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 막차의 갑작스런 하차
이번엔 1년 선배가 퇴사했다. 공장으로 입사해서 해당 지역에서 결혼하고 두 자녀를 기르는 아저씨. 그 지역사람이고, 거기서 팀장 달고 정년까지 할 거라 예상했던 사람이 뜬금없이 이직한다고 했다. ‘이게 되네?’ 하면서 슬쩍 취업사이트를 들여다보았다. 기존에 나간 똘똘한 대리들은 보통 5-7년 정도 더 낮은 연차였고, 그때그때 핫한 업계가 사람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뽑혀갔었다. 5년 전 에이스 대리가 나갈 땐 반도체로 갔고, 재작년엔 판교 IT로 몇 명이 도미노 순서로 따닥 넘어갔다. 어 작년엔 조선에 한놈 갔고. 이번엔 지정학적 갈등을 등에 업고 주가가 핫하다는 방산업체였다.
늘상 퇴사소식이 들릴 때 사무실의 분위기는 약간의 흥분감이 감돌았다. 부럽다는 마음과 약간의 질투, 그런데 나만 또 눈치 없이 그 흥분에만 머물렀었다.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전해졌다.
"그럼 거긴 누가 가?"
채용없는 퇴사만 겪고 있으니 사무실의 분위기는 끓기 직전의 냄비였다. 실제로 다들 얼마나 업무량이 늘었냐 하면 복잡한 변수가 있지만, 머릿수가 기존과 TO대비 줄어든 건 확실했다. 공장은 충원을 해주나? 한동안 사내공모라는 제도를 통해 사람들이 이부서에서 저부서로 옮겨 다녔지만, 서로 일손이 모자란 상황에서 자꾸 싸움이 나니 제도자체가 없어져버렸다. 타부서 포함 외부수급은 불가니 본사에서 체스 말 하나를 빼야만 했다. 임원의 방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승사자 면접보는 양 수첩을 들고 걸어갔다. 임원은 일단 산하 인력풀에 공개입찰 제안서를 비서면방식으로 보낸 상태였다. 그리고 직원들로부터는 다들 각자의 사정을 들면서 어렵다는 읍소가 돌아왔다.
느낌이 쎄할때는 보통 맞지. 나였다.
선정 방식은 일종의 소거법같았다. 싱글은 결혼해야되서 안되고, 부장님들은 후배 팀장밑에 보내기가 불편해서 안되고, 쟤는 절대 못 가요 하니까 안되고 등... 나도 애가 어려서 못간다고 했는데 논리가 부족했나 여지를 남겼나. 3040 과차장급으로 보내는 방향이 확인되었고 그중 저항이 극렬하지 않은 사람 혹은 에이스가 아닌 사람으로 고른 듯했다.
임원은 예전에 한팀에서 지낸 적이 있는, 서로를 잘 알면서 동시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강제로 보내는 대가로 내게 줄 수 있는 당근이 뭐가 있을지를 이야기했다. 거래처와의 협상을 수십 년간 업으로 해온 사람답게 공장을 다녀오면 주재원을 보내주는 딜을 만들어볼까 했다. 맞벌이를 유지해야 해서 주재원 생각이 없다고 했다. 구두계약도 아닌 은근한 옵션은 구속력이 없기도 했다. 아저씨들은 “제조업에서 공장경험은 필요하지.” 라며 좋게좋게 상황을 해설했다. 근데 당근을 준다는 컨셉 자체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채찍이란 뜻이잖아.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제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은 하나입니다. 주말부부를 하면서 아내와 아이를 처가에 합가 시키고 갭투자를 하거나 지금 집에서 월세라도 받는 식으로 요.” 머릿속에서 대충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것처럼.
회사가 산업단지에 베이스를 둔 제조업이고, 내 직무에 공장부서가 있으니 언젠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와도 몇 번씩 이야기했던 리스크였다. 그런데 정작 그 일이 목전에 닥칠때는 설마 나겠어하고 마음속으로 회피만 하다가 노가드로 관자놀이를 쳐맞은 상황이었다. Q/C/D 뭐라도 하나 빵꾸나면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한다는게 그간 해온 일인데, 정작 내겐 큰 이 펑크에 어떤 프로토콜도 없이 패닉만 남았다. 혈소판이 부족한 찰과상처럼 피만 철철 흘렀다. 몇 주 전부터 이 전시상황을 시시콜콜 아내에게 말해두긴 했지만 막상 “나야, 나래.”라고 말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등원 때문에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아내는 아침엔 30분 늦은 출근시간 눈치를 보고 저녁엔 제때 나오려고 일에 치였다. 하루종일 카톡 몇 개 못하는 아내에게 카톡으로 이 상황을 생중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원을 담당하는 장인어른과 같이 저녁상에 둘러앉은 7시 45분, 장인어른의 귀가 이후 말하려고 참았는데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입은 근질거리고 밥을 코로 먹는지도 모르겠고. 아이를 씻기고 말리고 입히고 바르고 눕히니 9시. 셋이 누운 방에서 아이와 아내가 같이 잠들지 않기만을 바랬다.
암막커튼을 쳐놓고 보일러 리모컨 불빛도 포스트잇으로 막아둔 암실상태인 방에서 아내를 불렀다. 잠결에 듣던 아내의 뇌에 ‘유미의 세포들’ 장면 같은 비상사태가 발령된 듯했다. 그 밤 우리는 미라처럼 나란히 누워 완벽한 어둠 속에서 온갖 케이스를 속삭였다. 연애 때도 이렇게 길게 속삭인 적은 없겠지. 시간계획과 현금흐름계획이 복잡한 층위로 겹쳐지면서 더 복잡해졌다. 처가 더부살이 플랜과 갭투자, 아이의 입학과 이사, 임원이 던진 공수표일수도 있는 주재원까지. 새벽까지 조곤조곤 이어진 대화 끝에 아내는 이불속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울어”
“미안해서.”
“뭐가 미안해.”
“너는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하고사는데, 내가 도울 수 있는게 없어.”
“너 지금 할 수 있는건 다 잘하고 있어.”
조용하고 비장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휴직계를 올렸다. 임원은 이런 꿈틀함은 예상못한듯 했다.
“육아 휴직을 쓴다고?, 머리 좋네.”
가족과 같이 지내고 싶다는게 하나뿐인 이유였다. 인식체계가 다른 탓인지 그 논거는 뭔가 잘못된 것으로 회사에서 받아들여졌다. 선배들은 저새끼 저거 성깔있네, 곤조 좀 부리네 정도의 반응이었고, 후배들은 멋지다느니 이해한다고 했지만 ‘나가려고?’스러운 반응이었다. 마침 조직인사 시즌인 11월 말이라 인사발령내용도 HR에 넘겨둔 부서장으로서는 빅 엿을 먹은 상황이었다. 그의 대외적 면이 심하게 빠그라진 일련의 사태에 작은 동요가 생긴듯했고, 어느 순간 내 주변에선 정적이 흘러 사무실에서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보통 이직하는 퇴사자들은 “아휴 아쉽습니다.”라고 해도 개선장군이라도 된 모습 혹은 마지막 휴가를 앞둔 병장 같은 표정으로 이사람 저사람과 티타임을 하고, 그들을 보내는 남은 사람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뭔가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인트라넷에 휴직 인사발령이 뜬 순간, 메신저로 몇몇이 티타임을 요청했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같은팀이었던 후배가 커피를 홀짝이며 “근데 바카라임님 멋지세요 잔다르크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잔다르크는 화형장에서 불에 타죽었어.”
급한 돌려막기로 인사는 마무리됐고, 내가 휴직으로 잡아먹고 있는 팀 TO에도 불구하고 운좋게 팀에 인원이 충원됐다. 나의 기행 때문에 업무과중 “이슈”가 생겨버리니 팀원들의 표정도 좋을 수가 없었다. 충원으로 인해 팀원들로서는 내 일을 1/N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당혹스런 표정이 한결 밝아졌고, 긍정적 반응에 더욱 돌아와 앉을 의자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전 희망하지 않는 부서로 보내져서 버티다가 친정인 우리팀으로 돌아온 70년대생 선배에게 인수인계를 하면서 농담조로 “나중에 밥 사세요.”라고 했다.
12월 특유의 회사분위기답게 송년회들로 어수선하게 유야무야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채용사이트들을 가입했다. 혹은 오래전에 가입해두고 실제로 사용하지 않던 아이디를 다시 찾았다. 링크드인에는 아는 얼굴들이 많이 일촌 추천으로 보였다. 나 빼고 다들 이직시장에 이미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작은 충격이 다가오는데, 마지막까지 나와 최후의 1인을 다투던(우린 한 번도 다투지 않았지만) 옆팀 과장의 환하게 웃는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기한만료된 자격증갱신에 드는 돈도 회사의 호시절처럼 지원받을 순 없으니 개인적으로 알아보다 비싸서 놀랐다. 어차피 겪을 10여 년 후의 은퇴’당한’ 생활을 미리 예습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이라는 말은 휴직 일주일 만에 취소해야 했다. 아직 한 발을 회사에 걸어둔 처지였지만, 링크드인 리멤버 원티트 사람인 잡코리아를 크롬화면에 켜켜이 띄워두고 어느때보다 바빴다. 외국계 지원용 이력서와 CV도 AI와 부지런히 고쳐가며 지원서를 넣었다. 15년 전 회사별로 스터디하며 귀사는 어떻게 잘 크고 있으니 제가 가서 더 키우겠습니다 같은 가짜 포부를 쓰기보다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서류 하나로 꽤 돌려쓸 수 있으니까.
가장많이 간 사이트는 블라인드였다. 공고에서 뜬 회사의 처우나 분위기를 알아보는데 지원하는 과정보다 에너지를 더 쓰는 상황이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때와 비슷한 건 자꾸 떨어진다는 사실. 이따금 헤드헌터를 통해 오는 제안은 보통 워라밸이 안 좋기로 소문난 곳들이라 또 마뜩잖았다. 뭐라도 하나 붙어서 가자 라는 막연한 목표의식과 절박함이 있던 2012년과는 달랐다. 더 늙고 배부른데 왜 더 불안한지는 아리송했다. 90년대 콘솔게임처럼 무언가 밟고 위로 뛰어오르지 못하면 아래칸이 아니라 나락으로 가는 세상으로 느껴졌다. 퀀텀점프까진 아니더라도 점프업을 해야만 하는데 발은 계속 헛구르고, 그러다 보면 초시계가 목숨을 앗아갈 것 같았다.
목표는 사양산업 소리를 듣는 업계 탈출인데 경력이라고는 아무리 포장해도 꼬박 이 업계라 타 산업의 대기업은 서류탈락만 이어졌다. 핫하다는 업계가 그나마 채용공고가 있었으나 당연히 전혀 업태가 달랐다. 막연히 에덴동산일 거라 착각했던 외국계 기업들은 자체 채용사이트를 통해 지원하는게 대부분이었다. 열심히 양식대로 내용을 채우고 나면 올라왔던 공고가 사라지기도 일쑤였다. 내가 뭘 잘 못하고 살았나, 아니면 너무 늙었나 벌써, 내가 눈이 너무 높나. 타들어가는 시간속에서도 천천히 내 유통기한은 쓰이고 있었다. 나는 무겁기만 하고 소비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앞다리살 같았다. 동네 마트에서 내일까지면 30% 할인하고 오늘까지면 50% 할인하는 그런 수육용. 내쪽으로 팔을 많이 굽혀 항변하자면 오늘 사서 내일 삶아도 그럭저럭 맛있는데 이정도 할인안하면 사지 않는 물건말이다. 저녁거리로 50% 할인하는 고기를 집으면서도 내 유통기한과 할인율을 받아들이는 일은 버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