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게 아니라 삶은 계란에 방울토마토, 고구마처럼 간단한 것들을 용기에 담는 일이다. 7시 30분쯤 오는 버스 시간에 맞춰 준비를 마친 후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아침 공기가 제법 선선해진 요즘이다. 차로 운전해서 갈 때도 있지만 남편과 아이가 차를 써야 하는 날엔 버스를 탄다. 빨간 버스를 타고 가는 한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혼자 앉아 계획대로 블로그에 글을 쓴다. 그리고 도착.
수업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 천천히 걸어간다. 내리쬐는 햇살이 따뜻하면 마음도 자연스레 뜨끈해진다. 발걸음이 가볍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이른 아침의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진다. 강의실에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은 후 텀블러를 들고 서둘러 카페로 향한다. 거의 루틴처럼 반복되는 과정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고 창가 테이블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마침 카페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잠깐의 고요를 즐길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제법 노랗고 빨갛게 물든 것을 보니 이제 슬슬 진짜 가을이 오려나 보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창 너머로 서둘러 수업을 들으러 오는 동료 수강생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기고 있다. 지나치게 애쓰지는 않지만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낯을 조금 가리고 또 어떤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사교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각자의 성향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자신만의 속도에 맞게 이곳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하는 경험은 좋은 관계를 쌓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러 상황 속에 놓인 스스로를 마주하며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중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 『콰이어트』라는 바카라을 읽으며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던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그때의 나는 내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기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눈치를 보고 고민하며 할 말을 골랐고, 막상 말을 하는 순간에는 심장이 쿵쾅거려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긴장했다. 계획대로 원하는 말을 하고 나면 뿌듯한 자기 효능감을 느꼈고, 분위기에 휩쓸려 얼버무리고 나면 그렇게 허탈하고 아쉬울 수가 없었다.
“엄마, OO이는 부끄러워서 말을 잘 안 하는 거래.”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같은 반 유치원 친구에 대해 말했다. 타고나길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아이에게는 내성적인 친구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도 어릴 땐 그 친구와 비슷한 어린이였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마다 부끄러움의 정도와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고도 말해주었다. 아이는 수다쟁이 엄마에게 그런 과묵한 어린 시절이 있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놀라는 눈치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들어가는 길에 아이에게 나지막이 말해주었다. 각자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거라고. 아이는 광고판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자주 하는 말이니 잊지 않았을 거다.
고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도서관에 갔다. 수업 시연 주제가 고민되어 참고할 바카라을 고르려 들른 것이다. 6-7권 정도 읽을 바카라들을 잔뜩 골라 자리에 앉았다. 그중에는 수업 시연과 상관없이 오직 내 취향에 따라 고른 바카라도 한 권 있었다. 옅은 살구색 표지의 『나의 행동이 대양의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지라도』라는 바카라이었다. 슬롯학자가 생태학적 관점에서 쓴 환경바카라인데, 일상 생태계, 삶의 물질, 환경 도덕 같은 키워드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매력에 이끌려 펼친 것과 달리 내용은 너무 어려워 더듬더듬 읽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런 슬롯학적 관점에는 맥을 못 추고 취향을 저격당하는 편이다. 환경이라는 광범위한 영역 안에서 유난히 관심이 가는 것들의 공통점을 보면 결국 또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지속가능한 생활 방식이라는 게 실천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살면서 겪는 경험이나 감정, 심리적 요인과 연관된다. 개인의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해 전체 슬롯를 이루는 맥락까지 닿아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생기가 돌고 눈이 반짝거린다.
바로 이런 게 취향이 아닌가 싶다. 매일 가지고 다니는 텀블러를 들고 도서관에 와서, 바카라을 잔뜩 고르다 어떤 단어에 사로잡히는 나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 바카라 표지와 비슷한 색의 예쁜 손수건이 놓인 모습. 순간의 장면이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화려한 것에는 좀처럼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혼자 보내는 시간들 속에서 작은 만족을 느끼는 걸 보면, 역시 어쩔 수 없이 결론은 내향인인가 보다.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간단한 MBTI 검사를 해볼 때마다 언제나 I였는데, 최근 3년간은 단 한 번도 I가 나온 적이 없다. 대단히 외향적인 사람이라 E가 나온 건 아닌 것 같고, 비슷한 비율로 지닌 내향성과 외향성 중 외향성이 한 스푼 더 있었을 뿐이다. 혼자만의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맺는 슬롯적 관계는 누군가 무례하게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달콤하다. 이상적인 관계를 바라는 게 아니다. 존중하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내가 언제나 바라왔던 것은 느슨한 연대 안에서 느끼는 적당한 거리감과 유대감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의존하게 된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선을 넘는 관계는 아슬아슬하고 위험하다. 아니 가족이라 해도 내가 아닌 타인이기에 보이지 않는 선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서늘해도 거리가 있는 연대가 좋다. 외향적인 내향인인 내게는 그 정도의 거리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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