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요가를 다녀온 뒤 도서관에 갔다. 『밤의 가장자리에서』를 읽었지만 사실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점심으로 먹은 음식 때문인지 입이 텁텁해 양치를 하고 다시 바카라을 펼쳤다. 그러다 출력할 것이 있어 프린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답답했다. 이야기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바카라을 읽고 영화를 보지만, 정작 '그래서 이걸로 뭘 할 건데?'라고 자문하면 답이 없다. 어제는 에릭 로메르의 『비행사의 아내』를 보았다. 사람은 결국 제 좋은 대로 살아가고,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정작 내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다.
오전에는 피아노를 쳤다. 쇼팽의 녹턴 13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답답함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방송 수익을 정산해야 하는데, 후원자가 결제한 시점부터 30일 동안 금액을 묶어둘 뿐만 아니라 오늘로 30일이 지났는데도 환전이 되지 않았다. 고객센터에서는 조금 더 걸릴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조금'이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유를 갖고 살자고 다짐했지만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완전히 여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 집 계약을 마무리할 시점도 다가오고 있다. 엄마도 동생도 한 번 오겠다고 했다. 오지 않아도 괜찮지만 오겠다는데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알겠다고 했다. 엄마는 삼촌이 후두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나둘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며 과거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와 다르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내 삶에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 사람은 인생에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그 생각을 완벽하게 실현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연대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혼자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날씨가 차가워지면 그 문장이 여전히 유효한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이맘때 만났던 쓰레기 같은 인간이 떠오른다.
오늘 본 영화는 『나인앤어하프』였다. 지나치게 통속적이어서 중간에 꺼버렸지만, 나중에 줄거리를 찾아보니 감정이 없는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평생 그런 식으로 살아갈 옛사람을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 먹어봐야 알았던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위해 노력할 자신이 없어 결혼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참 매정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말이 조금 이해되기도 한다. 앞으로 누구를 어떻게 만나야 할까. 과거에는 왜 그랬을까. 그런 생각들로 불행한 하루였다. 생각했던 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나의 성향도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과거의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오늘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