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보고를 위한 일이 실제 일을 삼킨다

회사는 왜 문제를 잘 정리하는 사람을 먼저 알아볼까

byDataSopher

회사는 오늘도 열심히 일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내일로 미뤄졌다.


오전에는 주간 업무회의가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회의 결과를 정리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오전에 제출한 자료에 숫자를 추가하라는 요청이 왔다. 오후에는 임원 보고용으로 같은 내용을 다시 작성했다. 이번에는 표 대신 그래프를 넣어야 했다.


퇴근 무렵, 팀장이 물었다.

"그래서 그 문제는 해결됐어요?"

아직이다.

서류 파도에 잠긴 직장인.png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종일 회의하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많은 조직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런 장면에서 개인의 업무 능력보다 조직이 무엇을 일이라고 인정하는지 먼저 묻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일을 하는 것과 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됐을까.

마이크로소프트의 2023년 업무동향지표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365 사용자의 해당 앱 내 업무시간 중 평균 57%가 회의·이메일·채팅 등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됐다. 문서와 스프레드시트 등을 작성하는 활동은 43%였다.


의사소통이 모두 낭비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수치는 모든 업무시간을 측정한 결과도 아니다. 하지만 일이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조정 활동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아사나가 2023년 발표한 조사에서도 6개국 지식근로자 9615명은 업무시간의 58%를 업무 조율과 정보 탐색 등 이른바 '일에 관한 일(Work about Work)'에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이 역시 보고서 작성만을 측정한 수치는 아니다. 두 자료가 던지는 질문은 비슷하다.

우리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소통하는 걸까, 소통하기 위해 일을 만들어내는 걸까.

문제는 보고 자체에 있지 않다.


회계 담당자가 숫자를 검증하고, 의사가 진료기록을 남기며, 제조업 현장에서 안전점검표를 작성하는 일은 필요하다. 기록은 바카라임을 명확히 하고 사고를 예방하며 조직이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도록 돕는다.



그러나 보고가 의사결정과 분리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령 고객 불만이 증가했다고 생각해 보자.


담당자는 불만 발생 원인을 분석한다. 그 결과를 팀장에게 보고한다. 팀장은 본부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자료를 다시 가공한다. 본부장은 임원회의용으로 요약한다.


보고서가 네 번 만들어지는 동안 정작 고객에게 돌아간 답변은 한 번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정보가 위로 올라갈수록 보고서의 완성도는 높아지지만, 문제가 발생한 현장의 맥락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이 왜 화났는지보다 불만 접수 건수가 중요해지고,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보다 전월 대비 증감률이 중요해진다.


문제는 살아 있는 경험이었는데, 보고는 그것을 정돈된 숫자로 바꾼다.

숫자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숫자만 남았을 때가 위험하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표를 볼 때마다 한 가지를 경계한다. 측정하기 쉬운 것이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국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이름에서 유래한 '굿하트의 법칙'도 같은 문제를 설명한다. 어떤 지표가 관리 목표가 되면, 사람들이 그 지표에 맞춰 행동하면서 원래 측정하려던 현실과 숫자 사이의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 불만을 줄이라는 목표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불만 접수 건수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어떨까.


보고서에는 개선이라고 적히겠지만 고객은 여전히 불편할 수 있다.

이런 조직에서는 역전이 발생한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보고가 늦어진 사람은 관리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문제는 그대로지만 보고서를 완벽하게 제출한 사람은 체계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모든 회사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평가와 보상이 실제 성과보다 보고의 충실성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당연히 보고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인간은 자신이 보상받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왜 조직은 이런 구조를 쉽게 바꾸지 못할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불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래서 보고를 받는다. 보고를 많이 받으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정보의 양과 이해의 깊이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에 보고서 열 장을 받아도 현장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모를 수 있고, 담당자와 십 분만 제대로 이야기해도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보고가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될 때 조직은 점점 더 많은 자료를 요구한다. 자료가 많아질수록 읽는 사람의 부담도 커진다.


결국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보고서를 누군가는 밤늦게까지 작성한다.

더 기묘한 상황은 AI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과거에는 보고서 작성에 두 시간이 걸렸다면, 이제 생성형 AI를 활용해 훨씬 빠르게 초안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남는 시간이 실제 업무에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보고서 하나를 만들던 조직이 다섯 개를 요구할 수도 있다.

AI가 보고서를 만들고, 다른 AI가 이를 요약한다. 담당자는 AI가 정리한 문장을 검토하고, 관리자는 다시 AI에게 핵심을 추출해 달라고 요청한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조직 안에는 완벽하게 정리된 문서만 계속 쌓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6년 업무동향지표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AI의 업무 효과에 대한 설문 기반 분석에서 조직문화와 관리자 지원 등 조직적 요인의 상대적 중요도가 개인적 요인보다 약 두 배 높게 나타났다. 자기보고 자료에서 발견한 통계적 연관성이며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조직의 운영방식이 그대로라면, 생산성 향상이 실제 가치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나는 여기서 보고를 없애자는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다.

오히려 보고가 제 역할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이 보고를 통해 무엇을 결정할 것인지 묻는 것이다. 지난주와 달라진 것이 없다면 왜 다시 작성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이미 시스템에 기록된 숫자를 사람이 엑셀로 옮기고, 다시 파워포인트로 꾸미는 과정부터 없애볼 수 있다.

무엇보다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실제로 어떤 의사결정이 달라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두 주 동안 정기보고 하나를 없애보고, 절약된 시간과 업무 오류, 의사결정 지연 여부를 함께 측정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보고가 줄었는데 문제가 늘어나지 않고 고객 대응이 빨라졌다면, 그 보고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할 근거가 생긴다.


반대로 중요한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 보고는 필요한 통제장치였을 것이다.

좋은 조직은 기록이 없는 조직이 아니다. 기록이 행동을 바꾸는 조직이다.



나는 보고서를 잘 만드는 능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복잡한 문제를 짧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은 분명 전문성이다.

전문성이 실제 문제 해결보다 더 높은 보상을 받기 시작한다면 조직은 조금씩 방향을 잃는다.


고객은 멋진 보고서를 사지 않는다. 자신이 겪는 불편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동료 역시 내가 몇 장의 슬라이드를 만들었는지보다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수월해졌는지를 기억한다.


우리는 보고하기 위해 채용된 사람이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음 회의에서 누군가 "보고서는 언제 완성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다른 질문도 함께 듣고 싶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완성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다면,

가장 먼저 중단해야 할 일이 보고서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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