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기자 vs. 응웨아 기자
1. 두 웃음을 나란히 놓고 보면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는 대중을 폭소하게 만든 두 명의 리포터가 등장한다. 한 명은 20대 슬롯초년생의 떨리는 말투를 연기한 '주 기자', 다른 한 명은 베트남 출신 이주민을 연기한 '응웨이 기자'다.
주 기자도 웃겼고, 응웨이 기자도 웃겼다. 주 기자는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묻다가 문장 끝을 미세하게 떨고, 응웨이 기자는 "베트남"을 "벳남"이라 발음하며 서툰 한국어로 뉴스를 전한다. 둘 다 완벽하지 않은 화법인데 이상하게도 주 기자의 웃음은 유쾌한 균열처럼 느껴지는 반면, 응웨이 기자의 웃음은 어딘가 서늘하고 불편한 뒷맛을 남긴다.
왜 같은 예능의 포맷에서 하나는 전유(appropriation)와 저항의 감각으로 소비되고, 다른 하나는 타자화의 낙인으로 남는 것일까? 주 기자의 미숙함은 청년들이 그 말투를 가져가 자기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는 ‘창발적 전유’로 이어졌지만, 응웨이 기자의 말투는 아무도 자기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단순 ‘재현’의 틀에 갇히고 만다.
2. 표준어 안의 일탈, 표준어 밖의 이물감
신입 기자의 떨리는 어미는 표준 한국어 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발음도 어휘도 문법도 온전하다. 다만 조직이 요구하는 '규범' 앞에서 슬롯초년생의 불안이 유희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는 체계 안에서의 서투름이지만 기성세대의 경직된 상명하복 문화에 균열을 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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