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교권과 손
교사는 아이들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등 뒤에는 교실보다 오래되고, 교과서보다 두껍고, 생활기록부보다 집요한 것이 서 있다. 교육이라는 이무기 그것은 복도에 몸을 말고 교무실 컴퓨터 화면에 눈을 뜨고 학생부 입력창의 커서 끝에서 숨을 쉰다. 이무기는 교사에게 분필보다 먼저 규칙을 주었고, 칠판보다 먼저 관제를 주었고, 학생의 이름보다 먼저 학생을 기록하는 법을 주었다. 교사는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국가가 깔아둔 길 위를 걷고 있었다.
1895년 4월 16일, 고종은 칙령 제79호 한성사범학교 관제와 칙령 제80호 한성사범학교 직원 관등 봉급령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 근대적 교사의 출생 장면이다. 교사는 교실에서 먼저 태어난 것이 아니라 관제와 관등과 봉급령 속에서 먼저 태어났다. 1895년 4월 27일에는 제1회 입학생이 모집되었고, 5월 1일에는 개학이 이루어졌으며, 7월 23일에는 한성사범학교규칙이 공포되었다. 사범은 본보기다. 본보기란 지식보다 먼저 몸가짐이다. 말투, 복장, 시간, 복종, 질서, 위계, 공적 태도, 표준화된 행동양식.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기 전에 가르침이 될 몸으로 제작되었다. 교육이라는 이무기는 여기서 교사를 처음 삼켰다. 사랑의 직업으로 삼킨 것이 아니라, 모범의 신체로 삼켰다.
1911년 조선교육령 이후 한성사범학교는 관립 경성고등보통학교의 사범과 또는 교원 속성과로 개편되었다고 설명된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학교 조직 개편으로 보이지만 실제 의미는 그보다 더 음흉하다. 교사가 제국의 질서 안으로 다시 삼켜지는 장면이다. 식민지기 사범학교 연구들은 조선총독부가 사범학교 교육을 통해 식민지배 정바카라을 수행할 교원을 양성하고, 일본식 교원 덕목과 천황제 중심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사범학교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했다고 분석한다. 식민지기 사범학교제도는 우수 학생 선발, 목적형 교육과정, 안정적 교원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성공 모델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조건은 중등교육 기회의 제한, 고학력 지위의 일본인 독점, 식민지적 차별 구조였다. 교사는 글을 가르쳤지만 그 글은 제국의 문장 안에 있었다. 규칙을 가르쳤지만 그 규칙은 통치의 감각과 붙어 있었다. 교사는 아이를 깨우는 사람인 동시에 아이를 질서 속에 눕히는 사람이었다. 이무기는 교사의 입을 빌려 말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무기는 죽지 않았다. 껍질을 바꾸었다. 1949년 12월 31일 법률 제86호로 제정·시행된 교육법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며 민주국가발전에 봉사하게 한다고 규정하였다. 같은 법 부칙은 의무교육을 단기 4283년, 곧 1950년 6월 1일 현재 취학시기에 달한 학령아동으로부터 시행한다고 적고 있다. 교사는 식민지 제국의 통로에서 국민국가의 인프라로 이동했다. 학교는 늘어나야 했고, 아이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와야 했고, 국가는 국민을 만들어야 했다. 교사는 숭고한 스승이기 전에 배치되어야 할 인력이었다. 몇 명이 필요한가. 어디에 둘 것인가. 어떤 자격을 줄 것인가. 어떻게 양성하고 관리할 것인가. 교사는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한 학급과 한 학교와 한 지역의 교육 가능성을 떠받치는 단위가 되었다. 이무기는 교사를 사명으로 삼켰고, 국가는 그 사명을 국민 만들기의 노동력으로 배치했다.
교사는 이무기에게 먹힌 존재이면서, 동시에 이무기의 몸을 움직이는 기관이 되었다. 피해자가 아니다. 가해자가 아니다. 교사는 어느 순간 그 괴물의 이빨이 되었고, 혀가 되었고, 눈이 되었다. 학생을 출석번호로 부르고, 성적표로 배열하고, 수행평가로 구분하고, 생활기록부로 문장화했다. 물론 교사는 학생을 살리려고 했다. 기회를 주고, 모르는 것을 알게 하고, 무너진 학생을 다시 앉히고, 말하지 못한 학생의 말을 들으려 했다. 그러나 이무기는 교사의 선의까지 먹었다. 교사가 학생을 돕기 위해 남긴 문장은 평가의 자료가 되었다. 가능성을 알아보려는 관찰은 선발의 근거가 되었다. 이해하려고 쓴 기록은 대학이 읽을 수 있는 항목이 되었다. 선의는 기록으로, 기록은 비교로, 비교는 선발로 바뀌었다.
1995년 5월 31일의 교육개혁은 이무기가 몸을 다시 뒤집은 장면이다. 5·31 교육개혁은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내세우며 교육 수요자 중심, 교육의 다원성, 자율성과 바카라무성, 질 높은 교육을 강조했다. 자율, 다양성, 수요자, 바카라무성, 질. 밝아 보이는 말들이다. 그러나 학교 안으로 들어오면 교사는 다시 먹힌다. 더 자율적인 사람이 되라는 명령은 더 설명 가능한 사람이 되라는 요구와 붙어 온다. 학생 중심 수업은 그 효과를 증명해야 하고, 혁신은 흔적을 남겨야 하며, 다양성은 평가 가능한 문장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이무기는 이제 명령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개혁의 얼굴로 온다. 자유를 주는 듯 다가와 그 자유가 어떻게 쓰였는지 보고서를 요구한다.
1997년 12월 13일 제정된 초·중등교육법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는 학교생활기록부제도의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이무기는 가장 정교한 위장을 얻는다. 생활기록부. 학생의 삶을 기록하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학생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장치다. 교사는 이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관찰하고 평가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된다. 태도는 문장이 되고, 질문은 문장이 되고, 발표는 문장이 되고, 성실성은 문장이 되고, 진로는 문장이 되고, 공동체성은 문장이 된다. 교사는 아이를 본다. 그러나 그 봄은 눈에서 끝나지 않는다. 본 것은 써야 한다. 써야 남는다. 남아야 읽힌다. 읽혀야 평가된다. 평가되어야 선발된다. 이무기는 교사의 눈을 먹고 기록의 눈으로 바꾸었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은 이 장치를 더 구체화한다. 이 지침은 중·고등학교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성취수준의 특성 및 학습활동 참여도 등을 문장으로 입력한다고 규정하고, 교과학습발달상황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교과담당교사가 입력한다고 규정한다. 자유학기 활동에서도 담당 교사가 수시로 관찰한 활동 내용, 참여도, 흥미도 등을 문장으로 입력하도록 한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수시로 관찰하여 누가 기록된 행동특성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종합의견으로 담임교사가 문장 입력한다고 규정된다. 총체적으로 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종합의견. 섬뜩한 문장이다. 인간 전체는 문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는 것은 늘 잘린 인간이다. 평가 가능한 인간. 근거가 있는 인간. 항목화된 인간. 교사는 학생을 온전히 쓰고 싶지만, 이무기는 온전한 인간을 삼키지 않는다. 이무기는 항목을 먹는다.
최근 연세대학교의 학생부종합전형 안내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입학사정관이 참여하여 학생부의 다양한 기록을 중심으로 지원자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이며, 학교교육의 성공적인 이수를 바탕으로 어떤 활동과 경험을 했는가를 확인하고 지원자의 잠재력과 발전가능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찾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중앙대학교의 학생부전형 가이드북은 입학사정관이 학교생활기록부 각 항목의 기재 내용을 보며 평가 근거를 찾고, 평가요소와 학생부 항목이 일대일로 연결되지 않으며, 학교생활기록부의 모든 항목이 독자적 의미를 지닌 중요한 평가요소로 활용된다고 설명한다. 최근 부산대학교의 학생부위주전형 가이드북도 학교생활기록부를 지원자의 교과 및 교과 외 영역의 과정과 성취 결과, 지원자에 대한 교사의 평가 등이 수록된 학교생활의 총체적 기록물로 설명한다. 여기서 교사의 문장은 교사의 문장이 아니다. 대학의 먹이다. 대학은 그 문장을 학업역량, 진로역량, 공동체역량으로 소화한다. 교사는 학생의 이름을 부르지만, 이무기는 그 이름을 역량으로 씹는다.
이제 수업은 칠판 앞에서 일어나는 만남만이 아니다. 생활기록부의 원천이다. 누가 질문했는가. 누가 협력했는가. 누가 탐구했는가. 누가 주도했는가. 누가 성장했는가. 교사는 듣는 동시에 보고, 보는 동시에 기억하고, 기억하는 동시에 문장으로 바꿀 준비를 한다. 학생은 수업을 듣지만, 교사는 학생을 기록 가능한 방식으로 본다. 교사는 정말 학생을 돕고 싶다. 학생의 성장을 발견하고 싶다. 그러나 이무기는 그 발견을 평가의 증거로 요구한다. 애정은 관찰로, 관찰은 문장으로, 문장은 선발의 자료로 바뀐다. 교사는 학생을 살리려고 쓰지만, 그 쓰기는 학생을 비교 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그러니 교사의 손을 추적하자. 분필을 쥐는 손. 마우스를 잡는 손. 출석부를 넘기는 손. 학생부를 입력하는 손. 시험지를 나누는 손. 수행평가 채점표를 고치는 손. 민원 전화를 받는 손.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려다 멈추는 손. 키보드 위에서 한 학생의 1년을 몇 문장으로 압축하는 손. 교사의 손은 가르치는 손이면서 입력하는 손이다. 쓰다듬는 손이면서 판정하는, 붙잡는 손이면서 놓치는 손. 교사는 성장을 기록한다고 믿지만, 이무기는 그 성장을 비교한다. 교사는 가능성을 남긴다고 믿지만, 이무기는 그 가능성을 전형자료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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