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선사시대 미술
그림은 배를 채워주지 않는다.
추위를 막아주지도 않는다.
맹수에게서 인간을 지켜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그렸다.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벅찼을 사람들이 동굴 벽에 선을 남기고, 돌을 긁고, 색을 칠했다.
나는 동굴벽화 사진을 볼 때마다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왜 그렸을까.
지금이라면 작가에게 물어볼 수 있다.
왜 이 그림을 그렸습니까.
무엇을 말하고 싶었습니까.
하지만 선사시대 그림에는 대답이 없다.
작가의 이름도 없다.
제목도 없다.
설명도 없다.
우리는 그림은 볼 수 있지만 해설서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선사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일은 오래된 사건의 흔적을 추적하는 일과 닮았다.
무엇을 그렸는지.
어디에 남겼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무엇이 반복해서 등장하는지.
남아 있는 단서를 하나씩 살피며 그들의 삶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아주 오래전 인간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예술이었을까.
기억이었을까.
기록이었을까.
아니면 생각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을까.
수만 년 전에는 우리 현생인류만 세상에 살았던 것도 아니다.
네안데르탈인도 있었고, 데니소바인도 있었다.
서로 다른 인간 집단은 실제로 만났고 유전자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다면 처음 만난 그들은 어떻게 뜻을 나누었을까.
여기서부터는 나의 상상이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땅에 선을 긋는다.
동물 하나를 그린다.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킨다.
말은 달라도 그림은 볼 수 있다.
물론 선사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의사소통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을 상상하다 보면 그림이 가졌을지도 모르는 오래된 힘 하나가 떠오른다.
그림은 보여주는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말은 사라진다.
입 밖으로 나온 순간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선은 남는다.
다시 볼 수 있다.
기억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무언가를 전달하고,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그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동굴벽화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사냥의 성공을 빌기 위해서였을까.
어떤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였을까.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서였을까.
죽은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우리는 아직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선사시대 그림 앞에서는 답보다 질문이 먼저 와야 한다.
이 바카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내가 떠올린 상상을 가능한 한 구분하며 그 오래된 흔적을 따라가 보려 한다.
내가 찾아갈 것은 세 장면이다.
동굴 속의 동물.
벽에 남겨진 손.
그리고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
나는 그 그림들을 통해 미술의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이 무엇을 바라보기 시작했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어 했는지.
무엇을 남기고 싶어 했는지.
그것을 보고 싶다.
어쩌면 미술의 역사는 잘 그리는 기술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술의 시작에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인간은 무엇을 그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