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저마다 모양이 다른 만큼 멀리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을 세운다. 달콤한 과육으로 동물들에게 먹힌 뒤 여러 곳에 배설되어 자라나는 씨앗이 있는가 하면, 도깨비바늘처럼 동물의 몸에 몰래 옮겨 타는 씨앗도 있다. 신발 밑창이나 동물의 발바닥에 끈질기게 붙어 이동하는 질경이, 다람쥐나 청설모가 겨울 식량으로 땅속에 숨겨둔 덕에, 농부처럼 심어지는 도토리와 땅콩도 존재한다. 여기에 꼬투리를 강하게 터뜨리며 멀리 튕겨 나가는 물봉선과 가벼운 몸으로 물 위를 유람하는 연꽃과 코코넛까지.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식물들이 펼쳐 내는 전략이 어찌나 치열하고 기발한지, 마음속으로 '식물 번식법 시상식'이라도 열어주고 싶어진다. 만약 나에게 단 하나의 추천권이 있다면, 낭만 부문에는 주저 없이 민들레의 이름을 적어낼 것이다. 바람을 타고 기약 없는 여정을 떠나는 모습이 꼭 ‘방랑하는 여행자 같다’라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거대한 번식의 세계에서 민들레만큼 낭만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
민들레는 씨앗 낙하산을 메고 둥둥 떠다니다 운명 같은 땅을 만나 정착하곤 한다. 그곳이 어디든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세상 구경을 하다가, 닻을 내리는 순간 뿌리를 뻗어 일가를 이룬다. 그래서 목적지 없는 티켓으로 곳곳을 유람하는 자유 여행자를 닮았다.
어릴 적에는 민들레 줄기를 꺾어 볼 한가득 바람을 넣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불었었다. 민들레 씨앗이 다 떨어져 흩어질 때까지 호흡 끝까지 불어 씨앗이 하늘로 사라지게 했다. 솟아오르는 민들레 홀씨를 끝까지 바라보는 일. 어릴 적 우리에겐 심심함을 달래는 장난에 불과했지만, 돌이켜보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향한 작은 배웅이었다.
몇 해 전, 샤를 드골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루아시 버스 안에서 이 방랑자를 만났다. 찌는듯한 더위 속에 한 승객이 더위를 식히려 버스 창문을 열었을 때, 선선한 바람과 함께 민들레 솜털 하나가 날아 들어왔다. 빛나는 햇살과 함께 날아든 민들레 씨앗 하나에, 솟아 있던 승모근도 더위와 함께 스르르 내려갔다.
낯선 곳에서 불안함에 머뭇거릴 때마다, 민들레는 ‘너는 지금 지구별을 여행하는 중’이라 말해주는 듯 나타나 안도를 선물하곤 했다. 든든한 안내자처럼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여, 내가 발 딛는 모든 길 위를 함께해 주었다.
민들레는 봄꽃 중 가장 이르게 꽃을 피워낸다. 덕분에 꽃 기근의 계절, 배고픈 곤충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고마운 양식이 된다. 황량한 들판에 묵묵히 피어나 곤충의 먹이가 되어주는 모습은 어두운 대지를 밝히는 작은 등불을 닮았다. 꽃이 진 자리, 170여 개의 씨앗 자루가 방사형으로 갓털을 펼치며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완연한 봄이 오기 전, 나지막한 산허리 덤불 위로 반짝이는 참마 열매와 허허벌판에 피어난 민들레의 노란빛은 황량함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한다. 아직 푸른빛이 드문 들판, 연초록 잎과 샛노란 꽃 곁으로는 어느새 맺힌 복슬복슬한 솜털 씨앗 뭉치도 자리를 잡았다. 덜 가신 추위 속에서도 찾아올 따스한 계절을 조용히 기다리는 민들레, 이 계절 갈색빛 자연을 다정하게 이어주는 식물의 존재가 참 귀하고 다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