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기대를 상대에게 떠넘기지 않는 사람
우리는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마음을 표현할 때가 많다.
인사치레처럼 형식적인 말을 건네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짧은 한마디에 여러 의미를 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고 돌려 말하기도 하고, 상대가 내 표정이나 말투, 상황을 살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방식의 대화는 더 자연스러워진다.
굳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관계의 오해가 시작되기도 한다.
나는 분명 어떤 마음을 함께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내가 한 말 그대로만 받아들일 수 있고, 내가 알아주기를 기대했던 마음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반대로 상대가 내게 건넨 말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이처럼 말이나 행동에 겉으로 드러난 의미와 그 안에 담긴 또 다른 의미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이중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중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의도와 기대를 담고 있으며 상대가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있다.
예를 들어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 수 있다.
만약 그 기대가 컸다면 상대가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이 단순히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구나.”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지?”
하는 서운함이 생기고, 그 서운함이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상대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기대에 갑자기 바카라임을 요구받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상대가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또한 알아주면 고마운 마음과 알아주지 못하면 상대를 탓하는 마음 역시 전혀 다르다.
이중 메시지에 큰 기대를 싣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를 시험하는 암호가 아니라, 마음을 조금 내비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마음이라면 직접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알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를 눈치 없거나 자신만 아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이중 메시지가 단순히 마음을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 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겉으로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상대가 자신의 뜻에 맞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경우다.
“네 생각을 존중해.”
하지만 결국 상대의 선택을 통제하려 한다.
“나는 네가 잘되길 바라.”
그런데 상대가 잘되는 것을 불편해한다.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해.”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예민하다고 몰아붙인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지.”
자신의 요구에는 이해를 바라면서 상대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반복적으로 상대를 배제하거나 무시한다.
이런 경우에는 말의 내용만으로 그 사람의 의도와 태도를 판단하기 어렵다.
말과 행동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함께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감정에 따라 말과 행동이 잠시 어긋날 수도 있다.
따라서 한두 번의 불일치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불일치가 반복되는가,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이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사람도 있고, 오해였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면서도 상대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살피지 않은 채,
“네가 예민한 거야.”
“그런 뜻이 아니었잖아.”
“네가 잘못 받아들인 거야.”
라고 말하며 상대가 느낀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때는 단순한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넘어선다.
말로는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행동으로는 서열을 유지하고,
말로는 배려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상대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말로는 선택권을 주면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선택만 받아들이라는 것.
이런 관계가 반복되면 상대는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위하는데 내가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말은 좋은데 왜 나는 계속 불편할까?”
그래서 관계에서 이중 메시지를 살펴볼 때는 상대가 어떤 말을 했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말에 어떤 의도와 기대가 담겨 있었는지, 그 말이 실제 행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차이를 이야기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진심은 말의 온도가 아니라,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차가운 말보다 때로는 따뜻한 말 뒤에 따라오는 차가운 행동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이중 메시지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의도와 기대를 어떻게 다루고, 말과 행동의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더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직접 표현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알아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알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를 탓하는 사람인지,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자신의 기대를 상대에게 바카라임 지우는 사람인지,
자신의 감정과 기대를 스스로 바카라임질 줄 아는 사람인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달랐을 때 상대에게 왜 그렇게 느꼈는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도만을 내세워 상대의 경험을 틀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인지.
결국 내 곁에 누구를 둘 것인가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얼마나 잘 알아맞히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알아주면 고마워하고, 알아주지 못했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기대를 상대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바카라임을 지는 사람.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서로 다른 마음을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모든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