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방인이 아닌 해방인으로

by바람따라들레

불안해서 떠났다.

더 나은 환경, 더 자유로운 교육, 아이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주고 싶어서. 남들 다 가는 길 말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길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믿음 반,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두려움 반으로,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더 불안해졌다.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불편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해결하던 것들이 여기선 하나하나가 숙제였다. 그리고 남편과 떨어져 지낸다는 사실은,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완전체였던 우리 가족이, 어딘가 한 조각이 빠진 채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나를 무너뜨렸다. 아이는 씩씩하게 학교에 가고, 나는 그 빈자리를 메우려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늘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한국을 떠나면 조금은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경쟁에서 벗어나고, 비교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자, 이번엔 기준이 사라졌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없었다.




국제학교에 대해 알아갈수록, 오히려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교과서가 없다. 아이들은 프린트물을 공바카라에 붙여가며 공부를 한다. 그마저도 집으로 가져오지 못한다. 무엇을 배우는지,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아이의 말과,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로 학교를 짐작할 뿐이다.


나는 지금 아이를 어디에 맡겨두고 있는 걸까.


국제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영어만은 아니었다. 인터내셔널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넓은 시야를 가진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중국계와 한국인의 비중이 생각보다 컸고, 다양한 축제와 행사를 기대했지만 특정 문화에 치우친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예체능 경험도 내가 그렸던 것보다 제한적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성비를 따져 이 학교를 선택했기 때문일까.


국제학교는 학비에 따라 1티어, 2티어, 3티어로 나뉜다고들 한다. 그래서 더 좋은 학교로 갔더라면 이런 아쉬움이 덜했을까. 그런데 1티어 학교에 다니다가 온 학부모의 말은 의외로 다들 비슷했다. 비싼 학비를 내는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기만 하는 것 같다고.


결국,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완벽한 학교는 없다는 말이었다.




더 많은 비용을 내면 더 좋은 환경을, 더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준 없이 따라가기 시작하면, 어디에 있든 불만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머리로는 알지만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차라리 캐나다나 호주 같은 영미권으로 갔어야 했던걸까...


나는 지금 이곳에 있으면서도, 이곳에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자꾸 다른 선택지 위를 떠다닌다. 아직 이곳을 충분히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이 학교를 평가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나는 왜 이렇게 조급할까.


난 이 실체를 들여다 보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가족이 떨어져 감수한 이 시간은 분명 의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 무언가를 더 얻어가야 한다는, 더 잘 선택했어야 한다는, 나의 욕심과 두려움이 뒤엉켜 나를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돌게 했다.


이미 많은 것을 쥐고 있으면서도, 놓지도 못하고 더 잡지도 못하는 상태. 그 사이에서 나는 또다시 흔들린다.


아이가 잠든 뒤 혼자 거실에 앉아 고요한 창밖을 바라본다.


낯선 도시의 밤공기는 한국의 밤보다 무거웠다. 멀리서 가끔씩 차 소리만 들렸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다시 생각에 시동을 걸었다. 불안과 걱정이라는 익숙한 길로 다시 들어서려는 순간,

내가 쥔 핸들을 내 안에서 바깥으로 꺾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보인다.



나는 지금 한국이 아닌 낯선 땅 위에 서 있다. 말레이, 인도, 중국계 등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풍경 속에서 이 나라의 공기를 호흡하며 이곳의 시간을 살아가는 중이다. 흔치 않은 인생의 변화 앞에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았던가. 아이의 학교 담장 너머를 들여다보느라, 정작 내가 발 딛고 선 이 나라의 진짜 얼굴은 놓치고 살았다. 말레이시아는 대체 어떤 나라인지, 이 이국적인 골목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속도로 삶을 일구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이상 떠도는 이방인이 아닌 해방인으로 살자' 며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한국 특유의 속도전과 끊임없는 비교, 쉴 새 없이 울려대던 스팸 문자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지금.

이곳의 규범에도, 한국의 압박에도 묶여 있지 않은 채 오롯이 나의 자유의지로 하루의 첫 페이지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 그게 지금의 나다. 하지만 나는 이 값진 해방감을 여전히 낯설어하며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이 다채로운 인종과 문화의 틈바구니로 직접 걸어 들어가 보려 한다. 샅샅이 경험하고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교육이 아닐까?

이것은 아이에게만 국한된 성장이 아니다. 부모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점이 될 이 순간들을, 나는 이제 기꺼이 받아드리며 소중하게 맞이하고자 한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불안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 이곳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불안한 거라고. 마음이 자꾸 다른 곳을 향해 달아나기 때문에, 지금 여기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거라고.

Here & Now. 지금, 여기.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 개념은 단순히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순간과 이 장소를 온전히 살아내라는 말이다. 이방인처럼 겉돌지 말고, 해방인으로서 이 자유를 깊이 들이마시며, 지금 이 순간을 내 것으로 살아내는 것. 그게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선택이었다.

창밖의 밤은 여전히 낯설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낯섦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조금 더 머물러보기로 했다. 이방인이 아닌 해방인으로서,


지금, 여기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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