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다시 오는가?

by김작가씨작업소

예수는 다시 오는가?

기독교인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수는 죽었다가 부활했고, 하늘로 올라갔으며, 언젠가 다시 내려와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재림의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예수가 다시 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그리고 돌아온 예수가 세상을 심판한다면, 하나님은 그때 무엇을 하시는 걸까?

무엇보다 예수 자신은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32)

아들도 모르는 날을 아버지만 아신다.

그렇다면 그날을 결정하는 분은 누구인가? 예수인가, 하나님인가?

나는 재림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질문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흙의 형상을 벗고 하늘의 형상을 입다

예수는 죽었다. 그리고 부활했다.

여기서 부활을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죽었던 사람이 이전과 똑같은 육체로 돌아온 것이라면, 그것은 부활이라기보다 소생에 가깝다.

다시 살아났어도 언젠가는 또 죽을 몸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부활을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고린도전서 15:44)

또한 첫 사람 아담을 흙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부활과 관련하여 하늘에 속한 사람의 형상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49)

나는 이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흙의 형상과 하늘의 형상.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육체는 흙의 형상이다.

먹어야 살고, 잠을 자야 하며, 병들고 늙는다.

벽이 있으면 돌아가야 하고, 문이 잠겨 있으면 열어야 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부활한 예수는 달랐다.

제자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모여 있을 때, 예수가 그들 가운데 나타났다.

요한복음 20장에는 문이 닫혀 있었는데도 예수가 들어와 제자들 사이에 섰다는 이야기가 두 차례 나온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함께 걷던 예수는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아는 육체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마치 벽을 통과하거나 어느 장소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성경은 예수가 실제로 벽을 뚫고 지나갔다거나 순간이동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전의 육체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유령이 된 것도 아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었다. 만져보라고 했고, 그들 앞에서 음식을 먹기도 했다.

분명 육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육체와는 다르다.

나는 이것이 하늘의 형상이라고 생각한다.

부활은 영혼만 살아남는 사건이 아니다.

육체 자체가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바뀌는 사건이다.

예수는 그 하늘의 형상을 입은 첫 사람이다.


다니엘은 왜 ‘인자 같은 이’라고 했을까?

다니엘서 7장에는 흥미로운 환상이 등장한다.

다니엘은 하늘 구름과 함께 오는 어떤 존재를 본다. 그런데 그를 단순히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한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다. 그런데 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같은이라고 했을까?

나는 다니엘이 본 존재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보통 사람과는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언가 다르다.

물론 다니엘서가 그 존재의 육체적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이’라는 표현도 환상 속 모습을 묘사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정확히 무엇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면 흥미로운 연결이 생긴다.

제자들이 만난 부활한 예수도 사람이었다. 말을 하고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닫힌 문 안에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가 아는 사람과는 달랐다.

다니엘이 그런 존재를 보았다면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사람 같은 이.

그런데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말했다.

여기에도 차이가 있다.

다니엘은 자신이 본 존재를 묘사했다. 반면 예수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말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며 ‘사람 같은 이’라고 표현한 존재가, 스스로를 가리킬 때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니엘의 ‘인자 같은 이’와 예수가 말한 ‘인자’를 이렇게 연결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은 다니엘서와 복음서, 바울의 부활론을 함께 읽으며 도출한 해석이다.

성경이 다니엘의 환상 속 존재를 ‘부활하여 하늘의 형상을 입은 예수’라고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해석은 예수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예수는 우리가 아는 흙의 형상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얻은 하늘의 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예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예수의 얼굴을 모른다.

교회에 가면 예수의 그림이 걸려 있다. 영화에도 예수가 등장한다.

긴 머리와 수염, 깊은 눈매를 가진 모습이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상상한 얼굴이다.

성경에는 예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묘사한 기록이 없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고 볼품없다 표현했다.

예수 생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 초상화도 없다.

더구나 예수는 부활하면서 이전과 다른 육체를 입었다.

부활한 예수를 처음부터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동산지기로 생각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와 한참을 동행하면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예수가 다시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를 어떻게 알아볼까?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 말을 믿어야 할까?

얼굴을 대조할 사진도 없다. 살아 있는 목격자도 없다.

나는 마지막 날 예수를 알아보는 일이 외모를 확인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날에는 그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 정체를 드러내는 분은 예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일 것이다.

예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도행전 1장에 따르면 예수는 부활한 뒤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

그날 이후 예수는 우리 곁에 보이는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가 어딘가에서 쉬고 있거나, 마지막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베드로전서에는 매우 특이한 기록이 있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베드로전서 3:19)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그들이 노아 시대에 불순종했던 존재들이라고 설명한다.

예수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무엇인가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옥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그 영들이 죽은 인간인지 다른 영적 존재인지, 예수가 무엇을 선포했는지는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기록은 예수의 활동을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 안에만 가두지 않는다.

베드로전서 4장 6절에는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실제로 죽은 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뜻하는지, 살아 있을 때 복음을 듣고 이후 죽은 사람들을 뜻하는지도 해석이 갈린다.

성경은 이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한다.

예수는 부활하여 하늘의 형상을 입었다. 우리가 아는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활동하는 세계 역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에 국한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죽은 자들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예수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히브리서는 예수가 항상 살아서 사람들을 위해 간구한다고 말한다.

로마서 역시 예수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한다고 기록한다.

예수는 살아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상상하는 일을 실제로 하고 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나는 예수가 제자들 곁을 떠난 이후에도 하나님이 맡기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날은 아들도 모른다

이제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보자.

예수는 자신이 다시 올 날을 알고 있었을까?

마가복음 13장 32절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나는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예수가 모른다고 했으면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예수가 동일한 신적 존재라면, 하나님이 아시는 것을 예수는 왜 모르는 것일까?

전통적인 삼위일체 신학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구별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설명을 먼저 끌어오기보다 예수가 실제로 한 말에 주목하고 싶다.

아들은 모른다. 아버지만 아신다.

이 말은 두 존재의 역할과 권한이 구별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날을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예수가 자기 마음대로 날짜를 정해 세상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재림을 단순히 예수의 귀환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과연 충분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날은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다.

그리고 그날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까?

성경은 하나님을 인간이 함부로 볼 수 없는 분으로 묘사한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타나셨다는 기록도 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맞이한다.

본문은 이 사건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로 소개한다.

야곱은 어떤 사람과 밤새 씨름한 뒤 자신이 하나님을 대면했다고 말한다.

이삭에게도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그때 사람의 모습이었다는 구체적인 묘사는 없다.

이 이야기들은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본래 존재 방식과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본래 육체를 가진 인간과 같은 분이 아니라고 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에는 어떨까?

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인간에게 그대로 드러내시는 대신, 우리가 볼 수 있는 존재를 통해 나타나실 가능성을 생각한다.

그 존재가 누구일까?

부활하여 하늘의 형상을 입은 첫 사람.

예수다.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죽었다가 부활했고, 이전과 다른 육체를 입었다.

사람의 모습을 지니면서도 우리가 아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통치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실 수 있다.

이것은 성경이 직접 설명한 하나님의 출현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구약의 하나님의 현현, 예수의 부활, 다니엘의 인자 환상을 연결하면 생각해 볼 수 있는 해석이다.

심판하는 분은 누구인가?

여기서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가 돌아온다고 해서 예수가 곧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예수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서 심판과 통치의 궁극적인 주체가 예수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4)

바울 역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도행전 17장 31절에는 또 다른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하나님이 심판의 날을 정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정하신 사람을 통해 심판하신다.

여기서 심판의 주체와 심판을 수행하는 사람은 구별된다.

나는 이 구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심판하신다고 해서 예수가 하나님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왕이 자신의 권한을 맡긴 사람을 통해 통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판결을 집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정의의 근원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인간을 심판하고 통치하신다면, 그때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예수를 본다. 그의 말을 듣는다.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심판과 통치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이 구별을 잃어버리면 어느새 하나님은 뒤로 물러나고 예수가 모든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주인이 돌아오는 날

나는 앞선 글에서 이 세상이 이미 하나님 나라라고 말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별도의 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물이자 하나님의 나라다.

다만 지금은 주인이 자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상태다.

사람들은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살아간다.

자기 몫이 아닌 것까지 차지하고, 약한 사람을 짓밟고,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해 부를 쌓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주인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정작 주인의 뜻대로 살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주인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을 그런 날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시는 날.

그동안 인간이 마음대로 해석하고 왜곡했던 하나님의 뜻이 더 이상 모호하지 않게 되는 날.

누가 하나님의 편이라고 주장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지가 드러나는 날.

그날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여 하늘의 형상을 입은 예수는 하나님과 함께 나타날 것이다.

사도행전 1장 11절에서 천사들은 하늘로 올라간 바로 그 예수가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약속을 예수가 하나님을 대신해 혼자 돌아와 세상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예수는 다시 오는가?.png



예수는 돌아온다.

그러나 예수의 귀환은 하나님이 자신의 통치를 드러내시는 사건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다니엘이 본 '인자 같은 이'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권세를 받았듯이, 부활한 예수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 역할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주인은 하나님이다.

예수는 주인이 아니다.

예수는 주인의 뜻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했고, 죽음을 넘어 하늘의 형상을 입은 첫 사람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존재로 함께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왜 예수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가?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로 자신만 구원받기 위해서인가?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이 벌받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지금의 세상이 끝나고 자신에게 더 좋은 세상이 주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인가?

나는 재림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가 다시 온다면, 그는 자신이 생전에 가르쳤던 하나님의 뜻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라고 했던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던 가르침, 남을 심판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고 했던 가르침,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지금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주인이 돌아온 뒤에야 주인의 뜻대로 살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날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예수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날이 언제인지 알려고 한다.

징조를 찾고, 전쟁과 재난을 연결하고, 종말의 시간표를 계산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잊어버린다.

그날이 언제 오느냐보다,그날이 왔을 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부활한 예수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영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가 돌아올 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가 부활하여 하늘의 형상을 입었고, 제자들 곁을 떠났으며, 성경이 그의 귀환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날을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나는 그날 예수가 혼자 나타나 세상의 주인이라고 선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와 함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진짜 주인의 통치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늘의 형상을 입은 첫 사람 예수를 통해 인간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통치하실 가능성을 생각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두고 논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누구의 편인지 다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주인이 누구인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해질 테니까.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따로 있다.

돌아올 예수의 얼굴을 상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날의 날짜를 계산하는 일도 아니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뜻을, 지금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는 예수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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