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모두 귀향으로 그 모형과 궤를 같이한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으로 갔다. 그 땅이 어디인지는 미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믿음으로 따라갔고, 후손들은 출애굽 후 40년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입성했다.
나의 본향은 이 땅 위에 없다. 나의 본향은 저 하늘에 있다. 나는 부모의 태 중에 있기 전부터 이미 있던 그곳을 생각한다. 이 땅에 큰 가시를 안고 내려온 존재이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아니라 나를 훈련하는 광야다. 그 약속을 믿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갈 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실수가 한 가지 있었다면, 너무 내 병에 크게 얽매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피해자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내 삶을 많이 망가뜨렸다.
내 주변 사람들이 자립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 초조해진다. 하지만 자존심의 꽃이 져야 인격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내가 주인 삼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고 살아가는 것이 이 땅 위에서 나를 더 성장시켜 주고, 본향으로 돌아갈 때 후회가 남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립의 나이에 아직 제대로 세운 것이 없어 불안하지만, 시간이 유한함을 알기에 빨리 독립하여 꿈을 펼치고 싶다. 본향이라는 푯대를 향해 정박 중인 배를 떠나보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나는 이제 나를 떠나보낸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라는 니체의 말처럼, 존재의 이유를 알고 더 강해지기 위해 내 삶에는 더 거친 파도가 올 것이다. 고난이 선물이라 말했던 바울의 고백이 내 고백이 되길 바란다. 나는 아직 고난을 재정의하지 못했다. 고난의 아픔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값에만 매달리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헤세를 읽는 것도 그저 읽는 것으로 끝난다면 나 하나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페터 카멘친트부터 시작하는 이 긴 여정에서 헤세의 인생과 작품을 감상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내 삶에 체화시키지 못한다면 큰 모멘텀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과거에 얽매였던 나를 떠나보내고자 한다.
이제 새로운 나로 거듭나,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듯, 카멘친트가 ‘페터’가 되었듯,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길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