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 무렵

by꿈담은나현


여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조금씩 말이 없어졌다. 햇빛은 지나치게 밝아서 그림자까지 또렷하게 드러냈고, 아스팔트 위에서는 열기가 검은 숨처럼 피어올랐다. 창문을 열어두어도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공기와 멀리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만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선풍기는 느리게 고개를 흔들고 있었지만, 미지근한 바람은 땀에 젖은 피부 위를 스치기만 할 뿐 아무것도 식혀주지 못했다.


바카라상 위에는 접힌 이력서들이 쌓여 있었다. 습기를 먹은 종이 끝은 조금씩 울어 있었고, 노트북 화면에는 읽지 않은 메일 숫자가 붉게 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화면만 바라보다 메일 하나를 눌렀다. [아쉽게도 이번 채용과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문장이 눈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는 끝까지 읽지 못한 채 창을 닫았다.


드르륵.

드르륵.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을 천천히 긁고 지나갔다. 냉장고 안에는 물 한 병과 반쯤 남은 김치통밖에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카드 결제 예정 금액이 떠 있었고, 읽씹된 메시지 하나가 대화창 아래 조용히 남아 있었다. 샤워하고 나와도 몸은 식지 않았다. 피부 위에 남은 여름의 열기는 꼭 마음속 불안이 바깥까지 번져 나온 것 같았다.


새벽 두 시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눅눅한 밤공기가 얼굴로 밀려왔고, 골목 아래 편의점 간판만 희미한 푸른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어딘가 흐릿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오래 물속에 잠겨 있던 사진 같았다. 그는 창틀에 팔을 괴고 한참 서 있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름 끝날 때까지만 살아 있자.”


그 말을 하고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문장은 공기 속으로 금세 흩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귓가에는 오래 남았다. 그는 바카라상 서랍을 열어 오래된 메모장을 꺼냈다. 구겨진 종이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고, 어린 시절 밀린 여름방학 숙제를 하던 밤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검은 볼펜으로 천천히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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