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와 특이점 사이의 나
반년째 공고를 훑으니 스크롤사이로 남은 묵은지들이나 이게 뭔지 알면서도 혹시 새로운 건가 클릭해 보는 쉰내 풍기는 나나 다 시고 썼다. JD(Job Description)을 곰곰이 읽다가도 제미나이에 연봉 수준을 물었다. 메일함에선 언제 지원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전에 지원한 외국계 회사의 “We regret to inform you that…” 으로 시작되는 서류탈락 안내 메일이 매일매일 쌓이는 공고 추천 광고메일 사이에 콕 박혀있었다. 딴짓하다 언론사 기사라도 클릭하면 크롬 브라우저 우측에 채용사이트 광고가 합격보상금 얼마라는 애니메이션 효과까지 거들면서 벌렁거렸다. 모든 취업사이트가 AI가 매칭해주고 추천해 준다는 말을 하거나 얼마를 내면 'AI 서류합격 코칭'을 해준다고 하니 아주 꼴뵈기가 싫었다. 하지만 신경질적으로 Alt+Tab을 누르니 방금 클로드에 물어본 JD가 떨떠름하게 남아있었다.
이내 배달맨으로 체인지하러 끝 차선을 타고 서둘러 집을 향했다. 신록이 짙은 녹음으로 바뀐 거리는 소음과 냄새가 가득했다. 가장 가장자리 차선을 막은 1톤 트럭이 보이면 어김없이 예초기가 돌고 있었다. 가림막을 든 두 명이 서서 자리를 잡고 나면 등에 예초기를 멘 두 명이 투입되어 기름냄새를 풍기며 윙윙거렸다. 가림막으로 막아도 풀조각이 조금씩 밖으로 튀어 바지에 붙었다. 회전기계의 소리가 멀어지는 와중에도 향긋하다고도 할 수 있고 비릿하다고도 느껴지는 잔향이 남아있었다. 양말에 박힌 풀조각이 따끔거렸다. 매년 때 되면 솎아지고 잘려나가는 게 저 가지들인데, 나도 곧 그럴까?
“다 엎고 지금부터라도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하나? 아닌가 지금 잔챙이 자격증 모아서 어디다 쓰나. 공인중개사말고 공인 뭐 있지?”
나의 만료된 자격증은 어떤 대기업 채용사이트에선 검색도 되지 않았다. 나름 미국자격증인데, 그러다 보니 갱신할 때 필요한 교육참가점수나 금액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구직이 어려울수록 일당으로 유혹하는 배달이 오히려 확실해 보였다. 비록 도피처일지라도 하원 전에 저녁찬거리를 살 돈이 계좌에 들어왔으니까.
낮기온이 30도를 찍을 무렵부터는 동선을 간소화하기로 했다. 신호등 체계로 표현하는 쿠팡에서 수락률과 배달완료율은 빨간색 표시로 경고 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비수기 단가지만 시간별 수급에 맞춰서 콜은 오게 되어있었다. 1시간에 벌 수 있는 아웃풋은 파악했으니 인풋 줄이기로 갔다. 반경 1km 남짓되는 문정법조타운 사무지구 위주로 돌고 동남권유통단지 같은 유배지는 무조건 거절, 조리대기가 심했던 특정 패스트푸드 매장도 거절했다. 2,700원이더라도 1km 미만의 단건위주로 수락, 시간을 은근히 잡아먹고 음식도 무거운 3배차 6천원대는 무조건 거절, 2배차는 픽업지나 배달지가 붙은 경우에만 단가보고 어셉트.
“20건- 20킬로미터-3시간 반”을 목표로 잡았다. 양사 어플을 동시에 켜고 더 나은 콜을 찾고 하루에 세번 가능한 수락후 취소도 최대한 활용했다. 이제 초보 딱지는 뗀 듯했다.
길눈도 생겼다. 사거리 신호의 체계와 순서가 머릿속에 들어왔고, 신호 앞 대기중인 사람수로 어느 방향의 초록불이 먼저 켜질지도 예측 가능했다. 이 신호를 놓치면 한블럭 더 가서 건너면 되는 걸 아니까 직진해서 최대한 빨리 다음 신호에 다다르면 곧 그린라이트가 파밧했다. 빌딩들 사이 자전거가 다닐만한 샛길과 개구멍을 알아 어플상의 지도를 무시하고 지름길로 갈 때면 왜인지모르게 게임 같아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어쩌고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말을 홀로 주워섬기기도 했다.
일하는 시간대가 점심뿐이다 보니 다니는 가게도 고만고만해서 세콜중 두콜은 아는 식당이었다. 거대한 몰 지하에서 울상으로 뛰어다니던 겨울의 코흘리개는 잊었다. 어떤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픽업지가 가장 가까울지도 앱과 머리가 공조해서 거의 완벽했다. 일부 오피스텔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외워서, 세대호출 없이 비번을 누르고 들어갈 땐 비즈니스좌석 승객이라도 된 표정을 지었다. 몇 호인지에 따라 가까운 입구와 엘리베이터가 어딘지도 얼추 머릿속에 있었다. 생활의 달인까진 아니더라도 건수가 쌓이니 효율이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이는 청맹과니시절인 1월만도 못했다. 허둥대고 헤매도 한번에 4천원일때랑 2,500원일 때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계절을 이기는 농부가 없듯 인디언 기우제나 지내는 내 신세를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서가를 두리번거리다 제목이 궁금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이란 바카라을 빌렸다. 기자인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배달일은 “자율적 임금노동자”라는 새로운 사분면에 속했다. X축이 자율성, Y축이 고용관계니까, 원래는 자율성이 있는 자영업과 고용이 확실한 피고용인으로 나눠진 영역밖의 사람들이 등장했다는 말이었다. 편의점주가 “종속적 자영업자”라면 나 같은 라이더는 그 옆에 있는 닮은 듯 반대인 위치였다.
법적으론 고용관계가 아닌 자영업자지만 일감은 플랫폼에 종속된 관계,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일이지만 벌 수 있는 날과 폭은 정해져 있으니 주구장창 돌릴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반복해서 쌓은 숙련을 바탕으로 한 대공장의 노조같은 교섭력 따윈 이 판엔 남이야기일 뿐이었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수확을 좌우하는 제1 변수는 자연의 영역인 날씨와 계절, 그 아래층으로는 플랫폼 간의 경쟁상황에서 기사확보를 위해 떨어지는 프로모션뿐이었다.
장마가 다가오면서 비예보가 있을 때마다 배달커뮤니티는 새 글이 늘었다. 빗길이 무섭지만 비가 와주길 빌고, 폭염이든 혹한이든 “기상할증”상황이 와달라고 외치는 진담반 농담반의 글들이 게시판을 채웠다. 배민과 쿠팡은 몇백원 차이로 황제가 되기도 하고 개새끼가 되기도 했다. 골계미의 민족답게 그런 넋두리들마저 하나의 놀이문화가 된 느낌이었다. 삽시간에 올라오는 글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다가도 어느덧 하나씩 댓글까지 읽고, 초조하게 시간별 예보를 들어가 보는 내가 우습고 싫었다.
비는 제동거리에 비례해서 시급을 늘렸다. 건당 1,500원 정도 더 붙으면 신명이 났다. 기왕 하는 거 시원하게 비 맞고 들어가서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 오늘도 잠시 행복할 예정이었다. 차만 조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콜도 쏟아지고 길도 뻔한데 오늘은 빨리 마치고 들어갈 수도 있단 생각에 막걸리 생각도 났다. 약간 추운 상태로 집에가서 뜨겁게 씻고 맵싹한거 한입 물고 막걸리로 한 모금 중화하면 무릉도원 아닐까. 하원 때문에 사갈 수는 없겠지만 상상만으로도 퇴근이 기다려졌다.
미션을 무난히 깨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마칠 무렵인지 사람들이 허둥지둥 우산을 접으며 입구로 몰려들었다. 경비직원이 나를 세우더니 화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빗물이 후두둑 떨어져서 민폐였나 보다. 보양재로 둘러둔 커다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깐 분했다. 인이어 낀 보안직원 옆으로 들어가던 기억이 들어왔다가 뻗어가 사무직, 대기업, 정규직으로 포장한 내 결계는 얼마나 튼튼한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노동법은 모르겠고, 내 숙련이 무엇이고 암묵지는 무엇일까? 잠깐 쉬었다고 다 잊어버린 건 아닌데 10년 이상의 커리어를 스스로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단 게 CV에도 드러났을까. 내 도메인 지식은 속인화된 것일지, 아니면 데이터베이스만 갖춰지면 답이 뻔해지는 내용일지 모호했다.
그동안 다 잘못해온 건 아닐까. 예스맨으로 소맥이나 따르면서 상사에게 주억거리고 거래처에게 웃음과 겁박을 오가며 숫자들만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수요와 공급 같은 시장정보와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라면 AI가 훨씬 잘할 영역 같았다. 휴직하기 전엔 GPT가 지브리스튜디오 풍으로 그림을 바꿔준다는 정도만 들었는데 올해 느끼는 AI 발전속도대로라면 “특이점(Singularity)”은 몇 년 안에 정말로 올 것 같았다. 제도가 생존을 어느정도 연장해 준다고 해도 시한부 혹은 뇌사상태의 직업인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1분이 채 안 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파국적 생각까지 다녀왔다.
돌아가는 오르막길은 길었다. 날씨 때문인가, 문정로데오 거리는 손님이 적어 보였다. 올해부턴가 로데오길 공영주차장은 무인화가 완료됐다. 카메라 달린 허연 기둥들이 구둣방같이 생긴 주차관리소 임시건물을 대체했다. 여전히 안쪽 이면도로선 형광색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관리 중이었지만. 한국은 다들 복닥거리는 아파트에 살아서 아마존처럼 드론배달을 못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방금 본 엘리베이터 증권광고엔 현대차 휴머노이드가 뛰어다녔다. 피지컬 AI보다 아직 사람이 싸니까 배달 생태계가 지금처럼 돌아가는 거라면, AI 수요증가로 토큰(Token) 값이 비싸지면 사무직이 싸서 살아남는 역설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AI 전문가가 되어버린 지인이 농담처럼 던진 화두가 맴돌았다.
“한국에서 사람 자르는게 어디 쉬운줄 아냐?”
아는 사이중 거의 유일한 식자층인 친구는 내가 고용유지를 불안해할때면 쏘아붙였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에 닿으면 도망치고 싶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뭐라고 물어야 할지도 모르면 어떡하지. 그는 AI 뉴스를 시시각각으로 퍼날랐는데, 그 내용이 심화과정을 타면서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기사내용을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이게 뭔소린가 싶으면 급히 구글링을 해보고, 다시 기사를 이해한 다음에 답을 하다 보면 내 불안이 카톡에 묻어났다.
주제가 개인사로 들어오면 친구는 그냥 복직해서 정년까지 하시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었다가, 아님 그만두면 뭐 어떻냐고, 와이프도 잘 벌고 사람이 또 회사안다닌다고 그렇게 쉽게 망하는 게 아니라고 경험에서 비롯된 낙관적 말풍선도 띄웠다. 선문답같은 짧은 톡이 오가다 보면 종국엔 내가 답답해져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밑도 끝도 없이 묻게 되는 대화 패턴이었다.
“나이 들면 어차피 실존 아니면 허무 아니냐?”
실존이 뭐냐 묻는 내게 그는 '허무하면 약 먹어야지'라는 답만 남겼다. 어쩌면 올해들어 깨달은 사실은 내가 답이 아니라 질문부터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