구나. 이건 비교적 최근에 깨달았다. 간만에 잠자리채로 낚아 휴대전화에 넣어둘 때였다. 전화기에 내장된 수첩이 간만에 모자를 벗었지.


늘 그랬듯 난 연도별로 생각을 서랍에 넣어둔다. 자리를 뒤로할 찰나 이름표에 적힌 ‘2025’가 날 붙잡았다. 작년에 내가 기록을 얼마나 했는지. 세어본 그 분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몇 개였더라. 이 문장을 적자마자 다시 연다. 이십일. 그러니까 스물하나. 재작년 그것에 비해 엄지가 너무 빨리 멈춘다.


확실히 작년부터 난 귀찮았다. 생각을 납치하는 순발력은 쇠퇴하지 않았다. 내가 귀찮아서 방생했을 뿐. 방관하지 않았다면 개수는 24년 못지않았을 테다. 아쉬운 마음은 안 생긴다. 작금이 생각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고. 날아간 제비는 한 번쯤 초가집으로 돌아오겠지. 사람이 어찌 매마다 전혀 새로운 내용만 떠올리겠는가.


시기가 썩 기다랗지도 않다. 수년 동안 차곡차곡 쌓았는데 이쯤은 뭐. 적으면서 느끼는데,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긴 했다. 행복한 일이다. 설렁설렁한 25년도는 대신 회복을 선물했구나. 이만큼은 적어야 만해. 만약 작년을 이렇게 보냈다면. 짐짓 아찔하다. 내 무엇이 변하든 수필은 결코 억지로 쓰지 말아야겠다. 26년에 다짐을 이렇게 하나 더해본다.


종류는 수필. 문체가 다소 신랄하게 다가올 만하다. 떠오르는 대로 막 적어서 그렇다. 그래서 내 글 보면 단문이 참 많다. 물론 어순에 맞도록 생각날 때마다 고친다. 비속어는 추호도 없다. 상세한 표현의 걸림돌이 된다. 일단은 올려 본다.


여기까지 23년도 기록의 두 번째 문단이다. 여기는 토씨 하나 변했다. 전만큼 마구 쓰지 않는 자신을 상기한다. 무엇이 두려운지. 필자는 필자에게 질문을 낸다. 뒤에서 지그시 보는 사람 없고. 한 번 적으면 지우기 힘든 볼펜도 없고. 여기까지 적고 멍을 때린다.


순간 두뇌가 굴러가지 않는 본인을 인지한다. 그래, 그냥 떠오르지 않아서 적지 못했구나. 졸졸 흐르던 시냇물은 정체 모를 댐에 막혀있다. 노트북을 열기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자기 머리와 속내는 낯을 가리고 있다. 뇌와 손이 글자와 다시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더해본다.


3년 전 나는 저랬구나. 다른 곳에 처음 연재했을 때 예고로 적은 내용이다. 새로운 시작. 이런 구태의연한 표현은 집어치우고. 당시에서 현재로 오며 내가 얼마나 그대로인지. 혹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짚어보고자 하는 심정이다. 얻은 바는 재확인 정도일까. 잠깐. 하나를 적지 않았구나.


글은 작가를 따라간다. 그가 답답하니 그것도 답답해한다. 이전 장소에서 얼마 되지 않아 모두공개로 바꾼 이유다. 나의 생각을 많은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다. 내가 헤엄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신기하게 바라보면 좋겠다. 끝을 모르는 원영. 도달점을 모르겠으나 오히려 좋다.


혈액이 멈추는 그날까지 기록은 계속하길 바란다. 2호선처럼 되지 않을까. 순간 짐작하나 그럴 일 없다. 환경이 변하고. 지인이 변하고. 본인이 변하는데. 문자 그대로 흐름에 맡기올시다.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제안한다. 읽는 당신과 쓰는 나에게. 글과 함께하는 내 추후도 살아가는 대로 지내겠다. 거스르지 않겠다.


근데 나 연어 좋아하는데.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그 힘찬 생명체. 위 문장이랑 괜히 모순되는 기분이다. 옳다구나. 이거다, 나는 연어. 거슬러 오른다는 말은 우물 밖 기준에서 하는 소리다. 그의 입장, 곧 나로서는 그게 정방향인데. 그 헤엄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연어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이상 바카라 이름을 바꾼 서사다. 올리기 직전. 눈 깜짝할 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