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지 못하는 회사는 왜 늘 바쁠까
회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은 ‘진행 중’이라는 말이다.
지난해 시작한 조직문화 개선은 올해도 진행 중이다.
고객 경험 혁신은 담당자가 세 번 바뀌었는데 여전히 추진 중이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는 대시보드만 늘어났을 뿐 무엇을 결정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두 열심히 일한다.
회의는 빼곡하고 보고서는 정교하다. 달력에는 빈칸이 없다. 성과를 물으면 지난달에 무엇을 했는지부터 설명한다.
많은 일 가운데 도대체 무엇이 끝났습니까?
끝내지 못하는 조직은 게으른 조직이 아니다. 부지런함을 관리하는 데 지나치게 능숙한 조직이다.
202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업무 분석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직원의 48%는 업무가 혼란스럽고 파편화되어 있다고 답했다. 알림이 특히 많은 일부 사용자 집단에서는 회의와 이메일, 메시지로 인한 개입이 약 2분 간격으로 나타났다.
기술은 시간을 절약해 준다는데 왜 일할 시간은 점점 사라질까.
문제는 업무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시작하는 기술은 배웠지만 끝내는 기술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신규 프로젝트, 전사 혁신, AI 도입, 조직문화 고도화. 거창한 이름은 예산을 얻고 조직도를 바꾼다.
하지만 기존 프로젝트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왜 중단합니까? 아직 개선할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해보면 안 됩니까?
결국 아무도 끝내지 않는다.
시작은 의지를 증명하지만 종료는 판단력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떠오른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구분하면서 반복되는 생존의 노동과 지속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의 차이를 설명했다.
오늘날 사무실에 가져오고 싶다.
메일을 처리하면 새로운 메일이 온다. 보고서를 작성하면 다음 보고서가 기다린다. 회의를 마치면 회의 결과를 공유하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반복되는 활동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반복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일은 계속했는데 남은 것이 없는 상태.
현대 조직의 가장 비싼 낭비다.
심리학 연구도 흥미롭다. 2026년 발표된 미완료 업무에 관한 메타분석은 끝나지 않은 과제가 퇴근 후에도 업무를 계속 생각하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생각해 볼 만하다.
퇴근했는데도 머릿속에서 계속 일하는 사람이 반드시 바카라임감이 강한 사람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끝낼 수 있도록 설계된 일이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AI 시대에는 이 문제가 교묘해진다.
생성형 AI로 기획서 초안을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다. 분석 코드는 빨라지고 보고서 제작 시간도 줄어든다. 실제로 2025년 발표된 고객지원 업무 연구에서는 AI 지원을 받은 직원들의 시간당 문제 해결 생산성이 평균 15% 증가했다.
놓치기 쉬운 질문이 있다.
빨라진 만큼 일이 끝났는가, 새로운 일을 더 많이 시작했는가.
AI가 문서를 만드는 시간을 줄였더니 관리자는 문서를 세 개 더 요구한다. 분석 속도가 빨라지자 검토해야 할 지표가 늘어난다. 자동화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새로운 자동화 프로젝트를 착수한다.
효율화가 여유를 만들지 못하고 새로운 업무 수요를 만들어내는 역설이다.
기술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끝을 설계하지 않은 조직에 기술을 공급하면 미완성 업무를 더 빠르게 생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조직의 목표를 다른 방식으로 작성해야 한다.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가 아니라 ‘이번 분기에 반복 문의가 가장 많은 세 가지 문제를 찾아 개선하고, 적용 전후의 문의율을 비교해 결과를 확정한다’로 바꾸는 것이다.
‘데이터 문화를 정착시킨다’가 아니라 ‘이번 달에는 한 가지 핵심 의사결정에 필요한 지표와 판단 기준을 합의하고 실제 결정에 사용한 뒤 검토한다’로 바꾸는 것이다.
두 문장의 차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앞의 문장에는 끝이 없다.
뒤의 문장에는 검증 가능한 마침표가 있다.
모든 일을 잘게 쪼개라는 뜻은 아니다. 잘게 나뉜 업무가 실제 가치를 만들지 못하면 사람은 하루 종일 완료 버튼만 누르는 노동자가 된다.
중요한 건 완료된 일이 누구에게 어떤 변화를 남겼는가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이를 위해 '완료의 정의(Definition of Done)'를 합의한다. 정해진 품질과 검증 기준을 충족해야 완료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개발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회의를 열었다면 무엇을 결정했는지 남겨야 한다. 실험을 했다면 실패를 확정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를 종료했다면 이후 유지할 사람과 바카라임의 경계까지 정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이 있다.
완료를 선언할 권한이다.
상사가 마음대로 새로운 요구를 추가할 수 있고, 실패한 실험조차 체면 때문에 종료하지 못한다면 완료 기준은 종이 위의 장식에 불과하다.
좋은 리더는 더 많은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끝난 일과 끝내야 할 일, 이제 그만둘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조직의 생산성을 볼 때 완료한 업무의 숫자만 세고 싶지는 않다.
고객에게 실제로 전달된 가치가 무엇인지, 중단해야 할 일을 얼마나 정직하게 중단했는지, 완료 이후에도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보고 싶다.
끝낸다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충분히 검증했고, 지금은 여기까지가 최선이며, 다음 판단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는 바카라임 있는 결정이다.
우리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자기계발도, 커리어도, 관계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져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무엇 하나 끝냈다고 느끼지 못하는 인생에서 성장의 감각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모든 문제가 영원히 해결될 수는 없다. 모든 일이 완벽하게 끝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오늘 하나쯤은 분명하게 끝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새로운 목표가 아니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하루다.
“이 일은 여기까지 해냈습니다.”
그 말을 허락하지 않는 조직이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요구한다면, 먼저 조직의 바카라임부터 묻고 싶다.
끝낼 수 없는 일을 주면서 어떻게 성취감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