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재미를 죽이는 건 ‘해봤자 안 바뀐다’는 감각이다
회사에서 가장 재미없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답을 알아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예전에 데이터를 보다가 이상한 숫자를 발견한 적이 있다.
특정 구간에서 사용자가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원인도 어느 정도 보였다.
가입 과정은 길었고 굳이 받지 않아도 될 정보를 요구했고 고객은 같은 질문에서 반복해서 멈췄다.
분석가는 신이 난다.
문제가 보였으니까.
나는 데이터를 다시 뜯어보고 퍼널을 나누고 사용자 행동을 비교하고 개선안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재미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 실험까지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회의에 들어가면서 일이 이상해진다.
“원래 이렇게 해왔습니다.”
문제는 발견됐고 원인도 알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달이 되면 똑같은 숫자를 다시 보고한다.
‘관전자 노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기장 안에 들어와 있는데 공은 만질 수 없다.
선수처럼 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해설자다.
문제가 생기면 분석하라고 하고 개선바카라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무언가를 바꾸려 하면 갑자기 조직도가 등장한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사람은 놀랍도록 빨리 학습한다.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 없구나.”
처음에는 개선안을 세 개 가져오던 사람이 하나만 가져온다.
조금 더 지나면 시키는 분석만 한다.
나중에는 이상한 숫자를 발견해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능해진 것이 아니다.
유능함을 사용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학습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일의 재미가 죽는다.
흔히 재미있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겠다며 사내 카페를 꾸미고 회식을 바꾸고 복지를 늘린다.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오후 3시에 무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오전 10시 회의에서는 자기 업무 하나 바꿀 수 없다면 그 회사가 정말 재미있는 온라인 게임인지는 모르겠다.
사람은 놀면서만 재미를 느끼는 동물이 아니다.
무언가를 움직일 때 재미를 느낀다.
내가 만든 문장 때문에 고객의 반응이 달라지고 내가 고친 코드 때문에 오류가 줄고 내가 제안한 동선 때문에 사람들이 덜 헤매고 내가 바꾼 분석 기준 때문에 회사의 결정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이상하게 일이 살아난다.
결과가 반드시 성공할 필요도 없다.
실험했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내가 고른 방법이 틀릴 수도 있다.
실패한 프로젝트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내 판단과 행동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감각이다.
내가 A를 했더니 세상이 아주 조금 B로 움직였다.
작은 인과관계가 반복되면 사람은 자신의 일을 ‘내가 개입하는 세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심리학에서도 이 문제를 오래 연구해왔다.
자기결정성이론은 인간의 내적 동기와 좋은 기능을 설명하는 핵심 조건으로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을 이야기한다.
최근 연구들 역시 자율성과 자신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감각이 이후의 ‘일의 의미’를 예측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직무의 일부를 스스로 조정하는 ‘잡 크래프팅(job crafting)’ 연구에서도 자신의 업무를 능동적으로 바꾸는 행동은 업무 몰입과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최근의 사소한 조직문화 이야기도 아니다.
2025년 데이터를 담은 Gallup의 2026년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에서 업무에 몰입하고 있다고 분류된 직원은 20%에 불과하다.
한국은 더 낮은 13%였다.
숫자 하나로 한국의 조직문화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왜 사람들은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전부 사용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던져볼 만하다.
그 답 가운데 하나가 ‘변경권’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회사가 직원에게 바카라임은 꽤 많이 준다.
매출을 올려라.
고객을 만족시켜라.
데이터를 개선해라.
혁신해라.
주도적으로 일해라.
그런데 가격은 못 바꾼다.
제품도 못 바꾼다.
프로세스도 못 바꾼다.
다른 부서에는 요청만 할 수 있다.
작은 실험에도 결재가 여러 번 필요하다.
자율성 부족보다 더 기묘하다.
결과에 대한 바카라임과 결과를 움직일 권리가 서로 다른 사람에게 배분되어 있는 것이다.
좋은 조직은 단순히 “자율적으로 일하세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10만 원짜리 실험은 승인 없이 할 수 있는가.
고객에게 보내는 문구 하나를 담당자가 직접 바꿀 수 있는가.
반복되는 회의를 없앨 권한이 참석자에게 있는가.
데이터가 기존 정바카라이 틀렸다고 말할 때 정바카라을 다시 검토할 통로가 있는가.
거창한 혁신보다 이런 것이 먼저다.
나는 이제 재미있는 일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재미있는 일이란 내가 한 판단 때문에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 수 있는 일이다.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에는 당연히 규칙도 필요하고 바카라임도 필요하다.
의료, 금융, 안전처럼 한 사람의 판단이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통제와 무권한은 다른 말이다.
좋은 조직은 위험한 것은 통제하면서도 작은 변화의 공간을 직원에게 남겨둔다.
나쁜 조직은 모든 것을 통제한 다음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요구한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것은 세입자에게 집주인처럼 살라고 하면서 못 하나 박지 못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일을 재미없어하기 시작했다면 그 사람의 열정을 먼저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은 지난 6개월 동안
자신의 판단으로
무엇을 실제로 바꿔보았는가.
문제는 그 사람이 일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에게 사랑할 만한 ‘자기 일’이 아직 주어지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내일 출근하면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좋다.
불필요한 보고서 한 줄을 지우고,
고객이 반복해서 불편해하는 과정 하나를 고치고,
의미 없이 이어지던 회의 하나를 줄이고,
누군가 늘 수작업하던 일을 자동화해도 된다.
조직은 그 작은 변경을 허락해야 한다.
일의 재미는 복지몰에서 주문할 수 없다.
사람이 현실에 손을 댈 수 있을 때 생긴다.
자료와 출처
Gallup,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6 — 2025년 세계 직원 업무 몰입도 20%, 한국 13%.
Martela et al., What makes work meaningful? — 종단연구에서 자율성과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감각이 이후의 일의 의미를 예측.
Job Crafting 메타분석 — 122개 독립 표본, 35,670명을 종합했을 때 잡 크래프팅과 업무 몰입이 유의미한 관계를 보임.
2026년 Job Crafting 체계적 문헌검토 — 2014~2024년 85개 연구를 분석해 직원이 업무·환경·관계를 능동적으로 조정하는 직무 재설계의 중요성을 정리.
한국심리학회지 산업 및 조직, 2026, 「일의 의미에 대한 체계적 문헌 리뷰」 — 국내 관련 연구 144편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