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거울은 오래되어 한쪽 귀퉁이의 도금이 조금 벗겨져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그 벗겨진 자리를 피해 얼굴을 비추는 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거울 속에는 오십 대 초반의 얼굴이 있었다. 눈가에 자리 잡은 잔주름을 손끝으로 가볍게 눌러보다가, 그녀는 화장품 뚜껑을 닫았다.
스무 살 무렵의 사진이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볕에 그을린 팔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활짝 웃던 얼굴. 그 사진 속 여자와 지금 거울 속 여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가끔은 그녀 자신에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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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차리는 동안 집 안은 조용했다. 남편은 이미 출근했고, 아들은 방문을 닫은 채였다. 그녀는 혼자 식탁에 앉아 식은 밥을 한술 떴다. 숟가락에 밥알이 닿는 소리만 유독 크게 들렸다.
설거지를 하며 그녀는 창밖을 오래 보았다. 봄볕이 창틀에 걸려 있었다. 그 빛을 보고 있자니, 문득 대학 시절 미술 동아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붓을 쥔 손끝에서 물감 냄새가 나던 것 같은 감각이, 손에 묻은 세제 거품 사이로 잠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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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면서 그녀는 그 붓을 내려놓았다. 누가 그러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다만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뿐이었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정말 맞는 표현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며칠 전, 동네 문화센터 앞을 지나다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자신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여자들이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안으로 들어가 접수처에 이름을 적었다.
집에 돌아와 그녀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숨기려던 건 아니었다. 타이밍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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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요즘 뭐 배우러 다녀?” 첫 수업을 다녀온 날, 아들이 무심코 물었다. “어, 그림.” 그녀는 짧게 답했다. 아들은 “오” 하고는 더 묻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반응이 서운하다기보다, 오히려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이었다.
문화센터에서 그녀는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 석 자로만 불렸다. “누구 엄마”도 아니고, “사모님”도 아닌, 그냥 이름. 처음에는 그 호칭이 낯설어 대답이 반 박자씩 늦었다. 몇 주가 지나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캔버스에 처음 붓을 대던 순간, 손끝에 낯선 긴장이 스쳤다. 오래 쉬었던 감각이라 선 하나가 마음처럼 매끄럽게 나가지는 않았지만, 손이 완전히 기억을 잃은 건 아니었다. 몇 번 긋다 보니 예전에 익혔던 붓의 각도와 힘 조절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옆자리 여자가 “어머, 처음이라면서 잘하시는데요” 하고 지나가듯 건넨 말에, 그녀는 오랜만에 뺨이 조금 붉어지는 걸 느꼈다. 사실은 처음이 아니라고, 그녀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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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수업이 있는 날은 저녁이 늦어졌다. 처음 늦게 들어온 날, 시어머니가 부엌에 서서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오늘 늦었네.” 시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나무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스스로 더 미안해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차렸어야 하는데.” “됐다, 뭘. 너도 네 할 거 해야지.”
그 말이 그날 밤 내내 그녀의 마음에 남았다.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을 시어머니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죄바카라감과, 그럼에도 이 시간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시에 그녀 안에서 부딪혔다. 둘 중 어느 쪽도 완전히 이기지 못한 채, 그녀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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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는 요즘 대화가 거의 없었다.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도, 그는 텔레비전을, 그녀는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 침묵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녀를 더 씁쓸하게 만들었다.
“당신 요즘 자주 나가네.” 어느 날 남편이 무심하게 던진 말에, 그녀는 순간 방어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림 배우잖아, 말했잖아.” “아, 그랬나.” 남편은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 무심함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더 캐묻지 않는 게 차라리 편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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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딸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엄마 요즘 어떻게 지내?” 딸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어딘가 서둘러 끝내려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림 배우러 다녀. 나름 재밌어.” “오, 좋다. 엄마도 이제 엄마 인생 살아야지.”
딸의 그 말이 위로인지,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말인지, 그녀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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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다시 선 밤, 그녀는 오늘 그린 그림을 핸드폰으로 찍어 저장해 두었다. 완성도는 서툴렀지만, 그녀는 그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잘 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스스로 완성했다는 감각이, 그녀 안에 낯설고도 반가운 온기로 남았다.
불을 끄기 전,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주름은 그대로였지만, 표정은 아침의 그것과 조금 달라 보였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그 차이를 굳이 캐묻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