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배달이

20년 전 친구에게 건넨 "건강해라"라는 인사

by플랑시


겨울에 하루씩 그런 날이 있다. 입춘이 지나서 그런지 삼한사온 때문인지 분명 겨울인데 봄같은 따스한 날. 길가엔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는데 바람은 거의 불지 않고 햇살은 노곤하니 따사로워서 잠깐 담벼락에 서성이고 싶은 날이었다. 천 건 정도 배달을 하니 짬이 좀 찼다고 시덥잖은 콜은 쫄지않고 거절도 눌러 쳐냈다. 오늘의 동선은 제법 맘에들게 돌아갔다. 따스한 날에 동네 안쪽으로만 돌아다니니 페달링을 힘껏 하지 않아도 효율이 잘 나왔다.



그동안 채용사이트를 통해 직접 지원한 공고는 계속 떨어지거나(대기업) 아무런 답이 없었다(외국계). 그런데 며칠 전엔 헤드헌터를 통해 먼저 포지션 제안이 왔다. 대기업이고 바이오업계였다. 고연봉과 업계이동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부합되는 오퍼였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사실은 이건 맘에들던 안들건 놓치면 안 될 옵션이었다. 처음으로 동아줄이 내려왔으니 썩은건지는 모르겠고 일단 잡자는 마인드였다. 난파선을 벗어날 유일한 기회라는 절박함도 한켠에 자리잡았다. 그래도 헤드헌터의 연락이라면 좀 더 무게감이 다른 제안 아닐까? 흔한 주식쟁이들이 늘 하는 말처럼 “이번엔 다르다.”라는 기대감으로 헤드헌터의 양식에 맞춰 이력서를 보냈었다. 실체없는 기대감이 요 며칠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던 건지, 날씨 탓인지 슬렁슬렁 동네를 돌아다니는 배달시간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겨우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평소 목표치의 일당을 벌었다.




요즘은 두쫀쿠가 핫했다. 소셜미디어 기준으로는 이미 한물가고 있는 듯한 단계인데, 유행에 대기업들이 하나 둘 입을 대는 그 시점이 바로 동네 모든 가게들이 두쫀쿠를 팔아제껴서 배달하는 시기였다. 동네카페는 그렇다치고 여기도? 하는 뜬금없는 식당에서도 두바이 쫀득 쿠키를 팔았다. 자전거로 배달하는 입장에서 두쫀쿠는 일종의 노다지였다. 음식이 든 것 같지도 않은 가벼운 무게에 두개들이에 7천-8천원에 육박하니 배달최소금액에 맞추기 위한 추가 아이템도 몇 개 없었다. 베스트는 두쫀쿠에 구움과자 한두 개 끼워둔 만원대의 주문 건. 음료도 없으니 흐를걱정도 없고, 짬뽕이나 마라탕이나 해장국 삼대장에 대비해선 깃털 그 자체였다. 오늘은 그런 두쫀쿠를 세 번이나 했으니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일당을 더 벌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력서 생각이 자꾸 나는데 눈앞에 종종 다니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타났다. “갈땐 가더라도 600원짜리 메로나 하나정도는 괜찮잖아?” 저거다 싶었다. 심지어 제로페이도 되는 매장이었다. 쌓아둔 서울시 9988 포인트로 아이스크림을 사니 소확행이 따로 없었다. 하루에 12,000걸음은 자동으로 차버리니 사실상 공짜. 햇살을 즐기고 싶어 고글은 벗어서 헬멧에 걸쳐두고, 버프를 턱밑까지 끌어내린 채 메로나를 베어 물었다. “아이스크림의 참 맛은 겨울이지 암요.”


낮동안 온종일 하는 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 쿠팡입니다!” “네 번호가..PX96LZ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이정도가 전부여서 혼잣말이 나도 모르게 늘었다. 하루 종일 전화를 걸고 받으며 씨름하던 작년엔 말 좀 안듣고 안하고 살고싶다라는 작은 소원이 있었는데 정작 말을 안하고 사니 웅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나? 모르겠고 지금의 메로나는 그저 완벽했다.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어서 두입부터는 빨아먹기 시작했다. 입안에 넣고 빙글빙글 돌려가며, 한손으론 핸들을 잡고 이 완벽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빌라촌 골목을 짜르르르한 내 바퀴소리가 채우고 있던 찰나, 컬이 큰 웨이브의 갈색머리 여자를 지나쳤다가 동시에 돌아봤다.

“어?! 혜지야!”

20년 전에 처음만난 대학동기였다. OT때 같은 방이어서 처음 안면을 트고 근처에 살며 이유없이도 편의점 야장을 즐기던 사이. 남자동기들이 우르르 리어카 한대 끌고 몰려가 그녀의 자취방 이사를 도왔던 추억도 있었다. 복학하고 졸업하며 자연스레 멀어진 사이였다. 그녀는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됐다가, 판사가 되고 문정동에 위치한 동부지법에 발령이 나 옆 아파트 단지로 이사왔었다. 우연히 동네에서 만나서 밥도 한번 먹었다. 근처에 사는 동기 몇몇이 연락이 닿아 3년 전인가 점심모임을 하고 석촌호수에서 벚꽃구경도 했었네. 몇 년만에 만난 그녀도 육아휴직 중이었다. 마흔에 만난 둘은 갑작스런 조우도 그렇지만 각자의 모습에 꽤 당황한 듯했다. 그 친구는 너무 자연스러운 원피스차림 동네룩과 민낯으로 마주친 게, 나는 너무도 프로페셔널한 배달룩으로 마주친게 패착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연두색 메로나는 덤으로다가.

우리는 반가움과 껄끄러움 사이 어딘가에서 근황토크를 시작했다. 쌍둥이 육아휴직 2년이 거의 끝나가고 있고, 다음 근무지는 본가가 있는 지방의 법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주말부부를 하며 부모님의 도움으로 육아를 이어갈 거라는 스토리를 들었다. 잘됐다는 둥 다행이다는 둥 답을 하면서 내 근황은 질문이 나오기 전에 낚아채듯 늘어놓았다.


“나 올해 육아휴직 했어. 보시다시피, 놀고 있다 하하.”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한입 남은 메로나를 입에 쏘옥 넣었다. 카지노톡 프로필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얼추 파악할 수 있는 근황을 단서삼아 “애들 이제 돌 쯤인가?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이런 말들을 이어갔다. 하필 그 골목길엔 차도 한대 안지나가는지 아무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그것도 오랜 친구라니 너무너무 좋은데, 좋은데… 말을 이어가기가 불편해졌다.


몇 년 전에는 부리나케 점심약속을 잡고 그것도 모자라 한참동안 티타임을 가졌었는데, 지금은 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표정도 내 기억에 그리 밝지는 않았던 것만 같다. 노화 때문이려나, 꽤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둘이나 키우느라 바쁜데 밥먹자고 하기도 어렵지, 라고 순간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곧 서울을 떠난다고 하니 이번에 못 보면 앞으로 언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잠깐의 침묵 후 내가 꺼낸 말은 “가기 전에 한번 보자.” 도 “다음에 만나자”도 아닌 “건강해라.”였다.

영원한 페어웰같이 어색한 인사말이 왜 나왔을까, 도망치듯 고글을 쓰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말을 하자마자 후회할 줄 알았으면서도 뭐라도 뱉어야 했다. 성급히 밟은 페달에 체인이 텅 하고 튀었다.


대학시절 나는 그녀의 시니컬한 유머코드를 좋아했고, 지방출신의 여느 여자대학생들과 달리 사투리 억양을 고치지 않는 태도도 멋지다 생각했었다. 부모님이 지방 유지인 그녀의 감춰지지않는 약간의 부티를 부러워했고, 연락이 끊어진 후 재회한 30대의 그녀의 슬롯적 지위에 일종의 열등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 기분은 단순히 전문직이라서 부러운게 아니라 어떤 지대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신입생 시절 서로에게 꿈이 뭐냐 묻던 스무살들은 몇 년 사이 고시반에 들어가 한방역전을 노리는 친구들과 극소수의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빼곤 어떻게든 졸업장을 써먹을 수 있는 최대 아웃풋인 취업에 바빴다. 가장 안일한 방법이었지만 재능과 노력까지 더해야 하는 베팅을 할 용기도 자원도 없었다.


지금 처지에 무슨 여유로운 점심약속인가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파국화에 빠진 생각들이 지금의 처지를 혼자 비관하며 벼랑끝으로 자신을 밀어낸 건지, 10분 전의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어색하게 굳은 얼굴로 헤어지고야 말았다. 그 후로도 카톡을 보낼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그 친구에겐 연락하지 못했고, 아마도 새 터전으로 예상되는 카지노 프로필 업데이트를 통해 그녀의 이사와 복직을 알게 되었다.

그날 오후 헤드헌터의 연락을 받고 경력기술서가 너무 축약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주말 내내 퇴고를 이어갔다. 잠깐 한 일인데 포함해야 하나 고민이 들정도로 했던 일들을 열심히 포장해서 두어장의 이력서로 바꿨다. 2주가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친절한 헤드헌터는 고객사의 채용과정이 다소 지연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결과는 탈락. 그 사이 몇 군데 외국계를 포함한 포지션에 관성적으로 지원했고 긍정적 피드백은 없었다. 목표로 했던 1분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점점 따사로와지는 햇볕이 더 이상 내게 여유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봄은 배달일에도 비수기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