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완연해지자 농업기술센터 토양검정실 앞에 긴 줄이 섰다. 비료를 주기 전, 작물을 심을 밭의 영양 상태를 확인하러 온 농부들이다. 일명 ‘흙 건강검진’의 날이다.
토양검정실에서는 농부가 밭의 모서리와 한가운데에서 흙을 300~500g 정도 채취해 검정실 봉투에 담아가면, 정밀 분석을 거쳐 맞춤형 '토양 비료사용처방서'를 발급해 준다. 비료사용처방서의 분석 항목은 병원 종합검진만큼이나 꼼꼼하여, pH 농도부터 칼슘, 칼륨, 마그네슘, 유효인산 같은 필수 미네랄은 물론이고 중금속 검사까지 포함된다. 농부들은 받아 든 비료사용처방서를 들고 밭에 부족한 영양분을 찾아 시비한다. 밭에 든든한 영양주사를 놓아주고서야, 농부는 비로소 마음 놓고 씨 뿌릴 준비를 마친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지만, 나도 슬그머니 줄을 서고 싶어졌다. 대농들 사이에서 내 작은 흙 한 줌을 보태어보고 싶은 욕심도 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은 밭 하나로 줄을 설만큼의 용기는 나지 않았다.
농업기술센터 농업대학의 봄 풍경은 경험 많은 선배들과 초보 농사꾼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부산스럽다. 연륜이 묻어나는 농사 선배들은 모일 때마다 서로의 비결을 나누며, 새로 심은 나무와 작물을 자랑하기 바빴다. 식물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애정은 묘한 전염성을 가져서, 누군가 새로 심은 나무가 좋다고 하면 다음번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른 집에도 그 나무를 심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일종의 식물 수집증 같은 열병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다.
좁은 마당과 밭의 공간을 어떻게든 쪼개어 자리를 만들고 기어이 심고 나서야 만족의 미소를 짓는 그들은, 마치 자신만의 왕국을 다스리는 군주들처럼 행복한 농사꾼들이 되어간다. 평소 표현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식물을 키우는 순간만큼은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마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은, 흙을 밟고 사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비밀이다.
한번 고삐가 풀린 대화는 퇴비 이야기로 이어진다. 폭신폭신한 흙 만들기에 진심인 이들은 축분 퇴비에 진심이다. 섬유질이 많은 소똥 우분, 질소와 인산이 고루 든 돼지 똥 돈분, 양분이 많지만 질소가 많은 닭똥 계분, 천연 인산과 칼슘이 풍부한 생선 뼈 어분 등 각기 다른 천연 비료 얘기로 넘어간다. 작은 밭이라도 일궈본 사람들 사이에선 진짜 농사의 시작은 퇴비 만들기라고 입을 모았다. 각자가 최고라 자부하는 천연 비료 배틀이 정점에 달한 후, 이 치열하고도 흥미진진한 퇴비 이야기를 잔뜩 듣고 집으로 돌아온 날에는, 저녁 식탁에 올라온 생선 뼈마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자잘한 부작용도 생긴다.
봄날, 아직은 싹도 나지 않은 황량한 땅이지만 농부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온갖 작물이 무성하게 자라난 풍요로운 환영이 보이기 때문이다. 손바닥만 한 작은 밭뙈기든, 너른 밭이든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그 흙 위에서 저마다의 달고 푸른 꿈을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