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원치 허기

본죽 통유리 먹방쇼

by플랑시


배민을 쿠팡과 함께 타기 시작할 무렵은 비수기의 시작이었다. 우두커니 길가에 서있는 시간이 늘 수록 내 시간이 늘 모자랐다. 애초에 두 어플을 함께 돌리기 시작한 이유도 콜사 때문이니 정해둔 목표 일당을 채우다 보면 자전거 위에서 시간을 더 녹일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하원시간과 일당 달성여부에 달린 귀가시간 사이의 스프레드(Spread)가 종잇장만큼 얇아졌다. 현관부터 뱀허물처럼 헬멧과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손만 씻으면서 옷들을 아무렇게나 뒤집어둔 채 빤스바람으로 좁은 주방을 누볐다.


‘시간이 없으니 콩밥은 안되고…’


쌀과 현미를 한컵씩 부어서 물을 붓고 주걱으로 대충 휘적였다. 라면은 늘 안전재고를 철저히 유지하며 상부장에 뒀는데 달걀이 없었다. 올해는 에그플레이션도 심각했다. AI(그거아님)때문에 계란값 오르는 폭이 심상치 않았다. 롯데마트에 미국산 달걀 한 판 6,900원인가 할인하던데 내일 사야지. 아몬드만 한 줌 쥐어먹고 건조기 속 빨래를 꺼냈다. 아이가 저녁을 먹는 동안 개면 얼추 시간 맞겠다. 청소기는 충전을 안해놔서 나중으로 미루고 요란 떨며 따순물이 나오기 전에 머리부터 벅벅 감았다.




가사를 맡은 이후론 새벽배송을 끊었다. 매주 뿌리는 할인쿠폰이 이따금씩 앱에 들어와도 동네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소비기한 임박할인 30% 이상 떨이를 사는 행운을 기다리는 편이 더 좋았다. 길 건너 동네마트 정육코너에서는 매일 그 시간대에 시식코너를 준비했다. 나무 이쑤시개로 제일 큰 목살 조각을 콕 찍어먹으면 지글거리는 비계의 녹진한 맛이 늘 한 조각을 더 집으라 유혹했다. 짜임새 있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게 문제인가, 돈의 결핍은 칭얼대지 않고 받아들였는데 시간은 왜 항상 이리 모자란지 신기했다. 맞벌이 라이프가 시간과 젊음을 팔아 생계와 노후로 바꾸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점심때마다 내 ATP를 팔아 남들의 시간을 벌어주는 셈. 이상하게 돈도 시간도 빠듯한 지금 바꿀 수 없는 변수는 그대로 두면서 어긋난 타임테이블을 교정해야 했다.


점심시간이 끝날무렵인 1시경, 콜사가 길어지자 요깃거리를 생각했다. 배고픔에 굴복해서 무작정 들어간 편의점에서는 삼각김밥과 줄김밥을 비교했다. 언제 콜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삼각김밥은 중간에 끊어먹기 애매하니 줄김밥코너를 째려봤다. 3,000원이 넘어가는 좀 두툼한 놈들은 영 손이 나가질 않았다. 2,300원짜리 배민 단거리 콜 생각도 나고, 밥과 콩나물 무한리필인 교회찌개도 떠올랐다. 가장 기본스러운 김밥을 골랐다. 녹말과 소금기가 입안을 휘저으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낫배드네, 요즘 김밥천국은 얼마지?”


그러고 보니 김밥천국은 배달해본적이 없었다. 배-쿠에선 차별화로 무장한 프리미엄 김밥 프랜차이즈들이 성업중이었다. 김밥은 쏟을 염려도 없고 작아서 나로서도 땡큐지만, 김밥이 언제 이렇게 비싸졌는지 기겁하곤 했다.


오래된 공복과 생각보다 금방 와버린 다음 콜이 문제였다. 일단 픽업지로 가면서 엄지손가락으로 김밥을 밀어 먹었다. 주행중에 먹은 김밥이 식도와 위 사이에서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김밥은 내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메뉴임을 깨달았다. 대안은 금방 찾았다. 문정동 가락동 오가는 동선상에 위치해 들리기 쉬운 곳. 먹기 쉽고 보관도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한 메뉴인

빵이 있었다.




가락시장역 3번 출구 아래엔 언제나 모카번 향기가 맴돌았다. 주로 지하철역사 귀퉁이에서 좌석없이 효율적으로 공간을 뽑아내는 영업방식인 듯했다. 아마도 공장에서 받은 생지를 굽겠지, 상관없다. 천원에서 천오백원 사이인 메뉴는 빠바나 뚜쥬 대비하면 거의 절반가격 수준이라 출근길에 몇 번 사본 적이 있었다. 단팥빵과 깨찰빵, 초코머핀 같은 건 천원이고 소시지빵같이 뭐가 좀 더 들어간 화려한 빵은 천오백원. 한개만 사기엔 머쓱한 분위기에 2,500원치 조합으로 샀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점원이 봉지를 휙 말아 묶는 손놀림이 군더더기 없었다. 혈당 레벨이 낮은 상황이면 뭔들 맛있지 않겠냐만 단팥빵은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부족할 수도 있는 풍미를 바로 커버치는 쫜득한 단맛의 파도가 입천장을 철썩거리며 혈관과 싱크를 맞췄다. 그날부터 주 2회씩은 종류별로 빵을 사는 재미를 누렸다. 유휴시간이 누수가 되는 이 일에 딱 맞는 조합이라 여기며 먹는 빵은 마음의 허기까지도 채워주는 것 같았다.




뱃가죽이 다리에게 태업을 지시하는 한시반쯤 올림픽아파트에서 가락시장 본죽 콜을 받았다. 30초 내 결정 필. 조건은 괜찮은데 다시 문정법조타운으로 돌아갈지 가락시장역 상권을 찍고 갈지 갈등이 일었다. 배민이 띄워놓은 조리완료 예정시간이 꽤 남았다. 지금이 바로 빵 먹을 시간이라고 앱이 ‘띠링띠링’ 속삭였다. 냅다 수락하고 향기를 따라갔다. 그간 못보던 마늘빵이 보이네. 아까 그 낯선 냄새는 너로구나. 마늘빵과 단팥빵을 계산하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픽업지로 갔다. 예정시간보다 빨리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일단 도착해서 버퍼를 둘 생각이었다.


죽집엔 노년과 장년층 여성 두 분이 일하고 있었다. 작은 매장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넷뿐인 테이블이 웬일로 꽉 차 있었다. 사장님이 좀 걸린다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니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괜찮습니다라고 쿨한 척 돌아 나와 변압기 옆 석제의자에 걸터앉았다. 죽집을 내려다보며 온기가 남아있는 마늘빵을 조심히 꺼냈다. 좀 짧은 바게뜨를 4분의1로 쪼개서 마늘과 버터를 올리고 파슬리로 마무리한 그럴싸한 형태, 한입 깨무니 크러스트가 파삭한 게 내취향이고 구멍이 뽕뽕 뚫린 내상도 좋다. 그래서인지 크기에 비해 좀 많이 가볍긴 했다.


“그럴 줄 알고 단팥빵도 있지롱.”


빠리지앵 대신 서울라이트(Seoulite)를 표방하며 마늘빵을 즐겼다. 어려서부터 마늘은 싫어해도 마늘빵만은 좋아했다. 아마 빵이라서 그런가, 달아서 그런가. 그나이땐 싫던 파슬리도 오레가노도 바질도 마늘빵에 올라가면 향긋해지는 마법. 그렇게 이어진 빵사랑의 역사가 가족이 생긴 이후엔 홈베이킹으로 번졌다. 계기는 근처에 살던 친구동생이 회사에서 받았다가 안 쓴다고 준 미니오븐이었다. 그냥 건식 이스트와 밀가루 소금만 써서 만드는 단순한 식사빵을 굽기 시작했다. 밀가루 종류나 발효에 따라 맛이나 질감이 계속 바뀌는 그런 빵이라 재밌어서 주말마다 구웠다. 금요일밤에 아내가 아이를 재우러 가면 반죽을 하고, 아내와 티비를 보면서 발효를 기다리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토요일 아침에 굽는 루틴이었다. 빵을 직접 만들며 알게 된 사실은 단순한 빵마저도 기다림을 포함한 시간을 꽤 필요로 하는 작업이란 점이었다. 나이 들면 빵이나 라면이 더부룩하고 밥을 찾게 된다는데, 아직까지 빵은 질리지가 않았다.




빵가루가 날리면 손등으로 훔쳐 닦고 빵에만 집중했다. 이 집은 단맛을 많이 내네… 하고 천원빵을 마치 블루리본 식당이라도 온 척 분석하다가 목에 사레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일어서서 컥컥거렸다. 머리를 처박고 궁둥이를 든 채 몇 번 들썩 거렸다, 자전거에서 물통을 꺼내 목구멍에 쭉 짜서 밀어 넣었다. 물을 밀어넣는데 눈물이 즙도아니고 밀려나왔다. 한 삽십초 걸렸으려나, 안정을 찾고 다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금요일 오후니까 이제 한 3만원만 더 벌면 이번 주는 이 정도로 마감이었다.


‘밤에 까먹지 말고 빵반죽 해야겠다. 왜 나는 저런 하드빵 식감을 못낼까, 컨벡션 오븐 사고 싶다.’


가루는 계속 날리지만 이제 사레 따윈 문제없었다. 몇 입 들어가고 나면 급히 먹지 않는 게 본능이니까. 이생각 저생각을 하면서 눈은 계속 주방과 홀 사이 다음 오더를 주시하고 있었다.
홀을 보던 아주머니가 나오길래 뭔 일이 있나 했다. 아주머니가 난처한 표정을 또 짓는다.


“물 좀 드릴까요?”
“네?”
“아니 목맥혀 보여서 그래. 물 드시면서 드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저 물 있어요, 여기요.”

두번이나 더 묻는 아주머니가 들어가는 걸음을 눈이 쫓았다. 창문 안으로 몇 안 되는 손님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따뜻한 멘트와 대비되는 우호적이지 않은 손님들의 표정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창밖에서 라이브로 먹방쇼를 했다. 꺼내려던 단팥빵을 가방 속에 팽개쳤다. 프랜차이즈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투명창을 격자무늬 프레임삼아 갑자기 사파리의 침팬지가 된 셈이었다. 안과 밖의 경계가 있으면 밖은 보통 관찰대상이고, 지금 명백히 내가 밖이니까. 혹시 제가 여러분의 식사를 방해했을까요.

자전거에 물병을 꽂고 돌아서 있었다. 메가커피 카운터에서 픽업을 대기하는 잔들을 사람들이 하나씩 채갔다. 점심시간 끝났구나. 얼마간 지났을까, 사장님이 손수 죽 봉지를 들고 나왔다. 삐걱이는 유리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렸다. 이후로는 콜이 다시 붙었다. 한시 무렵이 가장 조용하고, 두시 이후엔 다시 음료나 늦은 식사 콜이 들어왔다. 신호를 기다리다 단팥빵을 꺼냈다. 음식사이에 껴있어서 눌려졌지만 아직 뜨끈했다. 허기가 애매하게 남아있었다. 그래도 뜯어먹었다. 물이 얼마 남지않아 우적거리며 오래오래 씹었다. 단맛이 저번보다 덜했다. 이제 다섯콜만 더 빼고 가면 빨래도 청소도 해놓고 유치원에 저스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도 시간거지였는데 여전히 시간거지네.’


핸드폰 측면 버튼을 눌러 화면을 끄고 거울로 만들어 허연 가루 묻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창문뷰가 지금 이 거울뷰랑 같다 이거지? 오늘은 정말 거지꼴이 맞았다.





여기까지가 2부입니다. 3부는 배달 생태계 안에서 본 제 나름의 관찰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갑자기 이런이야기라고? 라고 놀라실지도요. 아침이면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 할까말까하는 계절이네요. 꾸준히 옆에서 달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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