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강한, 쇠뜨기

by에코바바



시에서 분양받은 텃밭을 보러 가는 첫날 우리는 참으로 설레었다. 아이와 빨간 장화를 맞춰 신고 텃밭을 일구러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텃밭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마주한 밭은 수돗가라 물 대기 좋은 밭이었다. 둠벙을 만들기에도 좋았다. 그만큼 질펀해지기도 쉬운 밭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농사일은 멀칭을 걷어내는 것. 전 텃밭 주인이 갈무리하지 못한 검은 흔적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 상자일 줄 알았는데, 아이는 멀칭 비닐 당기는 일을 줄다리기 놀이쯤으로 생각했는지, 흙 속에 파묻힌 검은 비닐을 작은 손으로 열심히 잡아당겼다. 뺨이 붉어지도록 돌을 고르고 손을 움직였다.


밭 표면을 덮어주는 멀칭은 보통 검은 비닐이다. 멀칭 비닐은 토양의 수분을 보존하고 잡초 씨앗들이 싹을 틔우지 못하게 하여 잡초를 뽑는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농사 도구다. 친환경적이진 않지만, 멀칭을 하지 않으면 무더운 여름 잡초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어 단일 작물 경작지에는 일찍이 멀칭부터 했다.


아직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단단한 땅을 파헤칠 때마다, 차갑게 얼어붙은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지렁이, 조그만 집게벌레들이 놀란 듯 고개를 내밀었다. 예기치 못한 작은 생명체의 등장에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땅속 동물들의 발견 이후, 차가운 흙을 만지는 손길에도 어느새 조심성이 묻어났다. 그렇게 흙을 만지며 땀을 흘리는 사이, 밭 위로 포근한 볕이 들기 시작했다. 봄이 오고 있었다.


황량하던 밭 울타리 가장자리에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민 초록 생명체는 쇠뜨기다. 텃밭 이웃은 내게 많이 올라오는 잡초라고 일러주었다. 소가 잘 뜯는 풀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쇠뜨기는 들에서 숱하게 접하는 잡초였지만 처음 만난 풀이어서 그런지 반갑기만 했다.


쇠뜨기는 조금 기묘한 식물이다. 연한 초록색이 올라오기 전, 포자가 달린 생식 줄기가 이른 봄 먼저 나와 뱀 같은 포자낭 이삭을 만든다. 뱀 머리를 닮은 연갈색 뱀밥이 포자를 남긴 채 하얗게 시들어갈 무렵, 새 줄기가 초록 마디에 잎이 돌려나듯 나온다. 뱀밥은 층층이 갈색 차양을 두른 타워처럼 자라나는데 붓같이 생기기도 하여, 필두채(筆頭菜)라고도 불렀다. 영양분이 풍부하여 나물로도 먹는다지만, 모양이 그래선지 낯선 생김새 탓에 쉽게 손이 가지지는 않았다.


쇠뜨기는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풀인 만큼, 생명력이 유독 강한 탓에 제거하기 어려운 잡초로 분류됐다. 모든 생명체가 절멸했을 것 같던 히로시마 원폭의 황폐함 속에서도, 가장 먼저 대지를 뚫고 자라난 초록 풀이 쇠뜨기였다고 하니, 생명력이 어마하다. 실제로 뿌리줄기로 번식해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라나는 속성이 있다.


울타리 너머로 쇠뜨기가 파릇하게 올라오면, 이제 망설임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땅을 일굴 시간이다. 흔한 잡초라지만 ‘처음’이 가지는 의미 때문인지 쇠뜨기를 흐린 눈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첫사랑이 이렇게 무섭다. 쇠뜨기의 푸른 잎을 모아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센터 피스를 완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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