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었을 때 취향은

by흔적


취향과 가치관의 교집합을 찾았다는 건 어찌 보면 행운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신념과 기준이 있고, 그것을 일상 안에서 좋아하는 것들로 유지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삶을 잘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은 건 아니다. 가치관도 취향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직업적 고민은 여전히 나를 때때로 흔들리게 하고, 앞에 뿌연 안개가 놓인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삶의 방향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도 그것을 어떻게 생산성 있는 직업으로 연결해 나의 정체성을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숙제로 남아 있다.


세상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삶은 없다.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건 언뜻 보면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길잡이가 되어줄 롤모델이 없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다. 고민하는 내게 주변 친구들은 “그래도 너만의 길을 찾았잖아.”라는 말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시에 외부자의 시선이기도 하다. 밖에서 보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와 인생의 가치관을 찾은 사람은 확신에 찬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그럴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새로운 세계로 들어와 보니 이곳은 내가 이전에 살아왔던 세상만큼이나 복잡하고 광활한 곳이었다. 작은 동네인 줄 알았는데 또 하나의 행성이었다. 너무 망망대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어딘가엔 정보들이 있고 전문가들이 존재할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여기저기 흩어져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전혀 다른 분야로 직업을 바꾸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바라본 내부는 그랬다. 그 안에서 한 번 더 길을 잃어야만 했다.


2년간 운영했던 제로웨이스트샵을 정리한 후 본격적인 ‘길 잃기’에 들어갔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내 가치관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진지할수록 답이 보이지 않았다. 전문성을 더하고 싶었지만 환경 안에서도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다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활동을 하고 싶기도 했다. 환경과 관련한 변화는 우리 슬롯의 산업 전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하나의 분야로 특정할 수 없다. 그 유연함과 자유로움은 더 많은 선택지를 가져다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자꾸만 속으로 물었다. 그래서 난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흔적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추구합니다.

1,12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예쁜 것과 못난 것의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