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보다 해석이 더 피곤한 사람
내일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날 밤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말을 꺼낼까.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면 어떨까. 근데 이렇게 말하면 저런 반응이 올 수도 있고. 그럼 이렇게 받아쳐야 하나. 아니면 저렇게. 준비하는 거다. 잘 하고 싶어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한 번은 괜찮다. 두 번도 괜찮다. 근데 반복될수록 시뮬레이션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엔 그냥 대화를 준비하던 것이, 어느 순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되어 있다. 상사가 화를 낸다. 친구가 상처받는다. 교수님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말을 잘못해서 관계가 어색해진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이미 일어났다.
파도처럼 밀려든다. 생각이 생각을 끌고 온다. 막으려고 하면 더 세게 온다. 자려고 누웠는데 그 대화가 계속 재생된다. 다른 버전으로, 또 다른 버전으로. 아침이 되면 그 대화를 실제로 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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