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이 있다.
“제가 한 건 맞는데 결정한 건 아닙니다.”
보고서는 내가 만들었다.
데이터는 다른 팀이 줬다.
초안은 AI가 썼다.
방향은 팀장이 정했다.
최종 승인은 임원이 했다.
그런데 결과가 틀렸다.
이제 묻는다.
이 일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아무도 아니다.
나는 요즘 일을 하면서 역설을 자주 느낀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협업도구를 가지고 있다. 슬랙으로 이야기하고 노션에 기록하고 대시보드로 숫자를 보고 AI에게 조사와 분석과 문서 작성까지 맡긴다.
일의 흔적은 어느 시대보다 많이 남는다.
정작 “이 문제는 제 문제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노동을 잘게 쪼갰다. 한 사람이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 대신 누군가는 가죽을 자르고, 밑창을 붙이고, 검수했다.
디지털 조직은 한 번 더 쪼갰다.
기획자는 요구사항을 쓰고 개발자는 구현하고 데이터팀은 측정하고 마케팅팀은 유입시키고 CS팀은 고객 불만을 받는다.
AI는 마지막 칼집을 내고 있다.
생각하는 과정마저 조각내기 시작했다.
자료조사는 AI가 한다.
회의록도 AI가 쓴다.
메일도 AI가 정리한다.
코드도 AI가 만든다.
다음 액션까지 에이전트가 추천한다.
Microsoft의 2026 Work Trend Index를 보면 Microsoft 365 생태계의 활성 AI 에이전트 수는 1년 사이 15배 증가했다. 동시에 조사 대상 AI 사용자 가운데 조직의 AI 방향에 리더십이 명확하게 정렬돼 있다고 답한 사람은 26%에 불과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문화·관리자 지원·인재 제도 같은 조직 요인이 AI 효과와 연결되는 정도가 개인 요인보다 두 배 이상 컸다.
한국에서도 비슷하다. 2026년 Microsoft 조사에서 한국 응답자의 82%는 AI 결과물의 최종 바카라임이 인간에게 있다고 답했다. 말로는 모두 인간이 바카라임진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현실의 업무 흐름에서 그 인간이 정확히 누구인지 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진짜 위험을 본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바카라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편리해지는 것이다.
2026년 Journal of Business Research에 실린 연구는 꽤 불편한 결과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여러 실험에서 사람들이 정답이 없는 어려운 결정을 마주할수록 AI에 판단을 넘기려는 경향이 커지고, 그 배경에 바카라임을 피하려는 동기가 있음을 관찰했다. 특히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거나 공개적으로 평가될 때 이런 성향은 더 강하게 나타났다.
우리는 AI에게 답만 맡기는 것이 아니다.
찜찜함까지 맡기고 있는 것이다.
“AI 분석 결과입니다.”
강력하다.
내 판단이라고 말하면 공격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델의 결과라고 말하면 한 발 떨어질 수 있다.
추천 알고리즘이 골랐습니다.
데이터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처리됐습니다.
모두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라는 이유로 바카라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Nature에 발표된 2025년 연구에서도 인간이 기계에 업무를 위임할 때 특정 조건에서는 비윤리적 행동을 간접적으로 유도하기 쉬워지고, AI 에이전트가 인간보다 그런 지시에 더 잘 따르는 문제를 보여줬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중요한 것은 누가 그 목표를 설정했는가가 된다.
좋은 조직을 가르는 질문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는가”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묻고 싶다.
이 일이 실패했을 때 끝까지 설명할 사람은 누구인가.
일의 주인은 모든 작업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주인은 AI에게 일을 맡길 수도 있고 동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며 외주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세 가지를 넘기지 않는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결과를 좋은 결과라고 판단할지,
그리고 결과가 잘못됐을 때 누가 남을지.
마지막이 중요하다.
성과가 좋을 때 등장하는 사람은 많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우리 팀이 해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는 순간 문장의 주어가 달라진다.
“프로세스상 그렇게 됐습니다.”
이 표현을 경계한다.
프로세스에는 손이 없다.
대시보드에는 양심이 없다.
AI에는 인사평가가 없다.
결국 시스템 뒤에는 사람이 있다.
AI 시대의 조직에는 새로운 직바카라보다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
모든 중요한 일에는 최소한 세 가지 이름이 붙어야 한다.
문제를 끝까지 이해하는 사람.
판단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사람.
결과가 틀렸을 때 설명할 사람.
셋이 같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셋 중 하나라도 비어 있다면 그 일은 이미 조직 안에서 고아가 된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6년 공개한 분석에서도 AI 도입 사업체의 75%가 AI를 인력 대체보다는 업무·공정 혁신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가 설계하기에 따라 AI는 일을 다시 설계하는 기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만 다시 설계해서는 부족하다.
바카라임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AI는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다른 AI에게 다시 일을 맡길 것이다. Anthropic의 2026 Economic Index에서도 대화형 AI 사용이 장시간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에이전트형 작업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같은 종류의 작업조차 에이전트 환경에서는 더 높은 수준으로 위임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그럴수록 인간의 일은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바카라임까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기계가 더 많은 일을 할수록 인간은 더 선명하게 주인이 되어야 한다.
좋은 회사는 직원에게 일을 많이 시키는 회사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는 일을 주는 회사다.
좋은 직업인은 모든 것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도구와 사람과 AI를 움직이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뒤로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다.
AI 시대에 가장 희귀해질 능력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능력도, 에이전트를 많이 만드는 능력도 아니다.
“이건 제가 바카라임지겠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바카라임은 더 비싸질 것이다.
자료와 출처
Microsoft, 2026 Work Trend Index — AI 에이전트 확산, 인간의 판단·바카라임, 조직 설계 문제.
Anthropic, Economic Index: Cadences, 2026 — 대화형 AI에서 장시간 에이전트 업무로 변화하는 실제 사용 패턴.
Xu et al.,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2026 — 어려운 의사결정을 AI에 위임하면서 나타나는 바카라임 회피 행동 연구.
Köbis et al., Nature, 2025 — 인간의 기계 위임과 비윤리적 행동의 관계에 대한 13개 실험.
한국고용정보원·고용노동부, AI와 노동시장, 2026 — 국내 AI 도입과 직무 재구성에 관한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