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CGV 건대점에 가기 전, 아내가 쪄 둔 밤으로 차린 아침밥
"계란만 삶아."
부엌에 들어서자 아내가 내린 주문이었다. 나는 냄비에 계란을 넣었다.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훑어보더니 주문을 하나 더 얹었다.
"아보카도랑 방울토마토, 배만 해서 간단하게 먹자."
메뉴 회의는 거기서 끝났다. 소고기도, 빵도, 어제 은색 볼을 채웠던 채소도 이번엔 명단에서 빠졌다.
개천절이 토요일에 걸리는 바람에 생긴 대체휴일, 흐린 월요일이었다. 월요일마다 가는 핀수영 수업도 수영장 휴관으로 건너뛰었다. 덕분에 아침 시간이 넉넉했다. 그 넉넉한 시간에 냄비 앞에 선 사람은? 아빠인 나다. 토요일부터 세 번째다.
간단하게 먹자는 데에는 속셈이 있었다.
"오늘은 많이 먹지 마."
"영화 때문에?"
"응. 팝콘 먹어야지."
오늘 아들과 나는 영화 〈암살자〉를 보러 간다. 극장에선 팝콘에 음료까지 따라올 테니, 아침부터 배를 꽉 채우지 말라는 얘기였다. 아내의 메뉴판에는 이미 팝콘이 적혀 있었다. 식탁 위 접시만 보고 짠 메뉴가 아니라, 조금 뒤 극장 의자에 앉아 있을 우리까지 내다보고 짠 메뉴였다.
오늘 가는 극장은 CGV 건대점이다. 아들이 일곱 살 때부터 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닌 곳이다. 그 극장이 10월 18일까지만 문을 연다. 오늘로부터 열사흘 남았다.
일곱 살 아이가 5학년이 되는 동안, 그 극장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아이는 자라고 영화는 바뀌었는데, 극장만은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극장이 먼저 자리를 비운다. 10월 18일이 지나면 그곳은 지도에서 내려와, 나와 아들의 기억 속으로 주소를 옮긴다. 갈 수 있는 곳이 하나 줄고, 떠올릴 수 있는 곳이 하나 는다.
그때 아내가 냉동실 문을 열었다.
"아, 맞다."
뭔가 떠오른 얼굴이었다. 지인에게 받은 밤을 쪄서 얼려 둔 게 있다고 했다. 데워서 같이 먹으면 되겠다고.
계란만 삶으라던 주문서에 밤 한 줄이 추가됐다.
얼어 있던 밤을 데웠다. 계란 두 알, 아보카도, 방울토마토, 배. 가짓수는 사흘 중 가장 적었는데, 밤을 담은 그릇만큼은 수북했다. 그중 하나를 집었다. 따뜻했다. 껍질을 까자 노란 속살이 나왔다. 언젠가 아내가 쪄서 냉동실에 넣어 둔 밤이, 오늘 아침 내 손에서 다시 따뜻했다.
따져 보니 사흘 내내 이랬다. 토요일엔 전날 끓여 둔 토마토 야채수프가 있었고, 일요일엔 미리 꺼내 둔 재료가 있었고, 오늘은 얼려 둔 밤이 있었다.
사흘 동안 부엌에 선 건 나였지만, 내가 들어가기 전 그 부엌에는 매번 아내의 손이 먼저 다녀가 있었다. 이어달리기로 치면 나는 마지막 주자였다. 바통은 늘 아내가 먼저 쥐고 출발했다.
아내는 이번 영화에 함께 가지 않는다. 못 간다는 쪽이 정확하다. 공황이 찾아온 뒤로 아내에게는 피해 가야 할 곳이 늘었다. 버스와 지하철, 큰 다리. 극장 문턱도 그 목록에 올라 있다.
아내에게 극장은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 되었고, 열사흘 뒤면 아들과 나에게 그 극장은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된다.
우리가 불 꺼진 상영관에서 팝콘을 집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밀린 집안일을 붙잡는다. 다른 사람들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아내에게는 빨래와 설거지를 몰아서 해치우는 시간이다.
어제 아내의 하루는 쉼이었다. 오늘 아내의 하루는 빈집과 밀린 일이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내 앞에서는 영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었다. 아내에게는 아내의 하루가, 우리에게는 우리의 하루가 있다. 각자의 하루가 끝나면 같은 현관으로 돌아온다.
아침이 끝나 갈 즈음, 아들이 먼저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아껴 두던 그 이야기를 결국 아들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식탁에는 깨진 계란 껍데기와 밤 껍데기 몇 개가 남았다. 아보카도와 방울토마토, 배도 조금씩 줄어 있었다. 아내가 주문한 대로, 아침은 가볍게 끝났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집 안에 있었다.
"다녀올게."
문을 닫고 나섰다. 팝콘을 위해 비워 둔 배 속에는, 아내가 쪄 둔 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그 배를 안고, 문 닫을 날을 받아 둔 극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