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높은 벽 때문에 지치는 것이 아니다.
손잡이가 하나도 없는 벽을 계속 오르라고 할 때 지친다.
나는 어려운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일이 어렵지 않으면 금방 지루해진다.
처음 보는 문제를 만났을 때 머릿속에서 여러 가설이 부딪히고 어느 순간 실마리가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이 좋다.
“아, 이거였구나.”
일이 재미있어지는 순간은 쉽지 않을 때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됐다.
어려운 일과 불가능한 일은 전혀 다른 종류의 노동이라는 것을.
어려운 일에는 어딘가 손잡이가 있다.
시간을 더 쓰거나 방법을 바꾸면 조금씩 앞으로 간다.
어제보다 오늘 내가 나아졌다는 감각도 생긴다.
불가능한 일은 다르다.
매출은 올리라고 하면서 예산은 없다.
분석을 제대로 하라고 하면서 데이터는 없다.
결과에 바카라임지라고 하면서 의사결정 권한은 없다.
다른 팀의 협조가 필요한데 마감일은 그 팀의 일정보다 먼저 잡혀 있다.
실패하면 이런 말을 듣는다.
“주도적으로 했어야죠.”
이쯤 되면 어려운 업무가 아니다.
조직이 해결하지 않은 모순을 개인의 노력으로 메우라는 요구다.
조직심리학에서도 스트레스를 한 덩어리로 보지 않는다.
성장과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 ‘도전적 요구(challenge demand)’와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방해적 요구(hindrance demand)’를 구분한다.
78개 표본을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도전적 스트레스가 부담을 만들면서도 성과에는 긍정적인 직접 효과를 보인 반면, 방해적 스트레스는 부담을 높이고 성과에도 부정적으로 연결됐다.
2026년 중국 기술기업 종사자 442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도전적 업무요구는 직무성과와 양(+)의 관계를 보였지만, 방해적 업무요구는 음(-)의 관계를 보였다.
두 요구 모두 번아웃과 관계가 있었지만 방해적 요구 쪽의 관계가 더 컸다.
심지어 AI 사용도 이런 방해적 요구가 성과에 미치는 부정적 관계를 유의하게 완충하지 못했다.
결과가 재밌다.
AI가 업무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AI에게도 없는 것이 있다.
권한 없는 바카라임을 정상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것을 결정해줄 수도 없고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KPI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마법도 부리지 못한다.
최신 60년치 역할 스트레스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불분명한 상태’, 즉 역할 모호성이 여러 개인·조직 결과에서 가장 해로운 스트레스 요인으로 나타났다.
나는 요즘 일이 힘들 때 스스로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어려운가?”
아니면,
“이 일은 애초에 성공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탓한다.
불가능한 목표를 앞에 두고 야근하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구조적 결함을 개인의 열정으로 메우다가 열정 자체가 사라진다.
좋은 조직은 쉬운 일만 주는 곳이 아니다.
꽤 어려운 일을 준다.
다만 목표가 있고 시도한 만큼 앞으로 움직인다는 감각을 준다.
그런 곳에서는 퇴근하며 피곤해도 묘하게 기분이 좋다.
오늘 뭔가를 풀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쁜 조직은 불가능한 일을 던져놓고 그것을 ‘도전’이라고 부른다.
이제 의심한다.
사람을 성장시키고 싶다면 난이도를 높여도 된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
어려움은 사람을 단련한다. 불가능은 사람을 마모시킨다.
둘을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일이다.
참고한 자료
Pindek et al. (2024), A Dynamic View of the Challenge-Hindrance Stressor Framework, Journal of Business and Psychology — 78개 표본을 분석한 도전·방해 스트레스 메타분석.
Zuo, Sun & Wei (2026), The impact of challenge and hindrance demands on work-related burnout and job performance, Frontiers in Psychology — 기술기업 종사자 442명 대상 연구.
Sawhney et al. (2026), A meta-analytic review of 60 years of role stressor research,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 역할 모호성·갈등·과부하에 관한 60년 연구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