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집밥의 다정한 온기

팔천칠백 번과 한 번 | 아빠가 차린 일요일 아침밥

byWren


일요일 새벽 다섯 시 이십 분에 눈이 떠졌다. 알람을 맞춰 둔 것도 아닌데 눈이 먼저 떠졌다. 수영장에 가는 날이었다면 바로 몸을 일으켰겠지만, 오늘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창밖은 아직 조용했다. 다시 잠드는 대신 글을 썼다. 쓰다 보니 여덟 시가 다 되어 있었고, 밖은 맑게 개어 있었다.

주말 아침은 여덟 시가 넘어서 셋이 함께 먹는다. 부엌에 나가 보니 아내가 재료를 꺼내 놓았다. 그걸 보다가, 오늘은 내가 해 보고 싶어졌다. 내가 만들고 싶은 모양대로.
은색 볼에는 당근과 브로콜리, 가지 같은 채소를 한데 담고 깨를 얹었다. 작은 그릇에는 삶은 달걀 두 알. 접시에는 복숭아와 아보카도, 방울토마토, 소고기를 모았고, 빵은 한 조각 따로 두었다.
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나 싶다가도 어딘가 비어 보였다. 접시를 이리저리 옮겨 보고, 음식의 자리를 조금씩 바꾸고, 빈 곳이 보이면 다시 채웠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평소에는 앉아서 받기만 하던 접시였다. 무엇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는 먹으면서 보는 것이었지, 놓기 전에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차려 보니 복숭아 한쪽을 어디에 둥지도 하나의 결정이었다. 아내도 매일 아침 이런 결정을 했을까. 아내가 매일 하는 일을 나는 오늘 하루 흉내 내고 있는 셈이었다.

식탁을 본 아내가 말했다.
"예쁘게 잘 됐네."
어깨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별것 아닌 칭찬인데 기분이 좋았다.
아들은 식탁에 앉아 한입 먹더니 말했다.
"맛있어."
그리고 한 번 더, 씩씩하게.
"진짜 맛있어."
나도 덩달아 힘이 났다. 아침 하나 차려 놓고 칭찬을 두 번 들었다.

먹는 동안 아내에게 오늘 뭐 할 거냐고 물었다.
"나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다음 주 연휴에 서울숲에 가자고 했다.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다고.
"그래."
대답은 바로 나왔다.

아내는 12년 동안 매일 아침과 저녁을 차렸다. 뭘 먹을지 생각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식탁을 차리고, 치우고. 저녁이 되면 처음부터 다시. 어림잡아 셈을 해 보면 팔천칠백 번이 넘는다. 오늘 아침 한 번을 차린 나는 그 숫자 앞에서 셈을 그만둔다.
그러니 휴일만큼은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늦게 일어나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된다. 그래도 된다. 하루쯤은 아무것도 차리지 않을 자유가 있어도 괜찮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쉬어."
아내는 별말 없이 웃었다.
오늘은 아들과 내가 나가서 놀다 올 생각이다. 집에는 아내가 쉴 하루만 남겨 두고.

식탁 위 접시가 거의 비었을 때, 아들이 마지막 한입을 넘기고 다시 말했다.
"아빠, 맛있었어."
팔천칠백 번 넘게 차려진 식탁 위에, 오늘 한 번을 내가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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