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전통과자에서 만난 천 년의 시간과 공동체의 기억
과자는 입안에서 금세 사라진다. 바삭한 소리도, 조청의 은은한 단맛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과자는 한 시대를 품고 있다. 한과 한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쌀과 콩, 깨와 조청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잔칫날 분주했던 부엌, 음식을 나르던 사람들, 시장 골목의 과자점, 정성껏 고임상을 쌓던 손길, 기쁜 날을 함께 축하하던 이웃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2026년 7월 10일, 진주문화연구소 제2차 학술사랑방에서 남성진 전임연구원의 「진주 전통과자의 역사성과 무형유산적 가치」 강연을 들었다. 자료 속 수많은 과자를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가 전통과자를 지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지키는 일일까?
음식은 삶과 가장 가까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기록에서는 쉽게 사라진다. 큰 사건과 이름난 인물은 역사바카라에 남지만, 어느 집에서 어떤 과자를 만들었는지, 혼례를 앞두고 누가 찹쌀을 불렸는지, 어느 시장 골목에서 엿 냄새가 났는지는 좀처럼 기록되지 않는다.
근대 이후 진주의 옛 생활문화와 음식 제조 관련 기록도 많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전통과자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남아 있는 문헌만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인의 기억을 듣고, 오래된 사진을 살피고, 과자점의 위치와 시장의 유통망을 추적하며 흩어진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야 한다.
그 과정은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니다. 사라진 사람들의 생활과 감각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1913년 객사 앞 진주 장날의 사진, 1960년대 초 과자점이 모여 있던 골목, 진주의 옛 요릿집과 중앙시장 주변의 생산·유통 지도는 전통과자가 박물관 진열장 안에만 있었던 음식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시장에서 만들어지고, 골목을 지나 이동하고, 잔칫상과 제례상에 올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었던 살아 있는 음식이었다.
진주는 지리산과 남해안이 만나는 길목에 자리한다. 풍부한 곡물과 깨, 콩, 과실과 산물이 모였고,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재료와 사람이 활발하게 오갔다.
관아가 있던 도시였기에 연회와 의례 문화도 발달했고, 종가와 향교, 사찰과 민가의 음식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진주의 전통과자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재료가 풍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관아의 연회 음식, 종가의 내림음식, 종교 의례의 음식, 시장에서 판매되던 대중적 기호식품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진주 잔치과자’라 부르는 음식은 어느 한 계층이나 한 가문의 전유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역슬롯 전체가 함께 만들고 변화시킨 문화적 결과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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