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열한 안도감

FOMO

by플랑시


3월이 되니 갑자기 쿠팡 점심 미션이 사라졌다. 그놈 참 귀신같이 그러네. 도서관 노트북 자리에서 화면의 공고목록을 넘기다가도 자꾸만 핸드폰으로 시선이 내려갔다. 점심피크가 더 이상 피크가 아닌 건가, 3월 3일에 급격히 없어진 콜이 신기해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개학해서 그런거 아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온라인 게임 동료중에 방학중엔 아이들의 점심을 배달로 시켜주는 엄마가 은근히 있다는 말과 함께,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내 지역의 대단지아파트인 올림픽훼미리 콜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남이 미션받는다고 나에게 안들어올 미션이 들어올 일도 아닐진데 새 탭을 띄워 네이버 배달커뮤니티를 들어갔다. 라이더들은 “미션 받으신분 있어요? 여기 어딘데 안 들어왔어요.” 혹은 배민 쿠팡에게 미션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고 내가 경험해 본 어떤 카페보다도 빠르게 글이 착착 리뉴얼되고 있었다.




9시 도서관 출근멤버들도 얼추 얼굴이 익어갔다. 1번 자리를 늘 잡는 아저씨는 반백의 머리로 뭔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입구 앞 대머리 아저씨는 항상 정장차림으로 와서는 도자기 컵에 카누를 한포 타서 마시고, 종종 블루투스 이어폰 연결에 실패해서 본인의 내밀한 플레이리스트를 모두에게 공유했다. 열중 둘 정도는 HTS를 띄워놓고 골똘히 투자를 고민하는 중장년 남성, 10퍼센트 정도는 무언가 문제집을 올려두거나 인강을 틀어둔 수험생, 가끔은 미드나 유툽을 비싸보이는 헤드폰으로 몰입하는 젊은 사람, 성경필사를 꼼꼼히 하는 아주머니, 게이머…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최선의 삶을 사는 듯했지만 매일 보는 내 이웃들은 그다지 환산되는 가치와 맞닿아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단언컨대 오픈런 멤버중 가장 생산성이 엉망인 사람은 나였다. 가장 빨리 짐을 싸서 열람실에서 도망치는 나는 9시에 와서 간밤 미장시황을 보는 유투브를 보는둥 마는둥 듣고, 상단창이 가득 찰정도로 각종 채용사이트를 띄워놨다가 어느새 부동산카페 전날의 추천글을 읽어댔다. 카누를 한잔 원샷하고 나면 어김없이 한참동안 화장실로 다녀오는, 부산스러운 멤버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정도로 장활동만 생산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배달 카페는 무언가 들어가자마자 스크롤을 시급히 내리게 되는 편이었다. 메인화면의 큰 카페이름과 보험광고, 오토바이 리스, 신용회복 어쩌고 하는 로펌, 배달대행업체광고를 연달아 드륵드륵 내린 후에 최신글을 읽었다. 신세한탄, 특정 식당 욕을 하는 사람, 관심끌려고 야한 사진 올리는 사람, 일당 자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쓸만한 정보들을 담은 글들이 많았다. 초보 업자에겐 이 바닥 용어들의 감을 찾는게 우선이었다. 규모가 큰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상 온갖 부류의 사람이 있었지만, 이곳엔 앓는 소리와 자랑 양극단의 외침이 많았다. 그렇게 빠르게 서칭 후 결론은 "오늘도 미션 없구나." 왜 또 여길 기어들어갔는지 바카라망하며 노트북을 닫았다.




가끔 엄청난 현인들이 나타나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가르치며 투자권유글을 올리기도 했다. “여러분 꼬부랑 할아버지되서까지 배달할겁니까? 지금 당장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런류의 글이었다. 대부분은 깊이 없는 주식 자랑글이었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여 꽤 관심을 끌고 있었다. 댓글엔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왜 아직 배달하냐는 비아냥이 달렸다. 십여 년 전 회식자리에서 에이스였던 대리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하루에 커피를 너댓잔씩 때려먹고 걸핏하면 밤에 여기저기 불려가서 술을 먹던 그 선배는 좋은 고과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날 맡은 아이템에 문제가 터지고, 갑자기 몸이 안좋아진 후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 자기 사업을 한다고 퇴사했었다. 모니터의 PPT나 엑셀 아니면 주식앱만 보는 취미라고는 없어 보이는 선배에게 회식중 취해서 개기듯 따져물었던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모든게 바쁘시고 각박하시냐는 내 질문에 대한 선배의 답이 생각났다.


“내가 버는 돈도 있어야하고, 내 돈이 버는 돈도 있어야해서 하는거야.”


2010년대의 서울아파트값에도 뭔가 화가 많이 나있던 20대 사원은 대졸온라인 게임인의 성공코스대로 착착 결혼과 자가 마련을 해낸 그 선배가 부럽기도 하고 불행해 보이기도 했었다. 나를 이상주의자라고 일갈하면서도 취한 내 푸념을 유일하게 들어주던 그의 갑작스런 퇴사는 유일하게 마음이 아팠던 이별이었다.


패시브 인컴이든 파이프라인이든 선배말이 맞았다. 미국이 테헤란에 폭격을 해도 나스닥과 코스피는 잠깐 주춤할 뿐, AI 열풍이 새로운 산업혁명인 양 기술낙관론과 함께 후끈후끈한 열기를 지피고 있었다. 박살났던 금과 비트코인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잔뜩 찌그러졌던 주변의 온라인 게임인 단톡방이 후욱후욱 부풀기도 했다. 채팅방마다 꼭 한명씩 있는 마켓워쳐들이 기사하나 봉차트 하나씩 툭 던지면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열풍 또한 한철이겠거니 달랬지만 틈나는대로 비집고 들어오는 호재성 톡들 사이에서 올해 소득이 끊긴 건 내가 치러야 할 엄청난 기회비용으로 느껴졌다. 마음이 비뚤어지니 길 위에서 페달을 밟는 순간들이 형벌처럼 느껴졌다. 일단 카페의 배달 선배들이 미션은 기대하지 말라하고 비수기라 하니 더 일찍 출근 더 늦게 퇴근해야 했다.



날씨는 오락가락해서 완연한 봄같다가도 다시 겨울이 마지막 위세를 떨쳐대곤 했다. 옷차림도 근무패턴도 적응이 안됐다. 콜이 이어붙지 않으니 다급하게 똥콜을 잡곤 했고, 허둥대면서 돌아다녔다.

“자연빵_미션없이 그냥 타는경우_으로 타면 여유가 생긴다면서요, 저는 왜 더 조급하죠?”


마음이 타들어가니 공동현관에서 인터폰을 받지 않는 고객을 만나면 화부터 솟구쳤다. 앱에 써둔 비번이 안맞거나 설명이 자세하지 않아서 헤맬 땐 아직 반쯤 얼어있는 손가락이 후달거렸다. 근무중 유일하게 몸과 머리가 쉬는 시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잠깐동안이었다. 아직 조리 완료시간에 대한 감이 없어서 우선 콜을 받으면 전속력으로 가게를 찾아가고, 픽업 후 도착지까지는 신호대기 중에도 지도만 보다 다시 달리다보니 엘리베이터가 잠깐이나마 강제로 멈출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형 오피스텔 입구에서 공용현관을 못 열어 버벅거리는데, 젊어보이는 오토바이 라이더가 "잠시만요." 하고 자기집인 양 비번을 딱딱 눌러 자동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라고 쥐죽은소리로 말하고 쫄래쫄래 뒤따라 들어갔다. 함께 고층으로 올라가는데 그의 핸드폰에 익숙한 화면이 보였다.


‘잠깐, 저거 업비트잖아.’


순간적으로 내몸속 북방계 몽골리안 유전자가 발현됐는지 코인이름도 보인다. ‘이름만’ 보인다. 듣도 보도 못한 코인이니까. 방금 전까진 유능한 슨배님이었는데 그는 7층쯤 올라가는 동안 코인충이 되었다. 저 친구 저러면 안되는데 라고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선물이 아닌게 어딘가 싶다가도 ‘에헤이.. 안되는데’ 하고 생각했다. 저런 한탕주의 도박 말고 우량주를 사야지 라고 소리 없는 훈수를 두는 내 계좌에도 삼전닉스는 없었다.




2017년 점심시간 로비로 향하는 여의도의 엘리베이터, 눈앞 스마트폰마다 파란 업비트 화면이 가득했다. 대리 1년 차인 내 기준으로 후배들은 하나같이 암호화폐 열풍에 올라타고 있었다. 주니어들은 누가 얼마 벌었네를 불편한 선배들에게 공유하지는 않았다. 그때도 아마 난 비슷하게 굴었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당시엔 뭘 잡아도 홀짝처럼 반은 터지는 불장이었고 지금은 아니고, 내일은 어떨지 지금은 모르고.


그의 화면을 훔쳐보는 짧은 시간 느낀 감정은 사실은 일면식 없는 그에 대한 걱정이 아닌 저열한 안도감이었다. 혹은 그 청년이라는 표상에 내 마음대로 꿰어 맞춰버린 고정관념속 배달판 전반에 대한 우월감이었다. 잠깐동안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자아는 여의도 본사 건물로 가있었다. 몇 초간일까, 그가 먼저 내린 후 눈을 감고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회사 건물로 들어가 해질녘 여의도 환승센터 횡단보도를 분주히 건너는 점같은 인파를 상상했다. 짧은 시그널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시 1724호가 어딘지 어안이 벙벙하게 헤매는 코흘리개 배달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