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장애물을 넘어

by꿈부기

오늘 스스로에게 가만히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온전한 나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온전히 홀로 서지 못하고, 나를 위한 삶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어릴 적엔 어른이 되면 그 답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높은 도(道)를 닦는 것만큼이나 아득한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우리는 삶의 절반 이상을 타인과 유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모두가 '동류'라는 인식 아래 비슷하게 흘러간다.

진짜 차이가 생기는 지점은 대학 졸업 이후부터다. 저마다의 선택에 따라 삶의 궤적이 완전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늘 그렇듯, 내 마음과 계획대로만 전개되지는 않는다.

돌아보면 내 삶의 여정 속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장애물은 단순히 내가 가진 병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거절과 실패 앞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깎아내렸던 내 안의 태도를 의미한다.

대학원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고, 수많은 시험에서 과락의 씁쓸함을 맛보았다. 어디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 여겼다. 아르바이트 지원서조차 예순네 곳이나 냈지만,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면접장에 갈 때마다 늘 들었던 질문이 있다. "군대는 왜 면제인가요?"

나는 이 질문에 차마 정답을 대답할 수 없었다. "제가 뇌전증이 있어서요."

그렇게 사실대로 말해도 돌아올 결과는 똑같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처가 될 말을 굳이 꺼내지 않기 위해, 그저 "몸이 조금 아파서 면제받았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인생이 다 그렇다지만, 나는 참 많은 궤도 수정을 거치며 살아왔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한 우물만 깊게 파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절, 병마와 싸우시던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와 슬롯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식물보호 산업기사를 공부하며 조경을 배웠고, 지금은 블로그를 운영하며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한때는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지 못하고 상황에 밀려 떠돌아다니는 것 같아,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자바카라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지난날을 가만히 복기해 보니, 그 불완전함조차 온전히 '나'라는 존재였다. 억지로 타인의 기준에 맞춰 인싸가 되려 애쓰며 에너지를 쏟는 대신, 그 온기를 내 내면으로 쏟아붓는 것이 훨씬 더 나다운 삶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늘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만을 갈망했기에, 정작 '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와 거절 속에서 집착을 내려놓자, 선물처럼 '진정한 나만의 삶'을 추구하는 마음이 찾아왔다.

헤르만 헤세의 《동방순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절망이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려는 모든 진지한 시도의 결과지요. 삶을 덕과 정의, 이성으로 극복하고 그 요구들을 실현하려는 모든 진지한 시도의 결과이기도 하고요. 이런 절망의 이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저편에는 각성한 자들이 살고 있지요."


'이제 정말 내 인생은 끝난 걸까?'라는 깊은 우울이 밀려왔을 때, 온 세상은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움을 느껴 숨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내 존재 자체가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연락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패배의식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고 내 삶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더 몸부림쳤건만, 손에 쥐어진 결과가 여전히 '미자립 청년'이라는 사실은 참 처참했다.

지금 역시 삶의 조건들이 극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물이 100도에 도달해야 비로소 끓어오르는 것이 정해진 과학이듯, 내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내면을 고아내며 성장한다면 머지않아 삶의 임계점을 맞이할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평생에 걸쳐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가는 태도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렇기에 나에게는 더 변하고 자라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온 내 삶엔 이제, 비로소 나답게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나를 떠나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