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를 두고 나온 밤

by꿈담은나현


그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짐은 대부분 빠져나갔고, 방 안은 숨을 비워낸 사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았다. 공기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먼지처럼 떠다니며,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거실 한쪽, 덮개만 얹힌 상자 하나가 입을 다문 채 놓여 있었다. 상자는 마지막 말을 삼킨 입처럼 조용히 닫혀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앉아 손을 뻗지 못한 채 시간을 더듬고 있었다. 손끝이 닿을 듯 멈춘 그 거리는 우리가 멀어지던 거리와 닮았었다. 한때 이 집은 좁아서 서로의 숨이 부딪히던 곳이었다. 웃음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던 밤들이 있었고, 말보다 눈빛이 먼저 닿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 온도는 식지 않은 잔열처럼 바닥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오던 날이 떠올랐다. 박스를 하나씩 풀며 바닥에 앉아 웃던 저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우리는 괜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배달 음식 상자를 사이에 두고 그는 젓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서 잘살아 보자.” 그 말은 가볍게 흘러갔지만, 그날의 공기는 오래도록 따뜻했다. 그 따뜻함은 사라지지 않은 채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상자의 덮개를 열자 접힌 앞치마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흐릿하게 번진 얼룩이 지워지지 않은 구름처럼 남아 있었다. 손끝으로 그 자국을 따라가자 끓어오르던 냄비와 넘쳐흐르던 국물, 그리고 그가 웃으며 불을 줄이던 장면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괜찮아, 이런 날도 있어.” 그 말은 바람처럼 지나갔지만, 지금은 집 안 어딘가에 걸려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 아래에는 사진 몇 장이 있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던 날,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 위에 앉아 찍은 사진이었다. 창밖의 빛이 노랗게 번져 바닥을 덮고, 그 위에 우리의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그는 카메라가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다른 곳을 보며 웃고 있었다. 같은 프레임 안에 있었지만, 시선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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