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대기의 분노를 튀겨버린 사장님
연초였나, 아이가 오늘은 엄마랑 자겠다고 해서 밖으로 나갔었다. 소화가 잘 안된다고 산바카라 좀 하겠다는 말에 아내가 속았는지 눈감아줬는지 모르겠다. 가방은 일부러 현관에 뒀으니 티안나게 들고나갈 수 있었다. 7시에 먹은 저녁밥은 이미 위에서 바스러져 살짝 배고플 정도였지만, 아이를 씻기던 와중에 시계화면에 뜬 쿠팡 야간미션을 보니 저걸 꼭 냉큼 찍어 먹고싶었다. 늦은 시간에는 오히려 차량과 보행자가 적어 안전하다는 착각도 들었다. 문득 돌이켜보면 미션 카운트를 하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사고 없이 무사히 들어온 건 단지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할 듯한데, 하인리히 법칙대로라면 곧 피보는 정도로 적당히 나뒹굴 예정이었다. 가뜩이나 내 부업을 탐탁지 않아하는 아내는 밤에 절대 나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육아휴직 돌입 초기엔 괜스레 그간 못만난 사람들에게 연락도 했다. 아내가 저녁에 귀가할 때까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니 항상 점심약속을 잡았다. 고맙게도 찾아갈 때마다 친구들이 밥을 사주고, 나는 커피 한 잔을 사고 오는 한시간짜리 귀한 점심시간을 즐겼다. 낮 시간의 여유로운 지하철에서는 운좋으면 앉아가는 호사도 누렸다. 귀한 외식으로 속을 채우고 응원의 이야기들로 마음을 채우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동네로 돌아와 지상으로 올라오면 오늘 포기한 일당만 한 크기의 불안이 엄습했다. 배달선배들이 ‘이 일은 하루 쉬면 계속 쉬고 싶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주 5일 루틴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할 것만 같았다. 약속이 생긴 날엔 밤에 못한 숙제를 해야만 했다. 오늘처럼 말이다.
셋이서 아이방에 함께 누웠는데 둘은 금방 숨소리가 잠잠해졌다. 아직 아홉시반이니 열두시까지 돌아올 생각이었다. 오늘밤은 미션도 없으니 더 좁은 바운더리로 골라가면서 돌면 되겠다. 오후에 커피를 마셔서, 그것도 카누 한포말고 카페에서 파는 투샷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셨으니 몸이 여전히 활성화된 기분이었다. 운동하고 오면 잠도 잘 들거라 생각했다. 올해들어 자기 자신에게도 변명이 늘어난 기분은 뭘까. 움직일 때 부시럭 소리가 나는 겨울자켓과 바라클라바와 장갑을 작은방 창밖으로 툭 던졌다. 배달가방은 미리 유아차에 싣고 그늘막을 씌워뒀다. 센서등 나간 복도에서 슬그머니 아이템을 하나씩 주워담고 방화문을 살짝 여닫았다. 엘리베이터를 눌러놓고 다 껴입고 나니 무슨 액션영화 찍는 기분으로 살짝 흥분감도 드는 내가 볼썽사나웠다.
점심시간과는 사뭇 다른 밤의 분위기는 새로운 활기가 있었다. 압도적 비율의 술안주 느낌 나는 메뉴들이 매콤한 불 향을 등뒤에서 모락모락 뽐냈다. 야간피크 줄여서 ‘야피’라 불리는 시간대라 콜도 제법 붙었다. 안전하게 인도위주로 천천히 다닐 계획은 어그러졌다. 정신없이 점멸하는 후미등 리듬만큼 발도 바빴다. 마음속 귀가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배달어플이 ‘야 하나만 더 하고 가자.’라고 말을 걸어왔다. 내 성격 문제겠지만, 이 바닥은 콜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쫓기는 판이었다.
이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그것도 술마시다가 나와서 사먹는 메로나 감성이 아니라 무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통 너머로 서성이는 손님들 뒤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파인트가 만원에 육박하는 걸 보고 뜨악하다가 편의점 구구콘도 2,500원인걸 생각하니 납득이 됐다. 핑크빛 의자와 케이크가 든 냉동고 사이에서 기다리는 동안 직원들은 분주히 동그란 형형색색의 칸을 오가며 아이스크림을 퍼올렸다.
화면의 완료예정시간이 계속 깜빡거렸다. 조리대기, 줄여서 ‘조대’가 걸렸다. 신호대기는 수긍하더라도 조대앞에선 늘 예민해지는 게 인간본성인가, 슬슬 열이 올랐다. 나보다 먼저 온 풀페이스 헬멧을 쓴 오토바이 라이더도 계속 서있는거 보니 여기 지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었다. 나갈까?
‘내가 사표는 못던져도 하루 세번 취소버튼은 누를 수 있다 이거야.’
카운터를 째려보는데 점주로 보이는 장년 남성이 쿼터(18,500원)가 든 봉지 하나를 들고 나를 찾았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눈웃음과 함께 손에 비타500 한병을 쥐어주었다. 처음으로 받은 선물에 얼떨떨하며 매장을 나왔다. 종이봉투에는 고객에게 보내는 이모티콘 곁들인 오글거리는 포스트잇 카드가 붙어있었다.
“맛있게 드시고 오늘도 베스킨 라빈스와 함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R 00점”
이게 디저트집 특인가? 유난히 달콤한걸 파는 가게들은 이런 멘트가 자주 붙어있었다. 정신없이 일하는 얼굴들은 잔뜩 굳어있는데 별점과 리뷰를 위한 애교 넘치는 감성노동이 손목 시큰하게 아이스크림 푼 직후라니 좀 언발란스했다.
마지막 콜은 집 방향으로 잡으려 고르고 골랐다. 단가고 메뉴고 퇴근땐 집근처가 최고다. 엄밀히는 집에서 꽤 떨어진 위례 넘어가는 지하차도 쪽이지만, 뭐 방향만 맞으면 이젠 받아야지. 이쪽에도 음식점이 있다는 데에 조금 놀랐다. 어렵게 찾아간 닭강정집은 배달전문점이었다. 테이블없는 작은 매장에 노부부가 운영중인데, 새로 개업한 느낌의 깨끗한 배기팬과 좁은 매장크기에 비해 수가 많은 하얀 형광등이 배달매장치고 이질적이었다. 오늘 정말 무슨 날인가, 닭강정집도 주문이 밀렸다. 한쪽은 튀김기가 바글거리고 한쪽은 계속 뻘건양념이 웍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하나뿐인 대기석에 앉아서 주방구경만 하다 길어질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작은 화이트보드에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쓰여있었다.
‘요즘 전화주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가게앞에 주차된 전기자전거를 구경했다. 요즘 꽤 보이던건데, 접이식 구조라 힌지 쪽에서 프레임이 부러지는 케이스도 더러 있는 자전거였다. 렌탈인지 리스인지 전기자전거도 초기비용 없이 탈수있게 구독경제화되는 것 같았다. 플랫폼 만드는 사람들은 참 비슷한 듯 다르게 다들 똑똑하네.
‘이거 한번도 안탄거같은데…’
깨끗한 타이어의 솜털같은 사출무늬가 그대로였다. 은빛머리를 짧게 자르고 소싯적에 장사체질이었을것 같은 근육질사장님이 얼굴만큼 호탕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전거 그것보다 기사님 타고오신게 훨씬 좋은 거야!”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 사장님이 배달도 하시나 봐요?”
“네 이거 하도 배민 이런게 비싸서… 직접 해봐야죠.”
전화배달이 좀 들어오긴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가 넘었다. 길어지는 조대에 자전거구경까지 하느라 오늘 만보기앱 100포인트를 안쌓고 날려버렸다. 그 100원도 안되는 일에 신경질적 반응이 올라오려 하기도 했다. 진짜 왜 말을 걸어서는. 집 방향가는 막콜이라 취소하기는 애매했다. 메뉴를 보니 똥집튀김인데 할머니 사장님은 지금 웍으로 강정 양념만 한참 입히는거 보면 똥집은 아직 튀김기에 있나 보다. 밖에서 입김만 담배 연기마냥 뿜고 있는데 걸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기사님 똥집 좋아해?”
“네?!”
저런 톤에 반존대까지 섞이면 늘 기가 죽었다. 화들짝 올려다보니 풍채 좋은 노신사가 종이컵 하나를 내밀며 만면을 주름지으며 웃고 있다. 종이컵 위로 봉긋하게 담긴 노란 튀김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저 컵의 모락모락한 모양만으로도 거부하기 버거웠다.
‘이것은 뇌물인가 호의인가.’
허겁지겁 받아먹으니 뜨거운 동그라미가 혀 위를 굴러다니며 소금과 기름과 후추를 방사해댔다. 주문들어온걸 조금 떼서 준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뜨거움도 압도해버린 맛이었다는 기억뿐이었다. 한 컵 짜리 [지체상금]에 이번 콜은 확실하게 완성되었다. 아마도 나는 충성심까지 담아 이 배달건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게 되겠지. 뜨거움에 몸부림치며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사장님 내외가 웃음을 터트렸다. 건건마다 식당과 라이더가 대립하는 주방이란 전선에서도 수요와 공급이 갑과 을을 번갈아가게 하고 있었다. 회사일을 하면서 납기지연을 밥먹듯 겪었지만 실제로 지체상금을 부과한 적은 없었다. 이런식으로 받을 줄은 몰랐다.
완성된 똥집튀김을 가방에 넣고 달리면서 한 손으로 마지막 남은 종이컵을 털어 먹었다. 찬바람을 맞고 벌써 딱딱해졌지만 이상하게 횡격막과 마음 한구석까지 따뜻한 느낌이 이번 밀당은 나의 완패가 분명했다. 호의도 맞고 뇌물도 맞았다. 작은 주방과 입구사이는 상황에 따라 대립하기도 하고 으쌰으쌰 하기도 하는 기묘한 공존의 공간이었다. 하루하루 밀당하는 사이 진짜 갑(甲)은 포스(POS) 기와 핸드폰 안에서 시그널을 보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