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그날.. 상처로 남을까,
영광의 훈장이 될까?

실패도 변화입니다, 주저앉으면 상처가 되고 풀어내면 훈장이 됩니다

by아공빠

지난 이야기에서

내 높이에 맞는 기회를 잡고, 멈추지 말고, 지금 당장 한 칸씩 오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오르다가도 반드시 막히는 날이 옵니다. 잘되던 가게에 손님이 끊기고, 믿었던 시험에서 떨어지고, 다니던 회사에서 밀려나는 날.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스스로를 달랩니다.

"새옹지마라잖아. 언젠가 좋은 일로 돌아오겠지."


답부터 드리겠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변화일 뿐입니다. 그 변화가 위기가 될지 기회가 될지는 시간이 정하지 않습니다. 그 변화에 내가 어떻게 답하느냐가 정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리는 것은, 안타깝게도 위기 쪽을 고르는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똑같이 넘어진 사람들이 왜 한쪽은 무너지고 한쪽은 더 올라서는지, 그리고 넘어진 날 무엇을 정확히 봐야 하는지 짚어봅니다.




넘어지고 막히는 건, 당연한 변화입니다


한 칸 오른다는 건 처음 서보는 높이에 발을 올린다는 뜻입니다. 처음 서보는 곳에는 처음 보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넘어지고, 막히고, 무너지는 날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날이 온다는 건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넘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넘어짐을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넘어짐은 사고가 아니라 하나의 변화입니다. 어제까지와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변화일뿐입니다.


당연히 찾아온 변화를 지레 겁먹고 위기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앞선 이야기들에서 보았듯, 변화가 오면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푸는 사람이 기회를 잡습니다. 넘어짐이라는 변화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변화 앞에서 우리가 고르는 네 가지 답


앞선 이야기들에서 변화가 낸 문제에 사람이 내놓는 답은 네 가지라고 했습니다. 잠깐 떠올려볼까요.

순응은 "이 상황은 내가 바꿀 수 없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적응은 그 상황에 맞게 나를 바꾸는 행동입니다. 반응은 "왜 이렇게 됐지?" 하고 되묻는 마음이고, 대응은 그 원인을 찾아 직접 풀어내는 행동입니다.


순응과 적응은 문제를 내 안에서 찾습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를 맞추는 동안 사람은 안으로 단단해집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나를 아무리 바꿔도 밖의 문제, 즉 타인과 환경이 만든 문제는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순응과 적응만으로 버티면 같은 위기가 모양만 바꿔 계속 찾아옵니다. 반응과 대응은 문제를 밖에서 찾아 직접 풀어냅니다. 넘어진 날, 이 차이가 같은 넘어짐을 전혀 다른 결말로 데려갑니다.




같은 골목, 두 카페 이야기


한 골목에서 5년째 잘 운영되던 작은 카페 두 곳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골목 입구에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커피값은 절반이고 자리도 넓습니다. 두 카페 모두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첫 번째 카페 사장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대기업을 무슨 수로 이겨. 어쩔 수 없지."(순응) 그리고 손님을 붙잡으려 커피값을 내리고, 아르바이트를 줄이고, 혼자 더 오래 일하며 버텼습니다.(적응) 사장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왜 떠났는지, 밖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나를 깎아 맞추는 사이 바깥의 문제는 그대로였고, 가격으로는 프랜차이즈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1년 뒤 가게는 문을 닫았습니다.


두 번째 카페 사장은 먼저 물었습니다. "손님들이 정말 싼 커피 때문에 떠난 걸까?"(반응) 그리고 남아 있는 단골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프랜차이즈 매장에도 며칠 가서 앉아봤습니다. 그러자 진짜 문제가 보였습니다. 빠르고 싼 커피를 원하는 손님은 원래부터 프랜차이즈 손님이었습니다. 이 카페의 단골들이 원한 건 조용히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와, 사장이 직접 구운 디저트였습니다. 사장은 테이블을 줄여 자리를 편하게 바꾸고, 디저트를 늘리고, 단골들에게 원두를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대응) 1년 뒤 이 카페의 매출은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 전보다 오히려 늘었습니다.


이처럼 같은 골목에서, 같은 변화를 맞았지만, 한 곳에는 위기가 되었고, 한 곳에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 사장에게 그 1년은 상처로 남았고, 다른 사장에게는 영광의 훈장이 되었습니다.




위기와 기회를 가른 건 사건이 아니라 응답이었습니다


프랜차이즈가 들어온 것은 두 카페 모두에게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위기와 기회를 가른 것은 그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내놓은 응답이었습니다.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판단하고 순응하거나 적응하기만 하면, 그 변화는 위기가 됩니다. 버티는 동안 문제는 그대로 남아 조금씩 나를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변화에 반응하고 대응하면, 그 변화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변화가 만든 문제를 풀어내는 순간, 같은 문제를 겪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땐 불행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고맙다"는 사람들을 잘 들여다보세요.

그들은 모두 그 불행 속에서 무언가를 풀어낸 사람들입니다.




새옹지마를 기다리지 마세요


넘어진 날 우리가 가장 쉽게 붙잡는 말이 있습니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인생 모르는 거야. 이게 나중에 더 좋은 일이 될지도 몰라."


마음을 달래는 데는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 말들은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리는 것은 겉으로는 희망처럼 보여도,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응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밀려난 사람이 "더 좋은 데 가려고 이런 거겠지" 하며 1년을 기다린다고 해봅시다. 1년 뒤 그에게 남는 건 더 좋은 자리가 아니라 1년의 공백입니다. 전화위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행운이 아닙니다. 화를 복으로 바꾸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막연하게 말고, 정확하게 보세요


그렇다면 대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변화 속에 숨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입니다.


넘어진 날, 이 세 가지만 차례로 물어보세요.

첫째, 무엇이 달라졌나? (변화)

둘째, 그래서 정확히 무엇이 막혔나? (문제)

셋째,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해결)


지난 이야기에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멈추지 않는 것과 지금 당장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넘어진 날에도 이 말은 그대로입니다. 충분히 아파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오래 주저앉아 좋은 날이 오기만 기다리지는 마세요.


넘어짐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막혔는가"에 정확히 답하고 그것을 풀어낸 사람에게, 넘어진 자리는 다음 계단이 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그때 넘어진 게 고마워."




다음 이야기로


넘어진 날 순응하고 적응하기만 하면 밖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위기가 반복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꾹 참고 맞추며 버텼던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까요? 아픈 아이 곁에서 밤을 새우던 시간, 숨 막히는 상사 밑에서 이를 악물던 시간 말입니다. 그 시간은 모두 잘못 산 시간이었을까요?


다음 이야기, "참고 맞추며 살았을 뿐인데.. 잘한걸까? 잘못한 걸까?"에서는 순응하고 적응하며 버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버티는 동안, 우리는 분명 안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FAQ)


Q. 넘어졌는데 기회라고 생각하라는 건, 결국 정신승리 아닌가요?

정신승리는 생각만 바꾸고 상황은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이 글이 말하는 건 반대입니다. "좋게 생각하자"가 아니라 "무엇이 막혔는지 정확히 보고 풀자"입니다. 두 번째 카페 사장이 한 일은 긍정적인 마음먹기가 아니라, 단골에게 묻고 경쟁 매장에 앉아보며 진짜 문제를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Q. 새옹지마, 전화위복은 옛사람들의 지혜인데 왜 바라면 안 되나요?

틀린 말이라서가 아닙니다. 지나간 일을 돌아볼 때는 맞는 말입니다. 다만 결과를 설명하는 말이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을 붙잡고 기다리기만 하면 그건 지혜가 아니라 순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화가 복으로 바뀐 이야기 속에는 늘 그것을 바꾼 누군가의 행동이 있었습니다.


Q. 그럼 순응하고 적응하는 건 나쁜 건가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를 맞추는 동안, 우리는 문제를 내 안에서 찾고 안으로 자랍니다. 이것은 분명한 가치입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나를 아무리 바꿔도 타인과 환경이 만든 밖의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응과 적응에만 머물면 위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찾아옵니다. 안으로 자라되, 밖의 문제에는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순응과 적응이 사람을 어떻게 키우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Q. 열심히 대응했는데도 결국 실패하면요?

그것도 또 하나의 변화입니다. 다만 처음과는 다릅니다. 한 번 부딪혀본 사람은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를 이미 압니다. 문제가 한 겹 더 정확해진 것입니다. 대응은 한 번에 성공하는 기술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문제를 더 정확히 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멈추지만 않으면 그 과정은 반드시 앞으로 갑니다.


Q. 지금 너무 힘든 사람에게 "이건 기회다"라는 말은 오히려 상처 아닌가요?

맞습니다. 한창 아픈 사람에게 "이것도 기회야"라고 말하는 건 위로가 아니라 상처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남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또 가족을 잃은 일처럼 끝내 기회라 부를 수 없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런 슬픔은 억지로 의미를 붙이지 말고 충분히 슬퍼해야 합니다. 아픔을 충분히 지난 뒤, 다시 일어설 힘이 조금 생겼을 때 "지금 무엇이 막혔을까"를 물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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