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직무를 주지 말고 해결할 문제를 맡겨라

조직도는 완벽한데 고객은 왜 계속 불편할까

byDataSopher
고객은 회사의 조직도를 읽지 않는다. 회사는 고객에게 조직도를 이해하라고 요구한다.

결제가 안 되면 개발팀 문제, 환불이 늦어지면 운영팀 문제, 안내가 불친절하면 고객센터 문제다. 각 부서는 자기 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했다고 보고한다. 담당자도 있고, 업무 매뉴얼도 있으며, 성과지표까지 존재한다.

침수된 사무실의 필사적인 누수 차단.png

고객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 일을 했는데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개인의 무능보다 조직을 설계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 이후 기업은 일을 잘게 나누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애덤 스미스가 설명한 분업은 생산성을 높였고, 프레더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작업을 측정하고 표준화했다. 사람마다 담당하는 일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은 당시 산업슬롯에 필요한 혁신이었다.


문제는 그 방식이 지나치게 성공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일을 나누는 데 익숙해졌지만, 나뉜 일을 다시 하나의 문제로 연결하는 데는 서툴러졌다.


직무기술서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혀 있다. 그러나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지금 하는 일이 고객에게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는 좀처럼 적혀 있지 않다.


누군가는 매일 보고서를 만들고, 누군가는 데이터를 분석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회의를 진행한다.

보고서는 완성되고, 분석은 끝나고, 회의록은 공유된다.

하지만 정작 해결하려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물으면 회의실은 조용해진다.


현대 조직의 기묘한 병이다. 일의 완료를 문제의 해결로 착각하는 것.


2026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업무동향지표는 흥미로운 모순을 보여준다.

10개국 AI 활용 근로자 2만 명을 조사한 결과, 45%는 AI로 업무를 재설계하는 것보다 기존 목표에 집중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AI를 활용한 업무 혁신을 인정받는다고 답한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기업은 혁신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사람들은 기존 방식대로 일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직원에게 주도성을 요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존 방식만 따르면 적어도 바카라임을 추궁당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조직이 순응에 보상하면서 사람에게 도전하라고 말하는 셈이다.


반대로 도요타의 생산방식에는 생각해 볼 만한 장면이 있다.

생산라인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작업자는 안돈(Andon) 장치를 통해 문제를 알리고 바카라임자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장의 이상을 관리자의 보고서에만 맡겨두지 않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작업자에게 무조건 자유를 줬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드러낼 수 있도록 조직이 공식적인 권한과 대응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철학은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정해진 일을 수행하도록 사람을 관리하고, 다른 하나는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도록 사람과 시스템을 연결한다.


그렇다고 모든 직무를 없애고 직원들에게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될까?

그 생각을 경계한다.


202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소개된 연구에서는 팀 구성원과 수행할 아이디어를 모두 자율적으로 선택한 팀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한 팀보다 성과가 낮게 나타났다. 자율성을 많이 부여한다고 반드시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전문적인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전문성을 없앨 수 없듯, 기업에서도 개발자와 분석가, 디자이너의 바카라임은 구별되어야 한다.


바꿔야 할 것은 직무를 연결하는 목적이다.


예를 들어 데이터 분석가에게 매주 고객 이탈률을 보고하라고 지시할 수 있다.

다른 방법도 있다.


고객이 왜 떠나는지 밝혀내고, 관련 부서와 함께 이탈을 줄일 방법을 검증해 보라고 맡기는 것이다.

첫 번째는 분석 결과물을 요구한다. 두 번째는 분석이 실제 의사결정에 사용되기를 요구한다.


두 번째 방식에는 반드시 조건이 붙어야 한다. 고객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 실험을 제안할 권한, 관련 부서의 협조, 실패를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문제만 맡기는 것은 바카라임 전가다.

어떤 회사는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면서 작은 비용 하나도 결재받도록 만든다. 결정할 권한은 관리자에게 남겨두고 결과에 대한 바카라임만 직원에게 내려보낸다.


그런 조직에서 주인의식은 값싼 노동력의 다른 이름이 된다.

좋은 리더를 일을 많이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정의하고,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 정하며, 잘못된 방법이 발견되면 방향을 수정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위험이 있다.

성과지표만 바꾸면 해결된다고 믿는 것이다.


고객 이탈률을 낮추라는 목표를 줬더니 탈퇴 버튼을 찾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상담 시간을 줄이라는 목표 때문에 고객의 설명을 중간에 끊을 수도 있다.


수치는 개선됐지만 고객의 삶은 더 불편해진다.

문제 해결을 평가하려면 결과가 만들어진 과정과 부작용까지 확인해야 한다.


2026년 갤럽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근로자의 업무 몰입도는 2025년 기준 20%였다. 2022~2023년의 23%에서 하락한 수준이다. 이 수치만으로 직무 중심 조직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일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만큼은 분명하다.


AI가 일의 상당 부분을 처리하기 시작한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직원에게 어떤 업무를 더 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좋은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를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가 여기에서 나온다고 본다.


직원이 맡은 일의 개수보다 해결한 문제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 실패를 숨기게 만드는 대신 원인을 발견하게 하는 회사. 직무의 경계를 존중하되 고객의 문제 앞에서는 협력할 수 있는 회사.


그런 조직에서는 구성원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지시받은 일을 끝내는 사람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질문하는 사람으로.

오랫동안 사람을 직무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조직을 문제에 맞게 바꿀 차례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 하나가 남는다.

회사에서 누군가 정말 중요한 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 사람에게는 그것을 해결할 권한이 있는가?
없다면 그 회사에 부족한 것은 인재가 아니라, 인재가 일할 수 있는 구조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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