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고 타는 즐거움

단순한 명령에 따르는 평화. 오줌의 해방

by플랑시


대략 천 개 정도의 콜을 수행하고 나서는 별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얼마나 혹은 어떻게 고민을 하든 일당으로 나오는 결과는 비슷했다. 이 좋은 날씨에 혼자 열내지 말자는 생각으로 천천히 짐을 쌌다. 대충 시키는대로 타보자고, 일종의 테스트였다. 이제 반바지를 입어도 될 날씨였다. 반바지가 주는 후련함은 어마어마했다. 밖으로 뛰쳐나온 무릎에 주어진 자유에 페달을 밟는 순간들이 경쾌해졌다.




어쩌면 이 경쾌함은 장비빨이었다. 자전거를 바꿨다. 원래는 배달용으로 아파트 야외거치대에 두고 다니는 저렴한 철제 자전거를 사용하다가, 집안에 모셔두던 로드바이크로 배달을 시작했다. 신입사원때 한달치 월급을 털어 질렀던 2012년식 싸이클은 당시에는 인생 최고가의 사치품이었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은 감가상각이 끝난 탄소섬유 덩어리가 되었다. 카페 자리에 놔둔 노트북이나 핸드폰은 멀쩡하더라도 묶어둔 자전거만은 바퀴만 남기고서라도 훔쳐간다는 신기한 나라지만, 이제는 고물이 되어버린 이 자전거가 절도로부터의 안전지대에 다다랐단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도 중고로 구매해서 소비자가의 절반 가격으로 샀지만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막 굴릴 결정에 아픔과 쾌감이 양가적으로 밀려들었다. 프레임 한쪽에 새겨둔 이름을 스티커로 가릴까 잠깐 고민했지만, 누가 그런 것까지 살펴보겠냐 싶어 그냥 끌고 나왔다.


도로로 나서니 발끝 감각으로 전해지는 반응에 헛웃음이 났다. 썩어도 준치라고 가벼운 자전거가 통통거리면서 노면을 지치고 나갈 때면 한 시간은 더 타도 몸이 쌩쌩하겠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배달일을 할 거면 오토바이는 못하더라도 전기자전거라도 사라며 혀를 차던 자전거 동호회 친구 생각이 났다. 미련함도 고집의 일종이려나.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온이었다. 햇살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한 봄과 여름 새 어드메면 딱 배달수요는 바닥 근처. 미션도 없고 단가도 고만고만하니 오늘은 되는대로 돌아다닐 요량이었다. AI와 기싸움을 수없이 벌이며 연전연패를 기록해서였을 수도 있고. 날씨 탓이든 기분 탓이든 들어오는 콜을 큰 고민없이 받기로 했다. 시작은 평소와 큰 차이는 없었다. 관성적으로 문정동 상권으로 출발해 몇 건을 돌다가 장지동으로 넘어갔다. 냉큼 위례신도시나 복정역 콜이 들어왔으나 이건 좀... 하면서 거절.


다음엔 가락시장 안으로 넘어갔다. 지게차와 대형트럭이 많고 상점을 찾기 어려워 기피하던 곳이지만 그냥 받았다. 간밤의 열띤 경매판이 지나갔는지 약간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닫은 가게가 많았다. 커다란 차양 같은 건물 안은 오후에도 어둑어둑했다. 켜켜이 쌓인 박스들 사이로 상점 번호를 보며 길을 찾지만 00상회는 대체 어딨는지 보이질 않았다.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이너피스를 놓치지 않기로 작정했는데 하필 면요리라 마음속 조급함이 불어터지기 시작했다. 통화를 하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커다란 00청과 간판을 보고 4방위와 숫자로 조합된 기둥을 확인했다. 의심 가득했던 배달앱의 GPS핀 위치가 원래부터 맞는거였다. 늦은 점심식사로 하루를 여는 청과동 상인의 친절한 안내와 밝은 표정에 15분만에 평화와 초심을 되찾았다. 별생각 없이 타니 이렇게 편한데, 시급이 몇천원 덜 나와도 정서적 에너지소모를 감안한 총비용으로는 이 편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뇌를 빼고 탄다는 배달카페 형들의 말이 이런 거구나.”


이 말이 주는 자그마한 해방감이 사무실을 떠난 길 위의 생활을 안온하게 보이게 했다.




이쯤되면 가락시장역 앞 상권에서 픽업해서 우리 집 쪽이나 문정동 오피스텔촌으로 돌아가는 그림이려니 했는데, 송파역 상권 픽업 후 헬리오시티 서쪽 배달 콜이 들었다. 둔촌주공 분양 전에는 전국에서 제일 큰 대단지라는 9,500세대 중 탄천 쪽에 붙은 동이었다. ‘이거 해 말어?’ 반복되는 콜사운드가 긴장감을 돋우는 와중에 오늘의 그라운드룰은 지킨다며 수락버튼을 눌렀다. Inner Peace.. 이너 피스.. 를 되뇌며 시장을 가로질러 지하차도 앞 사거리를 ㄱ자로 두 번 횡단했다. 송파역 뒤쪽 지하 중식당에서 볶음밥과 간짜장을 픽업할 때, 내 이너 혹은 피스 어딘가에서 약간의 토출압을 느꼈다.


요의(尿意)가 들 때도 되었다. 날이 더워지니 물을 더 많이 마시기도 하고, 아침에 커피를 진하게 마시기도 했다. 송파역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이번배달을 마치고 오는 길에 가면 되겠다 싶었다. 아파트상가도 있으니 급하면 뭐 방법이 있겠지.


신축아파트 배달지의 숨은 리스크는 고층이었다. 엘리베이터만 한참을 타는데, 엘리베이터가 빨라서 그런지 갑자기 오줌 줄기가 중력가속도를 타고 노크를 하고 있었다. 완료버튼을 누르고 1층으로 내려오니 다시 소강상태,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어온 콜이 전파 연결문제로 버벅대다가 화면에 떴다. 권역이 점점 북진 중이었다. 동선상에 있는 헬리오시티 북쪽 상가에 들렀지만 화장실은 잠겨있었다. 비번을 받으려면 뭐라도 사야 하나. 일단 가야 했다. 석촌동 빌라촌의 골목길은 복잡하지만 조용했다.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축들이라 오히려 변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5층인 배달지에는 금방 다녀오니 자전거도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이너 피스.




다음은 송파동에서 픽업해서 다시 가락동으로 돌아가는 콜이라 땡큐를 외치며 잡았다. 작은 카페는 에어컨이 세서 살짝 몸이 떨렸다. 형형색색의 에이드 안에서 “짤랑” 하며 작은 얼음덩어리들이 내려앉는 모습을 본 순간, 내 방광도 움찔거렸다.

‘집에 가고 싶다.’


가락본동에는 슬슬 영업을 시작하는 유흥업소들이 늦은 오후의 주요 고객이었다. 00노래방에 음료를 내려놓으면서 화장실 사용이 가능한지 물을까 고민이 들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화려하고 낡은 호피무늬 내부 벽체와 창문 없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밝기와 냄새 때문에 금방 빠져나왔다. 방광이 생각까지 조이고 있었다. 가락시장역 화장실을 왜 까먹고 지났을까, 우선 문정동으로 가야만 한다는 말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번콜은 잘 아는 픽업지라 핸드폰도 거치대에 꼽지 않고 문정역을 향해 내달렸다. 인도 한켠을 반으로 쪼개둔 자전거도로 보도블록의 작은 진동도 둔탁하게 배를 때렸다. 문정법조타운의 익숙한 오피스텔에서 몸에 밴 동선을 따라 1층 화장실로 뛰었다. 건물 입구 앞에 대충 기대 둔 자전거가 기울다가 반쯤 돌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아이 시발!”


울고싶지만 그냥 앞으로 걸어야만 했다. 네모난 가방이 입구 문 벽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변기 앞에 섰다. 장갑만 벗고 가방,헬멧,고글을 착용한 채 가루지기라도 된 모냥으로 하얀 타일 위 새겨진 파리를 때려잡았다.


‘이게 진짜 해방이고 카타르시스지.’


익숙해서 소중함을 모르던 개방화장실이 진정한 복지이자 삶의질이었다. 대자로 뻗어있는 자전거는 잠시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공중화장실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서 확신이 든 게, ‘아, 한국슬롯에서 노동자는 시민이 아니구나.’”

우연히 클릭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연구자가 했던 말이었다. 조선소 여성노동자의 화장실 이용실태 장면이었던가. 잠깐 머리를 스친 관념에서 다시 눈앞의 파리로 집중을 옮겼다. 만수위 홍수가 터지듯 오줌을 뿜어대니 마지막엔 어딘가 아팠다. 요로결석 초기증상인가 싶을 정도로 바디샷을 맞은 것처럼 아랫배가 뻐근했다. 일터의 “쌀 권리”에 가닿지 못하는 “노동자의 시민성”같은 주제까지 다다를 틈도 없었다. 귓불이 저릿하게 떨리는 소름돋는 체온 저하가 내가 추구하는 전부였다. 흥얼대며 손을 씻고 있는데 들어오던 청년이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게 거울에 비쳤다. 아무래도 내 꼴이 좀 이상한가 보다.


벽에 걸어두고 허구헌날 닦던 자전거는 손잡이가 갈리고 페인트가 떨어지고 검은 카본속살을 드러낸 채 드러누워 있었다. 다행히도 카본층 크랙은 아니었다. 이제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손으로 옷으로 계속 문댔다. 건물 앞 벤치에 앉아 남은 물을 다 털어먹었다. 오줌이 마려운데 목도 마른 위아래의 고통은 처음이었다. 싹 다 비운뒤 마시는 생수가 운동후 이온음료보다도, 만취중 소주보다도 달달하게 넘어갔다. 몇 년 전 반도체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던 에이스 대리 생각이 났다. 내가 대리를 달 즈음 처음 받았던 신입이었다. ROTC장교 전역 후 바로 입사해서 군대말투가 덜 빠졌던 각진 모습과 이등병 마인드처럼 엉덩이가 가벼운 ‘막내다운’ 모습을 윗사람들이 한결같이 좋아했다. 항상 깔끔한 모습과 예의 바른 말투인 후배는 바로윗짬인 내게 마음을 조금 열었는지 회식 후 굳이 둘이서 편의점 맥주를 사서 길바닥에서 한잔 더 마시곤 했다. 맥주캔을 찌그러트리면서는 취기에 기대 말을 편하게 했는데, 그가 급발진 비슷한 분노를 뿜어냈던 날이 생각났다.


“형 저 아직 서른도 안됐잖아요, 근데 최근에 비뇨기과 갔어요. 맨날 별놈들이 다 찾아대니까 씨 화장실도 못가갖고, 여기가 아파서 가보니 방광염이래요. 내가 그거땜에 현타가 와서 정말.”


조온라인 게임을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점심시간마다 "저 화장실만 잠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달려가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통화를 급히 마치고 한쪽만 낀 유선이어폰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으며 어기적대던 뒷모습이. 뇌를 일부러 빼고 일하든, 오줌을 못 빼고 일하든 간에 자괴감이 자기효능감보다 우선 들이닥치는 건가. 와이셔츠를 입던 그때의 후배와 반사조끼를 입은 지금의 나는 둘 다 급했고 아팠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타고나서야 포털 기사에 오른 다큐 제목처럼, 싸느냐 참느냐 그것이 당면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