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엄마가 된다는 건

아빠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일

by바람따라들레

오늘따라 아이들 아빠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해외 이주를 결심하고 아이들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들어온 뒤, 나는 종종 ‘기러기 엄마의 무게’라는 말을 몸으로 실감한다.


새로운 나라에서 길을 익히고, 장을 보고, 학교와 행정 절차를 해결하며 하루를 버티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순간은 아이들 마음속에서 아빠가 빠져나간 자리를 매일같이 확인해야 할 때다.


아이들은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쉽게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그리움을 드러낸다.

아침이면 옷장 깊숙이 넣어둔 아빠 옷을 꺼내 한참 동안 냄새를 맡으며 끌어안고 앉아 있다. 마치 그 안에 남아 있을 온기를 찾기라도 하듯 조용히, 오래도록 품에 안고 있다.


밤에는 아빠 티셔츠를 입고 잠자리에 들며 말한다.

“이렇게 자면 아빠가 안아주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웃어 보이지만, 가슴 한편이 저릿하게 내려앉는다.


어느 날은 소파에 엎드려 얼굴을 깊이 파묻은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빠가 보고 싶어…”

나에게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되묻지 않았다. 모른 척 지나갔다.

아이의 그리움을 굳이 끄집어내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모른 척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날 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기러기 엄마로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남편의 빈자리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홉 살 둘째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나는 비행기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어?”

어느 나라에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지, 비행기 회사는 어디가 유명한지, 심지어 시간당 얼마를 버는지까지 묻는다. 너무 구체적이라 오히려 놀라웠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비행기 만들어서 아빠 생일 선물로 줄 거야. 그래야 아빠가 언제든지 날아올 수 있잖아.”

그 한마디에 아이 마음속에 담긴 감정이 단번에 전해졌다.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 그리고 우리는 여기 남아 있을 테니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날아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아이는 아직 미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대학을 어떻게 가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하버드에 가겠다고 말한다. 아빠가 힘들게 우리를 여기까지 보내 공부하게 해 줬으니, 그 노력에 보답하고 싶다는 것이다.


군인인 아빠는 국내 이동조차 자유롭지 않다. 하루 휴가를 내는 일도 쉽지 않은데, 아이들 얼굴을 보러 쿠알라룸푸르까지 날아오는 일은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 그래서 아이는 스스로 해결바카라을 찾는 것 같았다. 아빠가 오지 못한다면, 내가 길을 만들겠다고.

가끔은 정말 개인 비행기 한 대쯤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이 거리도, 이 시간이 조금은 덜 잔인해질까.


십 년 넘게 함께 산 아내인 나보다 어쩌면 딸아이가 아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딸은 나보다 먼저 아빠의 마음을 읽어버린 것 같다.


기러기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지 혼자서 아이들을 바카라임지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 안에서 자라는 그리움을 마주하고,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그리움 속에서 더 단단해지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등을 토닥이며 생각한다.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라는 사실만은 흔들리지 않기를.
이 시간 끝에,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우리가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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