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답장, 인시그니스

by에코바바


꽃 작업을 위해 반려 식물인 칼라데아 인시그니스의 잎을 자르기로 한 날이다. 작업을 하려면 인시그니스의 잎을 잘라야 하는데… 주저하게 된다. 인시그니스의 곧고 단단한 줄기를 잡고 짧은 숨을 내쉬었다. 줄기 너머 생명력이 어찌나 강하게 느껴지던지… 가위에 힘을 주었을 때 손끝에 전해지던 그 딴딴한 저항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덕분에 불꽃 같은 인시그니스 센터 피스를 완성했지만, 잎 잘린 인시그니스 화분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후 인시그니스에게 작은 편지를 보냈다.



나의 칼라데아 인시그니스에게


꽃시장에서 너에게 첫눈에 반해 너를 곧장 집으로 데려왔지. 중앙아메리카 태생의 너는 윤기 나는 반점을 가진 앞면과, 매혹적인 보랏빛의 반전 매력을 뒷면에 품은 아름다운 관엽식물이었어. 너는 나에게 평생 나의 반려 식물이 되어주겠다고도 했지. 그런 너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어느샌가 작업에 너를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타오르는 불꽃 앞에 스러지지 않는 초가 없듯, 나 역시 고민을 했어. 반복하듯 시름도. 결국, 너의 아름다움을 남기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것이 너에게 한없는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 끝내 너의 푸른 숨결을 가위로 잘라내고야 말았어.




반려 식물 인시그니스가 나에게 보낸 답장


내 가장 아름다운 초록을 기억하니?


너는 내 잎의 반짝이는 빛깔에 감탄하며

계속 바라봐 주고 윤기를 내주곤 했지.


그런 너에게 나는 ‘늘 이 자리에 머물며, 평생

너의 반려 식물이 되어주겠노라’고 속삭였는데.


너는 그걸 예쁘다며 잘라 가 버렸지.


너의 캔버스 위에서 내 이파리가 영원히 빛날 수

있다며.


그렇게 됐을지 몰라도, 잘려 나간 내 몸의 자리는

오랫동안 시리고 아팠어.


내 몸을 쪼개어 너의 예술을 완성한 너를,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인시그니스는 약속대로 내 반려 식물이 되어주었다. 애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도 인시그니스는 아직 내 옆에 있어 주었다. 처음 만난 청년기처럼 활력이 많진 않아도 끊임없이 예쁜 잎을 내어주고 그 자리를 지켜준다. 나는 가끔 인시그니스의 잎을 잘랐던 그날이 떠올라 그를 지긋이 본다. 그러곤 두런두런 말을 건넨다. 그러다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반려 식물 인시그니스가 나에게 보낸 두 번째 답장


시간이 참 많이 흘렀네.


문득 옆을 보니 너도 나만큼이나 닳고,

상처 입고, 때로는 세상에 베인 자국을 안고

살아가고 있더라. 네가 미안하다고 건넸던

편지를 다시 읽었어.


사실 너를 기쁘게 용서했다는 건 거짓말일 거야.

하지만 몇 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같은

창가에서 네 숨소리를 듣고, 네가 흘리는 눈물과

한숨을 같이 삼키다 보니 알게 되었어.


너는 그저 너로 살기 위해 치열했을 뿐이라는 걸.

용서했냐고 묻는다면, 글쎄.

다만 이제는 그냥 내 옆에 있는 한 사람 친구로서

너를 가만히 이해해 보기로 했어.


우린 너무 오래 곁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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