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늙어가는 몸에도 사랑과 에로티시즘은 남아 있다

byNavyblue

사람들은 젊음과 욕망을 너무 쉽게 같은 말처럼 사용한다. 젊은 몸은 사랑하고, 늙은 몸은 추억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은 누군가를 욕망해도 자연스럽지만 나이 든 사람이 사랑을 말하면 조금 낯설어한다. 연애를 하면 묻는다. “그 나이에?” 옷을 아름답게 입어도, 몸을 가꾸어도, 누군가에게 설렌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가끔 웃는다. 마치 욕망에도 정년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이가 들면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늙는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조금 더 근사해 보이고 싶은 마음, 한 사람의 눈빛 때문에 하루가 달라지는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몸은 늙어도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에는 정년이 없다.


물론 몸은 변한다. 이 사실을 낭만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피부는 예전과 다르고, 머리카락은 희어지며, 근육과 체력도 달라진다. 호르몬이 변하고, 성적 반응의 속도와 형태도 달라질 수 있다. 예전처럼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와 소멸은 같은 말이 아니다. 욕망은 사라진 다기보다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젊을 때는 빠르게 타오르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 천천히 시작될 수 있다. 시선이 길어지고, 대화가 중요해지고, 신뢰가 더 깊은 역할을 하며, 급한 욕망보다 오래 머무는 친밀함이 중요해질 수도 있다. 불꽃은 달라졌지만 불이 꺼진 것은 아니다.

0caf7246eef3ac60ffb9d4fd2f99bb62.gif불꽃은 달라졌지만 불이 꺼진 것은 아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에서 나이 든 사람을 슬롯가 어떻게 주변부로 밀어내는지를 집요하게 살펴보았다. 노년은 단지 생물학적 변화가 아니다. 슬롯가 그 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경험도 달라진다. 사람들은 나이 든 몸을 보며 욕망의 대상에서 제외해 버리기 쉽다. 그리고 더 이상 욕망해서도 안 되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이때 노화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이 있다. 슬롯적 비가시성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나를 남자나 여자로 보기보다 그냥 ‘나이 든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다. 사람에게 이것은 생각보다 깊은 경험이다.


젊을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귀찮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시선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 나를 바라본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나에게 끌린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 시선이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생각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매력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있다. 젊지 않다는 것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더구나 아름다움과 매혹은 더더욱 같은 것이 아니다.


젊은 아름다움에는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이 있다.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만든 아름다움도 있다. 오래 웃어서 생긴 눈가의 주름. 많은 일을 견디며 생긴 표정. 사람을 바라보는 여유. 자신을 과장하지 않아도 되는 태도. 말을 하기보다 들을 줄 아는 깊이. 자기 몸을 조금씩 받아들인 사람에게서 나오는 편안함. 젊음이 가진 매혹과 나이 듦이 가진 매혹은 다르다. 둘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인지 모른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몸을 단순히 바라보이는 물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늙어가는 몸은 고장 난 젊은 몸이 아니다. 다른 시간을 살아온 몸이다. 그 손은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았고, 그 얼굴은 더 많이 웃고 울었으며, 그 몸에는 삶의 기억이 더 많이 새겨져 있다. 젊은 몸이 가능성의 몸이라면 나이 든 몸은 이야기를 가진 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름을 결함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주름에는 시간이 있다. 누군가를 기다렸던 시간이 있고, 아이를 키웠던 시간이 있으며, 일에 지쳤던 날과 여행하며 웃었던 날이 있다. 몸은 시간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이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갖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학적으로 바라보면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래된 가죽, 오래 사용한 나무, 시간을 품은 건축물에는 새것과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에게도 그렇다.


문제는 현대 슬롯가 몸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젊음과 연결한다는 데 있다. 주름을 지워야 하고, 흰머리를 감춰야 하며, 배가 나오지 않아야 하고, 나이보다 젊어 보여야 칭찬받는다. 그래서 가장 이상한 칭찬이 등장한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여요.” 좋은 뜻이다. 하지만 그 문장 뒤에는 묘한 전제가 숨어 있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왜 우리는 나이를 잘 먹은 사람보다 나이 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더 칭찬할까.


미셸 푸코의 시선으로 보면 현대인은 자기 몸을 끊임없이 관리하고 규율하도록 요구받는다. 몸은 건강해야 할 뿐 아니라 매력적이어야 하고, 젊어 보여야 하며, 노화의 흔적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 자기 관리는 좋은 일이다. 운동하고, 건강을 돌보고, 옷을 멋지게 입고, 자신의 몸을 가꾸는 즐거움은 충분히 누릴 만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조심해야 한다. 몸을 가꾸는 일이 늙어가는 자신을 미워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운동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기 몸이 싫어서 운동하는 사람과 자기 몸으로 오래 잘 살아가고 싶어서 운동하는 사람은 같은 운동을 해도 마음이 다르다. 한 사람은 몸을 벌주고, 다른 사람은 몸을 돌본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관리는 젊어지기 위한 전쟁보다 지금의 몸과 더 오래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몸은 적이 아니다. 시간도 적이 아니다.


욕망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욕망해야 아직 젊다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 욕망의 변화는 패배가 아니다. 몸은 변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더 긴 전희가 필요할 수도 있고,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수도 있으며, 신체적 조건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삽입이나 절정 중심의 섹스보다 포옹, 마사지, 키스, 서로의 몸을 오래 만지는 일이 더 깊은 친밀함이 될 수도 있다. 섹스의 미학은 젊은 몸의 속도를 따라가는 데 있지 않다. 지금의 두 몸에 맞는 새로운 언어를 찾는 데 있다.

032ab4092ebf949551007aafbff91a56.gif섹스의 미학은 젊은 몸의 속도를 따라가는 데 있지 않다.

에스더 페렐은 장기적인 관계에서 욕망에는 새로움과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나이 든 관계에도 중요하다. 오래 함께했다고 해서 상대가 끝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30년을 함께 살았다고 30년 전의 사람과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계속 변한다. 좋아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몸도, 욕망도 변한다. 그러므로 오래된 연인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젊음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상대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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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학 저자. 남자인 나는 사랑을 철학으로 읽고, 지적인 여자를 추앙하고, 문장으로 감각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미학으로 사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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