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말해도 안전한 사람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서로의 생각을 불편함 없이 주고받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며 맞장구를 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나 관심사, 생각이 비슷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과 진정으로 대화가 통하는 관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어느 정도 포장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상대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맞춰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서로에게 자신의 진짜 생각을 표현해야 할 상황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 갈등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서로의 차이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상대와 대화가 통한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시점은,
서로의 모습이 조금씩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드러나고, 감정이 상하거나 의견이 달라지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다.
좋을 때만 말이 잘 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마주했을 때에도 대화가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생각이 같은가'가 아니라, '생각이 다를 때 어떤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가'일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대화는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순간의 억양과 표정, 말투와 작은 표현 방법에 따라 상대에게 전혀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어떤 말은 존중으로 느껴지고, 어떤 말은 무시당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결국 대화에서는 무엇을 말하는가만큼 어떻게 말하고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과거 20~30년 전 드라마를 다시 보다 보면 온라인 게임이나 연인, 부부 사이의 대화에서 지금과는 다른 정서적 이질감이 느껴진다. 위계와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도 상대의 말을 쓸데없는 말인 듯 여기며 무시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 역시 자신의 생각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이어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말을 주고받고 있음에도 서로의 생각이 오가지 않고, 한 사람의 말만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닿아 있다. 결국 대화의 형식만 남고 이해하려는 과정은 사라진 상태일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해결바카라을 구하기 위해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함께 바라봐주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그 마음이 바라는 것은 때로 이런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게 걱정되는구나.”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이런 말은 당장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과 앞으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반대로 상대의 불안이나 걱정을
“쓸데없는 걱정”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지금 생각할 필요 없는 일”이라고 쉽게 판단해 버리면, 말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까지 하찮게 여겨진다고 느낄 수 있다.
상대가 불안해서 꺼낸 말을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평가하지 않는 것.
서운해서 꺼낸 말을 예민함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
걱정해서 꺼낸 말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라고 잘라내지 않는 것.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상대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거나, 그 의견에 반드시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그전에,
“네가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는 알겠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대화는 서로에게 건넨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첫 번째, 상대가 나에 대한 불만이나 서운한 감정을 이야기할 때,
상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집중해야 하며, 그 말을 하는 행위 자체를 지적하거나 서운해하며 문제 삼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에 대한 불만이나 서운함을 이야기했을 때
“그게 여태 불만이었던 거네.”라고 반응한다면 대화의 중심은 어느 순간 바뀐다.
원래 이야기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 서운했는가’였지만,
이제는
‘왜 지금까지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가’,
‘왜 그런 것을 나에게 말하는가’가 대화의 중심이 된다.
이렇게 대화의 초점이 상대가 불만을 표현한 행위 자체로 옮겨가면, 정작 처음에 이야기하려던 내용은 더 이상 다뤄지지 않는다.
상대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는 대신 자신이 불만을 말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듣는 사람 역시 그 불만을 받아들이기보다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결국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음에도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상대가 나에 대한 불만이나 서운한 감정을 이야기할 때,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를 살펴보기보다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이나 억울함을 꺼내 대화의 중심을 자신에게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 즉, 상대의 불만에 자신의 ‘억울함’으로 맞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에 대한 불만이나 서운함을 이야기했을 때
“나도 힘들었어.”
“나도 불만 있어.”
“너는 안 그랬어?”
“너만 그런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자신 역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힘들었던 감정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순간마다 자신의 억울함이나 힘들었던 일을 꺼내게 되면, 대화의 중심은 어느새 전하려던 감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대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서로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대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상대의 감정이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의 서운함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비난받는 것처럼 느끼고, 그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나도 힘들었다”거나
”너도 잘못한 것이 있다”라는 말로 자신의 억울함을 꺼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할 기회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도 놓치게 된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상대의 감정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상대가 무엇을 느꼈는지를 듣고, 그 이야기를 충분히 다룬 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도 상대의 말을 함부로 하찮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아주 작은 곳에서 드러난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한숨이나 비웃음으로 대답하지 않는 것,
상대의 감정을 곧바로 틀렸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
자신의 의도만 설명하며 상대가 받은 영향을 지워버리지 않는 것.
이런 작은 태도가 쌓이면 상대는 조금씩 알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내 생각을 말해도 괜찮구나.’
그 믿음이 생기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다.
반대로 반복해서 자신의 걱정이나 생각이 귀찮은 이야기처럼 취급되면 어느 순간부터 말을 줄이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다 몇 번의 경험이 쌓이면,
‘말해봤자 소용없겠지.’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
‘그냥 말하지 말자.’가 된다.
겉으로는 갈등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기능적인 대화는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
“몇 시에 와?”
“밥은?”
“이것 좀 사 와.”
생활에 필요한 대화는 아무 문제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불안과 생각, 서운함과 기대를 이야기하는 깊은 대화는 점점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내 곁에 둘 때는 이런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가.
내가 걱정을 이야기했을 때 쓸데없는 걱정으로 취급되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다른 생각을 말했을 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서운했다고 말했을 때 내 감정부터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이 사람 앞에서 나는 점점 더 솔직해지는가, 아니면 점점 말을 줄이게 되는가.
상대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보다 먼저,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대화가 통하는 관계는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기능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이가 아니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관계다.
내가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차이 속에서도 내가 나의 생각과 마음을 안전하게 꺼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말이 항상 옳다고 인정받고 싶어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아무렇게나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을 연다.
내 생각이 자신과 다르더라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막아버리지 않고, 내 마음을 안전하게 꺼내놓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좋을 때만 편안한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나의 마음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람.
결국 내가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마음을 안전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