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의 문제
여러분은 작가로서 어떤 컨셉을 가지고 싶으신가요? 이렇게 물으면 작가가 글만 잘 쓰면 되지, 굳이 컨셉을 왜 잡아야 하느냐는 의문점을 가지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작가에게 컨셉이란 결국 ‘독자에게 기억되는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문적인 작가가 되고 싶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고, 또 어떤 사람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하는 작가, 어떤 사람은 깊이 있는 생각을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바로 그런 것들이 작가의 컨셉입니다.
컨셉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예전 글에서 꽤 길게 이야기했으므로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왜 독자에 따라 컨셉이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만 좀 더 부연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 글을 먼저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컨셉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고, 둘째는 남들이 보고 싶은 모습이지요.
이 두 개가 잘 맞아떨어지면 좋은 컨셉이 나옵니다. 반대로 이 두 개가 많이 어긋날수록 좋은 컨셉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하지요. 내가 보여주려는 모습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고, 반대로 나는 별로 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인데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언젠가는 그 괴리감 때문에 내가 힘들어질 테니 말입니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우선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중심으로 삼고, 그걸 ‘남들이 보고 싶은 모습’에 맞춰 조금씩 가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집중하다 보면, 비록 남들이 별로라고 평가해도 최소한 공허함은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내 모습을 좋아해 줄 독자도 나타날지 모르고요. 마음이 편치는 않더라도 어쨌든 계속 이어 나갈 힘은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추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공허함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모습에 신이 날지도 모르지만, 점점 맞지 않는 옷이나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어색하고 힘들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 중에 반드시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한다면 저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나만의 콘텐츠를 포기하지 않되, 대신 사람들의 눈높이와 취향에 조금씩 맞춰가는 노력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런 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는 게 싫으신가요? 저는 그걸 타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계에 노련해지는 것이지요. 평소에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는 사람도 장례식장에 갈 때는 어두운 색의 깔끔한 옷차림을 찾아 입잖아요. 이런 걸 두고 ‘나만의 개성을 무너뜨리는 타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자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입니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뿐만 아니라 인생 대부분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나만의 메시지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걸 어떻게 보여주느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집중하고 ‘나만의 메시지’를 지켜가는 데에는 실패한다는 것이지요.
살아온 인생이 엄청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 눈치를 많이 안 봐도 생각보다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정도는 되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진심으로 눈치 보며 챙겨야 할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요. 모든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내 배우자에게만 매력적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내가 아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친절하면 충분합니다.
작가로서의 컨셉을 잡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와 비슷한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 모습을 어떤 사람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그 사람들이 과연 이 모습을 좋아해 줄지를 냉정하게 판단해보는 것입니다.
마치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같지요. 저 사람이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꾸며보려고 노력하는 것.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상대방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