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통화

by꿈담은나현


수능이 끝난 날, 교문 앞의 공기는 이상하리만큼 잔잔했다. 떠들썩한 해방감 대신, 긴 숨을 내쉰 뒤 남는 고요가 운동장 위에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걸어 익숙한 골목을 지나 늘 가던 떡볶이가게 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자 붉은 국물 냄새가 따뜻한 김처럼 얼굴을 감싸안았다. 금방이라도 저 아래로 흘러내릴 듯한 붉은 빛은, 끝난 하루 온도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끝났다.” 내가 먼저 말하자, 너는 짧게 웃었다. 웃음은 유리잔에 닿는 물소리처럼 맑았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우리는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디에 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미래를 손으로 더듬듯 이야기했다. 국물이 식어갈수록 말은 줄어들었고,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며칠 뒤, 점수가 나왔다. 나는 생각보다 높았고, 너는 예상보다 낮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계절을 걷는 사람처럼 멀어졌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눈을 피했고, 말 대신 어색한 공기만이 어깨 사이를 스쳤다. 누군가의 말이 바람처럼 끼어들어 틈을 만들었고, 틈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벌어졌다.


졸업식 날, 우리는 같은 교실에 있었지만 끝내 같은 문장을 꺼내지 못했다. ‘잘 지내’라는 말이 입안에서 서늘하게 식은 채, 녹지 못한 눈처럼 남아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흘려보낸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그날의 빛은 유난히 희었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색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사람들처럼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새로운 이름들과 낯선 웃음들이 내 일상에 자리를 잡았다. 강의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생긴 하루의 공백이 손바닥 위에 떨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산으로 향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발끝에서 부서지며, 생각들을 하나씩 흩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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