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은 매번 무너져도

by꿈담은나현


지은은 살을 빼려고 수십 번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되찾으려 했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울보다 옷장을 먼저 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옷장 문을 열자 오래된 섬유 유연제 향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한때 즐겨 입던 하늘색 블라우스는 옷걸이에 걸린 채 조용히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손끝으로 소매를 쓸어보았지만 끝내 꺼내지 못했다. 마치 오래전의 자신과 마주치는 일이 두려운 사람처럼 지은은 다시 문을 닫았다.


창밖에는 초여름 햇살이 번지고 있었지만, 방 안은 흐린 오후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갑상선에 이상이 생긴 뒤부터 몸은 전과 달라졌다. 충분히 잠을 자도 피곤은 이불 속 먼지처럼 몸 곳곳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마트에 다녀오는 일조차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버거웠다. 결국 회사를 그만둔 뒤 지은의 하루는 멈춘 시계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여러 번 접힌 식단표가 놓여 있었다. 냉장고 문에 붙었다가 떼어진 자국이 종이 모서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운동 알림이 도착했지만, 화면을 밝히는 푸른빛은 금세 꺼졌다. 다짐은 늘 성실하게 시작되었지만, 봄날 벚꽃처럼 생각보다 빨리 흩어졌다.


그날도 지은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는 종이들이 바스락거리며 오래된 시간을 털어냈다. 빛바랜 영수증, 사용하지 않는 통장, 메모지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맨 아래에서 연한 하늘색 수첩 하나가 나타났다. 먼지를 뒤집어쓴 표지는 마치 오랫동안 주인을 기다린 편지 같았다.


지은은 무심코 첫 장을 펼쳤다.

'서른 살이 되면 혼자 제주도 한 달 살기.'


종이 위 검은 잉크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선명했다. 다음 장에는 바카라 출간하기, 그다음 장에는 새벽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가기가 적혀 있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잔물결처럼 번졌다. 수첩 속에는 체중도 없었고 칼로리도 없었다. 대신 오래전 지은이 품었던 계절들이 눌린 꽃잎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창문 너머로 노을빛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주황빛은 수첩 위를 물들이며 마치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불씨처럼 흔들렸다. 그 시절의 지은은 실패를 걱정하기보다 시작하는 일을 좋아했다. 여행지를 적으며 설레었고, 이루지 못한 꿈조차 기꺼이 적어 내려가던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미래 대신 체중계 숫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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