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이 승인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십 년 동안 다닌 회사와의 관계가 문자 한 통으로 끝났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인데 생각보다 담담했다. 이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대한 부담이 반가움보다 큰 나는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여행이 퇴사를 기념하는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을 하며 지난 십 년의 회사생활을 떠올렸다. 악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그만하고 싶었던 수많은 날들, 그리고 결국 정말 그만두기까지의 시간. 20대와 30대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었다. 황혼이혼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 이럴까 싶었다. 삶의 대부분을 함께한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홀가분하면서도 동시에 함께했던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일이었다. 이제 수입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돈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일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돈은 나를 짓눌렀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가는 길에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렀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세운 가족이 있었고, 아버지가 딸에게 다정하게 어디에 있을 거냐고 묻자 딸은 프라다라고 답했다. 여유가 있는 집인가 보다 생각했다. 휴일에 명품을 쇼핑할 수 있는 삶은 저런 것이구나 싶었다. 나도 랄프로렌으로 향했다. 사고 싶었던 재킷이 있었다. 백만 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마음으로 아울렛을 찾았고, 그곳에서 원하던 헤링본 소재의 재킷을 발견했다.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매장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간간이 외국어가 들렸다. 재킷 하나를 사는 것도 고민해야 하는 나와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비되어 보였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위압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비를 줄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소재와 디자인의 옷에는 여전히 관심이 있는 나를 다시 발견했다. 그런데 막상 입어본 재킷은 내가 갈망했던 것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화이트와 베이지로 이루어진 색은 아름다웠지만 주머니의 위치와 개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옷에는 입었을 때 '이건 내 것이다'라는 느낌이 오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재킷은 후자였다. 조용히 옷을 내려놓고 나오는데 다른 체크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옷을 사고 다시 처분하는 일을 반복해온 탓인지, 또 무언가를 사는 일이 조금 피곤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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